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유수풀 Feb 22. 2021

노인에게 봄은 언제 오는가

비정기적 우편함

나는 음식점 옆 매번 같은 자리에 앉아있던 노인을 기억한다.



초라하게 무너진 종이가방을 옆에 두고 겉이 거의 벗겨진 돗자리를 둘둘 말아 품에 끼고 있었다. 노인은 며칠간 같은 자리에 같은 자세로 조각처럼 앉아 있었다. 해가 조금 더 높아지자 혼자 앉아있는 노인은 음식점 옆으로 늘어진 사람들 사이에 가려졌다. 노인은 사람들을 올려다볼 수 있는 힘이라고는 없다.



그저 오늘은 해가 빨리지나보다 할 뿐이다.



노인은 행복한 주말을 즐기는 사람들의 줄이 길어질수록 조금 더 움츠러들었다. 나는 내가 앉아있는 카페에서 내려다보이는 노인의 이야기를 멋대로 상상한다. 당신은 누군가의 아버지였나요. 당신은 어느 손녀딸을 품에 안았던 할아버지일지도 모르죠. 지금은 곱아버린 손으로는 어떤 일을 했나요. 표정이 사라진 얼굴로는 어떤 표정을 주로 지었나요.



그는 웅크린 품 속에서 어떤 생각을 할까. 나는 갑작스럽게 울린 전화에 노인에게서 눈을 뗐다. 짧지 않은 통화가 끝나고 나서 다시 내려다 본 음식점에 노인은 없었다.  



나는 곧 내 일상이 아닌 것들 속에 그를 묻고 잊어버렸다. 그리고 며칠 뒤에 뉴스에서는 한파를 예고했다. 노인이 기억 저편에서 등장한 것은 찰나였다. 곧이어 무성의한 걱정들이 대충 근처를 떠돌았다. 그는 서울 어디를 헤매다 지친 몸을 뉘일 것인가. 칼바람을 피할 곳이 없는 우리 동네 어디를 전전할 것인가. 창문 사이로 파고드는 웃풍에 대충 바람을 막아놓은 신문지가 바스락 소리를 냈다. 겨울 걱정은 내가 받아야겠다며 쓴웃음이 말랐다.  



이번 주말은 제법 봄 흉내를 내는 바람이 부는 날이었다.


먹고 살만해지니 그 노인 생각이 났다. 겨우내 어디서 지냈을지, 바싹 마른 덤불 같은 손으로 무엇을 잡고 버티었을지가 궁금해졌다. 나는 음식점 옆 자리에서 꾸벅꾸벅 졸던 그 노인을 봄이 되면 가끔 떠올릴 것 같다. 겨울을 이겨내고 어디선가 나타난 노인을 보고 있으면 나도 진득하니 이 땅에 발붙이고 싶다는 충동이 조금은 들는지.     

매거진의 이전글 겨울의 가장자리에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