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Trader(Sovdagari) (2018)
이야기를 듣는다는 것은 변화를 기대하는 일이다.
우리가 텅 빈 집에 돌아와 가장 먼저 TV를 켜는 것은, 적막한 집에 아무런 움직임도 변화도 없기 때문이다. 뇌는 변화를 기다린다. 최근에 화제가 된 넷플릭스의 벽난로 4K 영상이나 캠핑에서의 불멍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다. 무해한 변화. 편안하게 바라볼 수 있는 대상. 우리의 뇌는 빠른 움직임에 집중하는 고양이와 같다. 우리는 변화에 집착한다. 영화를 보는 이유도 마찬가지다. 인물이 대신 휘말리는 변화의 소용돌이와 내적인 성장에 이입하며 즐거움을 느끼는 것이다. 그런 관점으로 보자면 다큐멘터리 '조지아의 상인'은 심심한 작품이다. 카메라는 드빌리시에서 온 상인 '젤라'의 사나흘 정도를 담담히 비춘다. 특별한 이야기나 인물의 변화는 없다. 그럼에도 보고 난 뒤에 느껴지는 관객의 균열이 있다. 감자로 물물교환을 하는 인구 400만 이하의 국가 조지아에 대한 사전지식이 없이도 그들이 살아가는 모습에서 무언가가 느껴진다.
유로, 달러, 조지아 라리... 전부 감자죠.
다큐멘터리 '조지아의 상인'의 시선은 때로 불편하다. 영화적 생략으로 넘어갈 만한 부분에 아무런 판단도 개입도 없이 오랫동안 비추는 것이 이 다큐멘터리의 미덕이다. 땅에 다리가 닿은 채로 무릎을 굽혀 낡은 그네를 타는 아이와의 긴 눈맞춤. 늙은이의 곁에는 아무도 없다며 당신에게 필요한 강판을 1라리에 넘기거나 선물해 달라고 끈질기게 흥정하는 할머니의 모습. 자신에게 남은 꿈은 없다며, 단지 감자가 풍년이고 할 일이 끊이지 않으면 된다고 말하면서도 건물 뒷편에서는 "내가 어렸다면 마을을 떠났을 거"라며, 좋은 차를 몰며 예쁜 아가씨와 다닐 거라고 친구와 이야기하는 할아버지의 모습. 카메라는 몰랐거나, 알고 싶지 않았던 것을 조금은 불편한 방식으로 비춘다.
교환하기 쉬운 거라면 뭐든지요.
첫 장면은 조수석에 탄 소매인 젤라가 여성의 신체를 닮은 인형 같은 것을 무릎에 올려두고 어디론가 가는 씬이다. 그 장면에 대한 후반부 언급은 없다. 그 인형이 무엇이었는지를 명확히 설명해 주지도 않는다. 다만 마지막 장면에 있는 "교환하기 쉬운 거라면 뭐든지요"라는 젤라의 말에서 어렴풋하게나마 젤라가 (관객의 입장에서 주관적인 시선으로 볼 때) 다소 비윤리적이고 우스꽝스러운 거래도 마다하지 않음을 추측할 수 있다. '인생은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고, 멀리서 보면 희극이다'라는 찰리 채플린의 말을 떠올리게 하는 장면이다.
거래는 장사꾼의 편이다. 값을 정하는 것이 장사꾼이기 때문이다. 상인과 구매자가 갖고 있는 물건에 대한 정보량은 비대칭일 수밖에 없다. 1라리에 강판을 달라는 할머니에게 동정하지 않는 젤라의 차가움이나, 감자 5kg과 스카프, 감자 25kg과 부츠, 감자 2kg과 공책을 거래하는 돈 버는 사람으로서의 소매인 젤라의 셈본을 두고 어떤 부조리함을 느낄 수도 있겠지만 그것은 그들의 삶의 방식이다. 내가 함부로 판단하거나 동정할 수 없는....
'조지아의 상인'에는 내레이션이 없다. 만든 사람의 의도를 드러내기 가장 쉬운 '말해주기'를 생략한 것이다. 그 공백에는 짤막한 등장인물의 인터뷰와 끈질긴 응시가 자리했다. 때로는 외면하지 않고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진실에 가까워질 수 있다. 아무런 판단도, 개입도 없이. 이때 변화하는 것은 외부의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 내부의 삶에 대한 감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