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완벽한 정의란 없다

캐드펠 수사 시리즈

by 유수풀

내가 생각하는 추리소설의 탐정의 기본 설정값은 셜록이다. 감정을 극한으로 배제해 마치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처럼 냉정하고 합리적인 사람 말이다. 추리나 사건 해결을 업으로 하는 사람이 주인공이 아닌 추리소설은 이야기 전개가 어렵지 않을까 했는데 괜한 걱정이었다.


캐드펠 수사는 수도회의 수사다. 그렇다고 캐드펠이 완전 무결한 모습의 성직자이기만 하느냐, 그것은 아니다. 종교적 요소가 가미된 소설이기에 느껴지는 한계같은 건 거의 없었다. 으레 종교적인 부분을 성역화하거나 불편한 상황을 피하기 위해 에둘러 언급하는 등의 미적지근한 태도는 찾아볼 수 없다.


오히려 당시의 가톨릭이 어떠한 문제점이 있었는지, 내부 권력 다툼이 어떻게 이루어졌는지 지배구조에 대한 문제 제기를 이끌어내는 통찰력까지 보여준다. 캐드펠은 때로는 신랄하고 비판적인 말투와 생각으로 '수도사가 이래도 되나'하는 생각을 품게 하기도 한다.


자연스럽게 그의 과거를 궁금하게 만드는 서사 속에서 작가는 단 한 번도 그의 과거를 들춰내지 않는다. 그렇기에 캐드펠 후반부 시리즈의 백미는 바로 21권이다. 완간 30주년 기념 전면 개정판 출간에 포함된 21권은 국내 초역 단편집 '특이한 베네딕토회'다. 캐드펠이 어떻게 가톨릭 수사가 되었는지 귀띔해주는 부분이 있어 더욱 완성도가 높은 시리즈가 됐다.


시리즈 내 각 에피소드는 끊어질 듯 유기적인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개인적으로 가장 좋았던 부분은 장미 나무 아래의 죽음(13권)과 마지막 캐드펠 수사의 참회(20권)이다. 캐드펠 시리즈는 전체적으로 '사람'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사람의 죽음과 누명과 갈등과 선의와 용서. 존재하는 모든 감각이 휘몰아치듯 사건을 에워싼다.


그 중에서도 13권과 20권은 몰입도도 가장 높고 읽는 이의 감정도 자유롭게 널뛰게 만든 부분이었다. 장미 하나로 불거진 사랑과 이기심, 탐욕과 증오에 대한 인간 본연의 감정을 잘 드러낸 서술과 함께 중세 시대에서 평면적으로 그려지기 쉬운 여성이 어떻게 주체적으로 행동하고 변화할 수 있는지를 잘 드러내준다. 주디스는 상처 입었지만 연약하지 않고 고통스럽지만 좌절하지 않는다. 감정선을 따라 가다 보면 나도 모르게 고개를 주억거리며 읽게 되는 챕터다.


20권은 수사가 아닌 아버지로서의 캐드펠의 존재가 드러나게 된다. 평생을 신에게 봉사하며 살기로 마음 먹었던 캐드펠이 처음으로 자신의 아들의 존재를 세상에 공개하고 그를 구하기 위해 떠나는 여정들에서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이야기가 펼쳐진다. 캐드펠은 한 번도 보지 못한 아들을 위해 수도원을 떠날 결심을 했고 그 경험 역시 캐드펠의 새로운 이야기를 알리는 하나의 챕터다.


좀 늦었구려, 소식은 진작 전해 들었소. 세상은 아직도 혼란 속에 있다고.


그 하나로 다시 돌아올 수 있는 이야기도 있다. 캐드펠 시리즈는 사건이 인간을 흔들고, 인간이 사건을 통해 변화하는 여정이다. 캐드펠은 후반부로 갈수록 더 자주 침묵하고, 더 무겁게 판단하려 한다. 그것이야말로 진짜 수사관이자 인간이 겪는 성숙의 과정 아닐까.

때때로 규칙을 어길지라도 수도원의 규율을 어기진 않는 정의의 대리인 캐드펠과의 작별인사가 더욱 아쉽게 느껴진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슬픔과 함께 하는 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