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는 종종 사랑과 예술을 혼동했다

첫 번째 사람

by 유수풀


D는 사진을 찍는 사람이었다.


D와는 사진 동호회에서 처음 만났다. 재미없는 주말을 어떻게 보낼까 고민을 하다 친구의 추천으로 동호회를 나가보기로 결심했던 날이었다. 기세 좋게 나간 것도 잠시 필름 카메라 하나를 덜렁 들고 나온 나는 저마다 모인 사람들 옆에 뻘쭘하게 서서 풍경이나 깔짝이며 찍고 있었다. 첫날은 무조건 참석해야 한다기에 얼결에 끌려간 뒤풀이 자리에서도 꿔다 놓은 보리자루 마냥 구석에서 혼자 맥주나 홀짝이며 일어날 타이밍을 재고 있었다.



올림푸스 필름 카메라 괜찮죠, 저도 그걸로 처음 시작했어요.



D는 커다란 카메라 가방을 옆에 턱 내려놓고는 내 옆에 편하게 앉았다. 나는 카메라를 만지작 거리며 초보가 쓰기는 편한 것 같다고 가볍게 대꾸했다. D는 내게 사진 찍는 거 좋아해요? 하고 물었다. 나는 맥주잔을 쥐고 고개를 끄덕였고 D는 주인 잃은 아무 컵에나 맥주를 따라 내 앞으로 들이밀었다.

건배.


나는 처음 만난 사람 앞에서 뻔치 좋게 내 이야기를 늘어놓을만한 사람은 아니었다. 첫 건배 이후로도 별 말을 꺼내지 않자 D는 머리를 긁적이더니 내가 찍은 사진을 보고 싶다고 말했다. 나는 이전에 찍어둔 사진들을 내밀었다.


D는 요리조리 휴대폰을 돌려보더니 좋네요, 하고 담백하게 말했다. 진짜로 좋았던 것인지 아니면 처음 보는 사람에게 지키는 통상의 예의 같은 것인지는 몰랐다. 나는 그제야 D 쪽으로 몸을 기울여 고마워요, 하고 맥주잔을 내밀었다. D는 씩 웃으며 제 몫의 맥주잔을 내밀어 잔을 부딪혔다. 맥주를 몇 잔 더 하고 나서 D는 내 번호를 물었다. 나는 흔쾌히 명함을 건넸다.






D에게 처음 연락이 온 것은 바로 다음 날이었다.


나는 퇴근을 하려다 말고 D가 있는 곳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우리는 종로 3가 포장마차 거리 중 아무 곳이나 들어가 찬 소주를 나눠마셨다. 우리는 대강 제육볶음을 흉내 낸듯한 싼 양념 맛의 고기와 퉁퉁 분 잔치국수를 두고 서로의 이야기를 안주 삼아 밤새 술을 마셨다.


D는 프리랜서 사진가였다. 나보다는 4살이 많았다. 가끔 해외에 나가 사진을 찍고 국내에서는 전시회를 열었다. 삼청동, 영등포, 지하철 역까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자리가 생기면 사진을 걸었다. 아무리 카메라를 다르게 들어도 똑같이 찍히는 장소가 가장 어렵다고. 자신이 담아내는 것을 완벽하게 이해해주는 사람을 찾으면 그때 사진 찍는 일을 정리할 것 같다고 말했다. 사진을 그만두면 뭘 할 셈이냐 물으니 좋아하는 동네에다 술집을 하나 열고 싶다고 말했다.




여름 끝무렵 조금만 움직여도 등을 타고 흐르는 땀 때문에 얼굴에 열이 올랐다. 달달거리며 돌아가는 선풍기 소리에 가끔 D의 목소리가 먹히고, 도로를 지나가는 차 소리에 내 목소리가 묻혔다. 바람이 불 때마다 카운터 비슷한 책상에 놓인 고양이 인형이 흔들렸다. D는 씩 웃었고 나는 무릎을 두드리며 웃었다. 땅을 못 짚을 만큼 취한 날 우리는 서울극장 앞에서 키스를 나눴다.


D와는 그 이후로 종종 만났다.


어떠한 사이라고 정한 것은 아니었다. D는 가끔 나를 불러 술을 마셨고, 나는 퇴근하고 갈 곳이 없을 때면 D의 작업실로 향했다.




가끔은 D의 모델이 됐다. D가 시키는 대로 앉거나 누워 카메라를 바라보고 있자면 속이 꼬였다. 배가 울렁대며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D가 담은 나는 대부분 활짝 웃거나 아니면 다른 곳을 응시하는 중이다. 어색하게 웃거나 땅을 바라보면 D는 냉큼 렌즈에서 눈을 떼고 짐짓 엄한 소리로 다시,라고 말하곤 했다. 찍은 사진들을 보고 있는 D의 무릎에 누워 나는 현상해둔 사진을 넘겨다봤다.



카메라 렌즈 너머로 보면 사람들이 달라 보여? 다르지. 뭐가 다른데? 좀 더 예뻐 보여 다들. 내가 원하는 틀 안에서만 볼 수 있잖아.



D는 굳이 따지자면 사람을 싫어하는 편에 속했다. 입버릇처럼 나는 사람들이 싫다고 말하는 D였음에도 D의 카메라에 풍경이 담기는 일은 손에 꼽았다. 나는 그런 D를 보며 예술가들의 모순이란 이해하지 못할 변덕이라며 혀를 차곤 했다. D는 그런 나의 냉소적인 태도에도 웃으면서 다시 내 자세를 고쳐주며 내 사진을 찍었다.






