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유수풀 Mar 05. 2021

달리기는 꼴찌를 해본 적이 없는데

비정기적 우편함

언젠가 뻘에서 조개를 본 적 있다.

물을 먹어 무거워진 몸을 뻘 위에 앉히고 가끔 숨을 쉬러 올라오는 게들과 이름 모를 작은 물고기들을 구경했다. 그러던 중 조금 큰 구멍에서 조개가 올라왔다. 조개는 숨을 죽이고 주변이 조용해지기를 기다린다. 그리고 나서 조개는 미리 발을 뻗어 뻘을 토닥토닥 두드린다. 위협적인 것을 발견하면 딱딱한 껍데기 안으로 순식간에 몸을 숨긴다. 그리고 다시 조용해지면 움직일 수 있을만큼만 조금씩 뻘을 끌어다가 이동하는 것이다. 나는 조개가 내게서 멀리 멀리 멀어질 때까지 지켜보고 있었다.


나랑 닮았다.

순식간에 움츠러드는 조개의 발은 내가 걷는 걸음을 닮았다. 겁이 많다는 건 잃을 게 많다는 뜻이라는데 다 틀린 말이다. 잃을 게 없으니까 내 손에 쥐어진 이 하찮은 것까지 잃어버릴까 봐 겁이 난다.



모와 만나면 항상 인간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사람은 좀 더 마음을 쓸 줄 알고 따뜻한 존재일 것 같다는 느낌인 반면 인간은 아무래도 생물학적 종의 일부 같아서 마음대로 정의를 내려도 될 것 같다는 것이 모의 주장이다.



나는 대강 모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오늘 나를 불러낸 이유에 대해 물어본다.


모는 3년 정도 다니던 회사 생활을 청산한 참이었다.


그만두면 뭐할 건데?

나 원래 하고 싶었던 거 해야지.



모는 늘 습관처럼 자기 이름을 건 브랜드 론칭을 말했다. 목표가 있는 삶은 언제나 멋있다. 모는 대부분 발 앞에 뭐가 있든 일단 한 걸음을 내딛고 보는 스타일이다. 그리고 나는 모의 삶에 한 번씩 끼어들어 모가 가지고 있는 에너지를 받는다. 모는 그렇게 자기 사업을 시작하기 위해 하나를 내려놨다. 나는 용기는 없으면서 욕심은 많다. 하나를 쥐고 또 다른 것을 쥐고 품 안에 안은 여러 것까지 함께 안고 걸어가다가 결국은 다 바닥에 엎지를 때도 있다.


달리기는 꼴찌를 해본 적이 없는데 인생에서는 늘 꼴찌로 달리는 기분이다.


이런 생각이 든다는 것은 뭔가가 내가 현재 불만족스러운 점이 있다는 것이다. 몇 해를 넘기고서야 나에 대해서 아는 것들이 생겼다. 나를 달래는 법도 알았다.

나는 이렇게 못난 기분이 들 때마다 광화문을 걷는다. 광장 끝에서 끝까지 걸어 내가 아는 건물 중 가장 웅장하고 기분 좋게 펼쳐진 광화문의 끝 처마를 보면 가라앉은 기분이 조금 날아간다. 그대로 해가 질 때까지 기다리면 광화문을 지나쳐 노을이 살포시 서촌을 배경으로 가라앉는다. 유난히 노을이 크게 지는 날이면 사람들은 가던 길을 잠깐 멈추고 하늘을 본다. 그래 천천히 걸으니까 이런 것도 볼 수 있잖아.




바쁘게 바닥을 보며 걷는 사람들 속에서 나는 조용히 광화문 해치의 앞에 서서 해가 질 때까지 기다린다.

해가 가라앉고 나면 사람들이 걷는 모양이 보이지 않는다. 그러면 나는 그제야 내 걸음을 뗀다. 나를 다룰 수 있는 방법을 안 것도 무작정 달리지 않고 천천히 걸어서 알게 된 것들이다. 그냥 그렇게 움츠러들지만 않게 나를 다독이는 것도 다 나의 몫이라는 것도 이제는 안다. 나는 달리는 속도는 빨라도 걷는 속도는 느리니까.

매거진의 이전글 노인에게 봄은 언제 오는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