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야 날 알아보는군
우쭐했다.
메일의 제목을 보고 놀라서 긴장했던 마음이 어느새 의기양양한 시건방이 되어 있었다.
블로그 글이 출판돼서 나오는 경우를 종종 보면서 내게도 그런 기회가 오려나 상상만 해봤는데 지금이 그 순간 같았다.
고민도 없이 승낙의 메일을 보내고 나니 이미 뭐라도 된 양 설레서 잠이 오지 않았다.
답장이 보내졌으니 다음은 뭘까?
만나자고 하려나?
이제라도 출간기획안을 써놔야 하나?
자녀교육서니 나의 롤모델 이은경선생님처럼 나도 강연하는 날이 오려나?
어둠을 핑계로 편하게 히죽히죽 웃어가며 내 상상을 출판 너머 저기, 안드로메다로까지 보내버렸다.
그저 관심이 간다는 메일이었다.
앞으로 좀 더 이야기를 나눠보자고 분명히 쓰여있었다.
주제의 뾰족함이 부족하니 함께 발전시켜 나가는 문장이 있었음에도 마음은 이미 출간이 기정사실이 된 것인 양 까불었다.
당장 계약을 하자는 것도 아니고, 만나보자는 제안도 아니었는데도 말이다.
그러거나 말거나 현실을 외면하고 최대한 긍정의 시나리오만 머릿속에 가득했다.
봄의 일상은 더없이 바빴다.
1학기 1차 지필고사 출제와 검토 기간이 끝나고 시험까지 치렀다.
내신 경쟁이 치열한 고등학교에서 시험은 변별력을 고려해 출제해야하고 오류가 발생해서는 안된다.
방법은 하나다.
출제 이후 검토, 또 검토, 다시 검토를 수없이 반복한다.
그러면서 시험이 완전히 종료될때까지 실수가 있을 까바 똥 마려운 강아지 마냥 전전긍긍 노심초사 심장벌렁의 긴장의 구간을 통과해야 한다. (이렇게 1년에 네 번)
5월이 가정의 달이라 했던가, 아니면 깔닥고개라 했던가.
어린이날, 어버이날, 우리 부부 결혼기념일을 기본으로 깔고 한창 날씨 좋을 때라 남매 학교에서의 각종 행사와 근무하는 학교의 수많은 이벤트들(모두가 업무다)을 해치우면서 봄이 지나가고 있었다.
제아무리 바빠도 시간은 정직하게 흘렀다.
그 사이 메일은 읽혔지만 답이 없었다.
봄이 다 지나도록.
어느덧 여름이 되었다.
제목이미지 : 픽사베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