D를 만나고 6개월쯤 지난 겨울이었다.


D는 개인전을 앞두고 극도로 예민해져 있었다. 생각대로 진행되지 않는 과정들도 문제였지만 그가 꼽은 가장 큰 문제는 사진 그 자체였다. D는 개인전에 올릴만한 사진을 고르지 못했다. 그의 능력 부족인지, 조급해진 마음 탓인지는 모르겠다.



나는 D의 예민함이 나에게까지 영향을 미치는 밤들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D도 나에게서 더 깊은 이해나 공감을 받지 못하리라는 것을 알았는지 어느 순간부터는 입을 다물었다. 우리는 을지로 구석에 자리한 아무런 와인바에 들어가 이름 모를 싸구려 와인을 마셨다. 하얀 식탁보에는 우리 이전의 누군가가 떨어뜨린 와인 얼룩이 점점이 묻어있었다. D는 다소 시무룩해진 얼굴로 땅콩을 집어 들었다.



D의 개인전이 엎어진 날이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D는 자신이 생각한 대로 전시회를 진행하길 바랬고 전시회장 측과 D의 생각의 간극은 좁혀지지 않았다. 몇 번의 고성이 오간 후에 D는 자신의 작품들을 챙겨 전시회장을 나왔다. 자신의 등에 꽂히던 사람들의 속닥임을 피해 빠르게 도망치고 나니 나를 만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이야기했다.



우리는 D가 시시하다고 투덜댄 갤러리의 사람들을 비웃었다. 미래에 투자할 생각은 하나도 없는, 괴상한 넥타이들을 두르고 엄격하게 가슴께에 팔짱을 낀 채 가벼운 품평을 일삼는 사람들을 우리는 실컷 비웃어주었다. 너희들이 예술을 아느냐! 불콰해진 낯빛으로 D는 중얼거렸다. D는 절대 타협하지 않을 것이라고도 했다. D는 어설픈 예술가였다.



나는 속으로 코웃음을 쳤다. 네 그 고집으로 만들어진 것은 엎어진 개인전과 무너진 자존심밖에 더 있더냐. 나는 D가 말한 예술이 우스웠다. D의 지갑은 늘 얄팍했다. 대부분 돈을 내는 것은 내 쪽이었다. 처음에 얼굴을 붉히던 D는 언젠가부터 내 뒤에 뻘쭘하게 서서 지갑이 열리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가끔 그가 필요로 하는 것들을 알아서 '선물'하기도 했다. D는 자신의 예술을 기꺼이 존중해주는 나를 꽤나 중요한 사람으로 취급했고, 가끔은 나를 사랑하는 것 같다고 중얼거렸다.


D가 말한 '예술'이란 몇몇의 가난한 젊은 예술가들이 그렇듯 자존심과 고집으로 곱게 포장된 허영심에 불과했다. 나는 그러한 내 뒷바라지로 간신히 형태를 유지하고 있는 그의 '예술'과, 그의 반복된 실패와 부러질 줄 모르는 고집이 모두 못마땅했던 시기에 서 있었다. 나는 가끔 D를 내려다봤고 D 역시 그러한 내 시선을 읽었을 것이다.





D는 와인바에서 나와 불 꺼진 조명가게 앞에서 담배를 피웠다. 두 개비째를 꺼냈을 때 나는 D의 담배를 빼앗았다. 나는 D를 향해 양 손을 벌렸다. D는 물끄러미 나를 내려다봤다. 그리고 D는 곧 나를 안았다. 동정과 위로가 뒤섞인 미지근한 포옹이 끝났을 때 내 손에 들려있던 담배는 다시 D의 손으로 돌아갔다.


키스할 줄 알았는데.



D는 미간에 주름을 잡더니 진심이 아니잖아, 하고는 담배를 다시 물었다. 나는 D의 옆에서 담배 연기가 뽀얗게 살이 오르는 것을 구경했다. 날이 흐렸다. 공기 중에는 텁텁한 흙냄새가 났다. 나는 땅을 발로 차며 어색한 공기를 밀어냈다.



D는 꼬인 혀로 아주 전형적인 물음을 던졌다. 넌 날 사랑하긴 하니.

나는 아주 잠깐 망설였다. 그런 것도 같아. 아니 사실은 잘 모르겠어.


D는 버림받은 강아지 같은 눈으로 나를 내려다봤다. 나는 그 눈을 삼키기가 버거워 시선을 옮겼다. 하필 가 닿은 곳에는 꺼진 조명가게 간판 옆에서 돌고 있는 미러볼이 있었다. 우스웠다. 세상은 요지경이다. 누구는 사랑을 묻는데 미러볼은 빙글빙글 돌고.

풉-



타이밍 좋지 않게 터져 나온 웃음에 D는 내게서 물러났다. 나는 당황스러운 표정으로 D를 잡으려고 했지만 D는 말없이 앞서서 걸어갔다. 내가 지하철 플랫폼 끝으로 사라지기 전에 등을 돌려 걸어갔다. 화가 난 발걸음을 보며 나는 다시는 D를 보지 못하리라는 생각을 했다.


나는 가끔 D와 함께 마시던 종로 3가 포장마차에 걸려있던 고양이 인형의 슬픈 눈이 생각난다. 그리고 힘없이 빙글빙글 돌던 미러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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