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인 없는 모자를 조심하세요

여름이 온다

by 유수풀



퍼레이드를 봤다.


내가 본 것은 마차 위의 주인공이 아니었다. 내 시선이 멈춘 곳은 퍼레이드가 끝날 때까지 행렬의 맨 끝에서 비틀비틀 겨우 박자를 맞춰 걷는 남자였다. 남자는 조금씩 걸음을 나눠 걸었다. 그 자리에서 순식간에 녹아 없어진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무거운 걸음이었다. 남자가 쓰고 있던 것은 낯익은 모자였다. 얼마 전 집을 나간 모자였다. 이번에는 어떤 사람에게 간 거니.


나는 모자가 변한 모습을 찬찬히 뜯어봤다.



모자에는 자신의 몸만큼 기다란 깃털이 달려 있었다. 퍼레이드용으로 만들어진 우스꽝스러운 모자. 남자는 내 바로 앞을 지나쳐 멀어져 갔다. 낯익은 냄새가 났다. 으레 외로운 사람들의 몸에서 나는 곰팡이 냄새 같은 것, 혹은 혼자 너무 오랜 시간을 보낸 탓에 어깨 위에 쌓인 먼지 냄새라든가.


나는 잠깐 고개를 돌려 마차 위의 행복한 주인공을 노려봤다. 행복을 그렇게 많이 갖고 있으면 좀 나누지 그랬어요. 말도 안 되는 억지들로 웃고 있는 사람들을 끌어내리고 싶은 것은 언제나 악역에 적합한 나 같은 사람의 못된 심보다.


시들어가고 있는 남자에 대한 알량한 동정심이기도 했다. 나는 어깨를 으쓱하고 모자가 식사를 시작하는 모양을 지켜봤다.


퍼레이드 행렬이 골목을 넘어갈 때쯤 남자는 모자 속으로 사라졌다.





정확히는 순식간에 아가리를 활짝 벌린 모자가 남자를 우걱우걱 삼켰다고 표현하는 편이 좋겠다. 주변 사람들은 미동도 없이 앞을 보고 걸었다. 행렬 끝에서 삐걱대던 남자가 하나 빠졌다고 퍼레이드가 망가지는 일도 없었다.


그러니까 이런 종류의 태초의 모자 말고도 충분히 모자들은 당신을 찾을 수 있다.


모자만 길거리에 덩그러니 남았다.


나는 퍼레이드 뒤를 천천히 따라갔다. 모자는 그새 사람들의 발에 밟혀 주변에 우스꽝스러운 깃털 몇 개를 떨구고 길가로 밀려나 있었다. 나는 남자를 먹어치운 모자를 집어 들었다. 모자는 내 손에 알맞게 줄어들었다. 푸른색 가짜 공작 깃털들도 우수수 빠졌다.


올해는 몇 명의 사람을 먹어치웠니. 세상이 워낙 말도 안 되는 세상이니까. 사람을 집어삼키는 모자 따위도 어떻게 보면 이해가 아주 불가능한 일은 아니지 않을까요. 나는 모자를 들고 다시 걸었다.


날이 많이 따뜻해졌다. 입춘이 지났다더니 절기가 아주 신통하다. 해는 길어졌고 낮에 햇빛이 내리쬐면 패딩에 덮인 살갗은 덥다고 아우성을 쳐댄다. 모자는 방금 삼킨 남자가 아주 마음에 들었는지 콧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당신이 알지는 모르겠지만 모자들의 식성은 독특했다. 모자들은 주로 어둡고 축축하고 슬프고 우울한 감정들을 찾아 움직인다. 모자들은 알맞은 감정을 찾으면 그들이 가장 좋아할 만한 모습의 모자로 천연덕스럽게 근처를 맴돈다. 마침내 모자를 집어 든 사람이 머리 위에 슬며시 올려두면 모자는 입맛을 다시기 시작한다. 그리고 적절한 타이밍에 짐승 같은 아가리를 쩍 벌리고는 한 번에 꿀-꺽 삼키고 마는 것이다. 그렇게 삼킨 사람이 수천이었다.


가장 빨리 모자를 불러냈던 사람은 32살짜리 게이머였다. 아마도 맨날 '죽고 싶다', '죽어버릴까'와 같은 말들을 노래처럼 불렀던 것으로 기억한다. 모자는 한달음에 달려가 그가 좋아하는 브랜드의 비니로 변했다. 게이머는 자신의 것이 아닌 비니를 보고 고개를 갸웃하다 이내 비니를 집어들었다. 그의 머리 위에 올라가자마자 모자는 성질 급하게 입부터 벌렸다. 안타깝게도 게이머는 자신이 잡아먹히는 순간을 목도한 유일한 사람이었다.




잡아먹힌 게이머는 며칠 후 집에 돌아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자신의 모든 긍정적인 감정이 잡아 먹히는 순간을 목격한 후 삶을 영위할 수 있는 사람들은 손에 꼽을 만큼 적었다. 모자는 집에 돌아온 후 내게 크게 혼났지만 만족스러운 미소를 띤 모자의 기를 죽일 수 있는 방법은 크게 없었다.



우리끼리는 그것을 '모자 자살법'이라고 불렀다.



실제로 죽는 것은 아니다. 다만 모자는 의욕이나 긍정적인 생각, 열정 등을 깡그리 모아 다시는 소생할 수 없도록 집어삼킬 뿐이다. 세상에서 잊히는 방법 중 가장 안정적이고 고통이 없는 합리적인 죽음의 방식이기도 하다. 진짜 죽음으로 이어지는지 아닌지는 논외의 이야기지만.


이런 부류의 흔한 모자까지도


우리는 그런 결과까지는 책임지지 않는다. 우리는 모자를 훈련시키는 사람들이지만 짐승 같은 모자들은 크게 우리의 영향을 받지 않고 자라난다. 모자의 능력에 따라서 변할 수 있는 모자의 폭도 달라진다. 최근 모자들이 많이 바빠진 이유는 역병을 타고 다니는 사람들의 우울한 감정 때문이다. 공기 중으로 전염되는 것은 비단 역병의 바이러스뿐만은 아닌지 신난 모자들은 집을 버리고 밖을 떠돌며 수도 없이 사람들을 집어삼켰다.



안타까운 이야기다.

나는 지붕 위에 앉아 사람들을 내려다봤다.

사람들은 모자가 태초에 악마를 담아다니던 주머니라는 것을 알텐가. 나는 또 누군가를 찾아가고 없는 모자의 빈자리를 내려다봤다. 그러니까, 모자가 당신을 찾아간다면 꼭 조심하시길.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D는 종종 사랑과 예술을 혼동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