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와일라잇 시리즈 두 번째 책 [뉴문]에는 갑작스럽게 남자친구 에드워드가 떠나면서 외롭고 공허한 여주인공 벨라가 마음을 이렇게 표현했다.
양쪽으로 펼쳐진 두 페이지가 모두 백지인데 왼쪽 첫 줄에 '7월' 두 글자만 적혀있다.
다시 한 장을 넘기면 똑같은 위치에 '8월'만 적혀있는 식이다.
그렇게 책은 한 계절의 변화를 8쪽에 걸쳐 8글자만 사용해서 표현했었다.
여름을 맞이하며 갑자기 뉴문이 떠오른 건 뭔가 쥐었다가 뺏긴 듯한 느낌에서 오는 헛헛함 때문이었을 거다.
해가 떠 있을 때는 일상의 바쁨이 의식을 덮었지만 어둠이 찾아오면 바쁨을 걷어내고 현실을 마주하게 했다.
출판사는 내 답장에 가타부타 말이 없었다.
좋다 싫다, 괜찮다 별로다, 해보자 말자, 고민해 보자 바꿔보자 어떤 대꾸도 없이 그냥 읽씹.
설렘이 사그라든 자리에 초라한 부끄러움이 자리했다.
아무것도 결정된 것 없이 김칫국을 마신 것이 한심했다.
게다가 그 무렵 매일 책상 위에서 날 노려보는 립스틱한테 영 눈치가 보였다.
늘 설레발이 문제다.
출간 제의 메일을 받았다는 사실을 북클럽 회원들에게 전했고 그중 한 사람이 축하한다며 선물로 보내준 립스틱이다.
'앞으로 강의할 일이 생길 테니 이걸 쓰자.'라며
참으로 결이 잘 맞는 두 사람이다.
어떤 것도 구체화된 것이 없는데 가볍게 입을 놀린 나였다.
계약을 한 것도 아닌데 출간을 넘어 강의할 때 쓰라고 립스틱을 선물한 그녀.
평소 같았으면 이건 아니라고 거절했을 텐데 무슨 자신감이었는지 그때는 출간제의 기분에 취해 선물을 넙죽 받아버렸다.
'그래 정말 강의할 일이 생기면 그날 야무지게 뜯어야지. '
그렇게
4월.
5월.
6월.
7월이 지나가고 있었다.
이제는 뭐라도 해야 했다.
립스틱 눈치가 보여서 안 되겠다.
제목이미지 : 픽사베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