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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수풀 Feb 20. 2021

겨울의 가장자리에서

비정기적 우편함

겨울이 떠나가는 소리가 들린다.


아쉬운지 느려진 발걸음을 따라 차가운 겨울바람이 요동친다. 바람이 지나가는 골목에 서 있으면 바람이 우는 소리가 들린다. 어딘가 찢어지는 소리 같기도 하고 부딪히는 소리 같기도 한 요상한 소음들이 가끔씩 나를 밀친다.


올해는 봄에 눈 소식이 있을지 모르겠다. 작년 겨울은 심술이 심해 3월 봄볕에 눈을 뿌려 뭇사람들의 원성을 샀는데. 당신이 있던 겨울은 그런 심술 속에서도 제법 따뜻해 지구의 끝을 논하기도 했었다. 올해는 변덕이 죽 끓듯 하는 얼음장 같은 날씨에 손끝이 저렸다.      


입춘이 지나고 나니 그 겨울 동장군도 별 수 없는지 볕도 한결 따스해졌다.



해가 고개를 내밀 때마다 잠깐씩 데워지는 방에 앉아 있으면 나도 모르게 스르륵 잠이 든다. 내 위로 두껍게 깔린 겨울 햇살을 가려주던 널찍한 등의 부재를 실감할 때다. 겨울 볕이 이렇게 따가웠나 눈 옆에는 언제 흘렀는지 모를 눈물이 볼품없이 말라붙어있다. 집 앞 만두집 사장이 덜그럭거리며 빈 그릇을 내놓는 소리 외에는 조용한 밤이다. 옆집 보일러 돌아가는 소리가 가끔 조용한 소음이 된다.   

  

나는 가끔 집이 너무 조용하다는 생각이 들면 소리를 지르고 싶다. 꽉꽉 눌러 담은 감정이 터져 나온 소리는 어떤 모양일지 궁금해 입을 달싹이다가도 다시 입술을 물어 참는다. 쓸데없이 큰 거울은 내가 방 어디에 있든 내 조각들을 비춰준다. 이불 밑으로 삐죽 나온 발도 제멋대로 붕 뜬 머리카락도 어디 숨을 곳도 없는 좁은 방안 구석구석을.      



나는 이제야 당신의 부재를 깨닫는다. 언제나 숨을 곳이 되었던 당신이 없는 겨울의 가장자리가 여느 때보다 매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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