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ncing with the Birds(2019)
누구에게나 애정에 목마른 시기가 있다. 아니, 우리의 유전자에게는 애초 생존과 번식 외에 다른 아무런 목적이 없다. 숱한 뮤지션과 창작자들이 '이성에게 잘보이고 싶어서' '사랑 받고 싶어서' 음악을 시작했다고 고백한다.
사랑을 쫓는 것이 인생의 목표인 것이죠.
뉴기니섬의 정글. 먹이가 풍족한 이곳에서는 모든 수컷들이 암컷을 유혹하는 데만 집중한다. 방법은 각양각색이다. 춤과 노래로 타고난 외모와 건강과 재능을 과시한다. 성대모사를 하거나 나뭇가지로 1M짜리 타워를 짓는다. 짝을 이뤄 멋진 합동 무대를 선보이거나 9가지의 까다로운 동작으로 구성된 독무를 춘다. '새들과 춤을'에 나오는 사랑스러운 새들을 보고 있자면 웃음이 떠나지 않는다. 저 모든 몸부림이 사랑 때문이라니. 사람들도 다르지 않다. 어쩌면 구애의 몸짓과 구애의 목소리를 우리가 춤과 노래라고 부를 뿐인지도 모른다.
페이스북이나 링크드인, 인스타그램, 트위터에서 우리는 각각 다른 나, 부캐, 즉 페르소나를 전시한다. 전문적이거나 아름답거나 재능이 넘치는 누군가가 사랑받는다. 특히 인스타그램은 멋진 외모와 새로운 경험, 행복한 순간, 값비싼 물건을 찍은 피드로 가득하다. 3행으로 배열된 예쁜 정사각형 안에 이성을 유혹하기 위한 수많은 각자만의 수단들이 진열되어 있는 셈이다. 화려하고, 놀라우며, 다양한 새들의 춤과 날갯짓과 노래를 지켜보고 있자니 인간의 인스타그램이 떠올랐다. 틱톡과 인스타그램이 특히 이런 쪽에 특화되어 있다. 자기 표현이 효과적으로 잘 될수록 SNS에 체류하는 시간도 길다.
극락조 수컷은 암컷과 짝짓기하지 않고도 평생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래도 끈기 있게 시도하는 성격이죠.
일상에 영감을 주는 SNS, 그러나 그 영감의 원천은 이성(혹은 동성)에게 잘보이고자 하는 욕구라는 것. 우습지만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프로이트의 연구나 《행복의 기원》 같은 책을 통해 이미 잘 알려진 이야기다. 나는 본능 하나로로 인간의 모든 행동을 환원시키고자 함이 아니라 일상의 불필요한 비장함과 무게감을 덜기 위한 영혼 감량의 수단으로 이런 사실을 받아들였다.
'새들과 춤을'은 처음부터 끝까지 재미있다. 이 다큐멘터리의 백미는 유머러스한 내레이션과 맞춤한 OST라고 하겠다. 새의 춤에 맞춰 발랄한 재즈가 연주될 때는 소리 내어 웃지 않을 수 없었다. 앞서 말한 대로 인간도 다르지 않음을 확인하는 즐거움도 있겠지만 어떤 새들의 기발함은 정말이지 인간을 뛰어넘는다. 작은 부리로 열심히 무대 주변을 정돈하고, 바우어라는 멋진 조형물을 만들고, 이끼 같은 것으로 바닥을 장식하는 모습을 보고 있자면 이 새들이 평생 가보기 어려운 곳에 산다는 사실이 안타까워진다.
그러니 뭐니뭐니 해도 연습만이 답입니다.
인간은 구애한다. 우리는 창조하고 자랑한다. 손편지가 전화로 바뀌고, 메신저였던 것이 DM으로 바뀐다고 해도 연인들이 속삭이는 언어는 달라지지 않는다. 사랑은 인류의 영원한 테마다. 그것이 비단 생애 초기의 것이 아니라 나이 든 사람들에게서도 자유롭게 표현될 수 있는 것이기를 바란다. 인스타 핫플레이스에서 서로를 찍어주는 커플의 모습이나, 양념갈비집에서 고기 굽던 집게를 든 채로 고개를 꺾어 입 맞추는 중년의 사랑이나, 평생 춰본 적 없는 춤을 배우며 어울리는 백발 노인의 열정이나 모두, 언제나 그랬듯 영원토록 아름답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