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유수풀 Feb 06. 2021

늘 진심 전하는 것이 힘이 든다

비정기적 우편함



왕십리 광장에 서서 서울의 밤을 혼자 지켜봤다.

역병 아래 모두가 처마 밑으로 숨어든 밤은 멸망한 도시 같았다.

너는 어디쯤 있을까 생각하던 밤이 있었다.



서울이 좁다, 세상이 좁다 말은 많은데 이 좁디좁은 서울에서 널 우연히 마주친 적은 단 한 번이 없다. 반갑지 않은 얼굴은 길에서 인사도 했는데 네 얼굴 발견하기가 그렇게 힘들더라.




얼마 전에는 오랜만에 우리가 같이 가던 술집을 들렀다. 우리랑 가끔 농담 따먹기를 하던 사장은 없었다. 이상하게도 음식 맛은 그대로더라.


이야기가 길어지자 술이 금방 식었다. 나는 식은 술을 싫어한다며 더는 손을 대지 않았다. 너와 같이 술을 마실 때는 술이 식든 음식이 식든 상관하지 않았는데 신기하지. 맞잡은 손이 따뜻해서 그랬나 이유는 잘 모르겠다.



가끔 마음이 불안해질 때면 네가 내 버스를 기다려주던 정류장에 앉아 마음이 안정될 때까지 기다린다. 우연처럼 네가 내 앞에 나타난다면 나는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지 턱없이 모자란 상상도 가끔 했다.

나는 네 번호를 지운 적이 없어 얼마든지 짧은 신호음 끝에 널 찾을 수 있다. 너는 내 전화를 받지 않은 적이 없었으니까. 굳이 우연을 빙자해 너를 마주하고 싶은 것은 내가 겁이 많은 탓이다.


같이 걷던 길들이 기억나면 괜히 심술이 난다



나는 그 신호음 끝에 걸린 망설임을 감당할 자신이 없다. 견고해 보이는 마음에는 생각보다 틈이 많다. 살랑이는 바람이 돌풍이 되면 와르르 무너질 것이 내가 쌓은 마음의 두께다.

나는 너와 마주쳤을 때 태연하게 건넬 수 있는 인사말 따위는 준비해도 네가 전화기를 들 때까지의 기다림이 더 버거운가 보다.




자주 아프다고 들었다.

통 아프질 않던 애가 아프단 소식이 들리니 짠했는데 걱정도 사치라 마음을 거뒀다. 그냥 건강하겠지 믿으려고 해. 그놈의 담배는 줄이는 게 나을 텐데.


행복 좀 해라.


진심인데 늘 진심 전하는 게 이렇게 힘이 든다.

매거진의 이전글 돌아보지 말라는 금기 속에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