최재천 교수님 '숙론' 저자 특강에서
자, 이제 질문을 받아볼까요?
최재천 교수님의 강연이 끝났다.
이제 질의응답 시간.
질문을 하라는 말이 떨어지자마자 두근두근 세근세근, 심장의 무게가 느껴진다.
손들고 싶다.
질문하고 싶다.
먼저 읽었던 [최재천의 공부]에 이어 [숙론]까지 교육에 종사하는 사람으로서 고민되고 공감되는 부분이 많았다.
그동안 답답하게 느끼던 부분에 대해 비판적으로 긁어주시기니 시원했다.
숙론(熟論)이라는 해결 방법을 제안해 주셔서 나도 힘껏 동참하고 싶은 의욕이 샘솟았다.
하지만 실천에 있어서 걸림돌 하나가 떠올랐다.
책을 읽는 동안에도 내내 생각했던 부분이다.
현장에서 늘 벽처럼 느껴진 문제에 대해 교수님께 여쭙고 혜안을 듣고 싶었다.
질문이 있다.
질문을 하라고 기회를 주셨다.
하면 된다.
그런데 그게 문제다.
질문을 하기가 어렵다.
난 손들고 질문을 해 본 경험이 없다.
MBTI 검사에서 I와 E 중 오직 I에만 반응하는 나는야 극 I
나 같은 기질의 사람에게는 여러 사람들 앞에서 손을 들고 질문을 하는 것이 여간 용기가 필요한 일이 아닐 수 없다.
타고난 성격을 차치하더라도 자라면서 질문을 고민하거나, 질문을 해도 되는 상황을 거의 경험하지 못했다.
하다가 말이 꼬이면 어쩌나 걱정이 되었다.
사람들이 뭐 그런 걸 질문하나 하고 무시하면 어쩌지 겁이 나기도 했다.
앉아서 해야 하나 일어나서 해야 하나, 의자 앞에 설까 의자 옆 널찍한 복도 쪽으로 설까 별게 다 고민된다.
내가 교사라고 말하는 게 좋을까 아니면 굳이 말하지 말까.
인사말을 하고 시작해야 하나, 그냥 바로 질문을 해야 하나.
시름과 근심거리가 점점 세력을 확장시켜 뭉게뭉게 피어오르더니 금세 적란운처럼 거대한 구름이 돼서 나를 덮쳐온다.
아무도 모르는 나 혼자만의 싸움
시킨 이는 없이 괴로움을 자초하고 있는 상황.
긴장은 되지만 질문을 하고 의문점을 해결한 것인가,
아니면 언제나처럼 뒤늦게 아까 물어볼 걸 하고 후회하며 이불킥을 할 것인가.
.
.
.
손을 번쩍 들어 올렸다.
팔 관절이 접히지 않도록 최대한 곧게 뻗었다.
소심하게 뻗었다가 교수님 눈에 띄지 않으면, 그래서 질문을 할 기회를 얻지 못하면, 손들었던 걸 후회하게 될 것 같아서 용기만큼 뻗었다.
"네 요기 가운데 여성분"
기회가 왔다.
교수님과 눈이 마주치고 날 지목해 주셨다.
마이크를 전달받고 의자 옆 복도 쪽에 일어서서 질문을 했다.
"저는 고등학교에서 교사로 근무하는데요..."
에라이
날달걀이라도 챙겨 올 걸 그랬다.
잔뜩 긴장해서는 목소리가 떨리고 갈라진다.
음메음메 염소가 따로없다.
목소리는 왜 이리 작은지, 마이크를 들고 있음이 무색하다.
"으음!"
전열을 가다듬고 다시 질문을 이어갔다.
"교수님처럼 큰 뜻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교사가 되고 오랜 시간 토론과 토의를 진행했습니다. 그런데 번번이 언쟁 수준에 머물고, 싸움 같은 말들만 오고 갔습니다. 연수가 받고 공부도 해도 토론에 대한 방법적인 부분은 알겠는데 제가 생각하기에 아이들에게 부족한 부분은 듣지 않는다는 겁니다. 듣는 귀가 없습니다. 듣지 않고 오직 자기 이야기만 합니다. 어떻게 하면 아이들에게 듣는 귀를 만들어줄 수 있을까요? "
사실 실제로는 이렇게 정돈된 말로 하지 못했을 거다.
최대한 어제 했던 말을 떠올려 그대로 옮기려 했으나 글이 되니 저절로 정돈되는 느낌이다.
긴장감에 말이 꼬이고, 단어가 생각이 안 나서 버벅거렸지만 그럼에도 하고 싶은 질문을 하긴 했다.
질문을 마치고 나니 긴장감에 다리가 풀려서 철푸덕 자리에 앉아버렸다.
교수님의 말씀에 귀 기울여야 하니 곧바로 정신을 가다듬었다.
교수님의 대답은
"늦었습니다. "
헐.
서양 아이들이 유치원부터 자연스럽게 듣고 의견을 조율하는 과정을 배운 것에 비해 우리 아이들은 경험이 부족하여 듣는 귀 만들기 어렵다는 것.
하지만 우리나라가 뭐든 빨리 배우기 때문에 경험을 늘리고 연습을 하다 보면 금세 익히게 될 거라며 안심시켜 주셨다.
덕분에 지금 답답하다고 해서 멈추지 말고 아이들에게 계속 기회를 늘려줘야겠구나 다짐을 하며 난생처음 질문이 마무리되었다.
집에 돌아오자마자 남편에게 자랑했다.
"자기야, 나 오늘 뭐 했게? 나 오늘 교수님한테 질문했다. "
평소 내 성격을 아는 남편은 눈이 휘둥그레진다.
"손 번쩍 들어서 질문했어. "
질문이 무엇이었는지 이 남자에게는 관심밖이다.
생에 절반 이상을 함께한 우리는 서로의 성격을 누구보다 잘 안다.
낯선 사람들 앞에 나를 드러내는 걸 싫어하고 설사 그런 상황에 놓이게 되면 바짝 긴장한다는 것을.
때문제 지금껏 질문을 하며 사람들 앞에 나서는 모습을 본 적이 없었다.
스스로 손들고 질문했다는 것이 내게 얼마나 큰 변화인지 남편은 안다.
"성장했네. 많이 컸어. "
그렇다.
오늘은 질문을 했다.
태어나 처음으로 손들고 질문을 한 오늘, 한 뼘 자란 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