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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수풀 Feb 04. 2021

돌아보지 말라는 금기 속에서

비정기적 우편함


내가 두고 온 것들이나 후회되는 것들은 자꾸 내 뒤통수를 당긴다.

날 좀 돌아보라고.


그럴 때마다 나는 이동진의 칼럼을 읽는다. '뒤돌아보지 말 것'

한 해에, 아니 한 달에 20번 이상 읽은 적도 있었다. 아마 그때는 누군가와 헤어지는 중이었을 것이다.


칼럼에서는 여러 이야기를 예로 든다. 오르페우스 신화 속의 에우리디케, 충남 연기의 장자못 전설 그리고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까지. 어느 정도 설득력이 있는 말이다. 심지어는 공포영화에도 있다. 공포영화마다 약속된 것 마냥 '돌아보지 말라'라고 빨간색으로 찍힌 선명한 도장들은 진짜로 돌아봤다가는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는 그런 막연한 공포감을 심어준다.


돌아보지 말라는 강력한 경고는 결국 과거로의 회귀를 금하는 것이다. 이유는 돌아가고 싶을 테니까. 이미 벌어진 결과를 알고 돌아본 과거는 늘 아쉽다. 놔두고 온 것들은 늘 애틋하고. 다시 한번 본 것에 만족하고 다시 발걸음을 뗄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예전에는 뒤를 돌아보다 못해 과거에 살았다.

사람을 잃을 때마다 내 행동과 말을 하나하나 검열하고 내 탓으로 돌리며 괴로워했다. '나와 인연이 아닌 사람이 있다'는 말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그런 말은 내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는 속 편한 사람들이나 하는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그러니까 나는 주변 사람이 들어다 달래 놓으면 다시 동굴 속으로 들어가 내 속을 찢는 짓을 반복해서 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내 새해 목표는 늘 연연하지 말자였다. 어디에 연연하는지는 정하지 않은 채 그냥 어디에든 미련을 두고 마음을 쓰는 것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해결법을 찾아 발버둥 치며 깨달은 점은 뻔하게도 시간이 약이라는 것이었다. 시간이 지나니까 상처는 없어지지는 못해도 흐려지고 옅어졌다.





작년에는 두 명의 친구를 지웠다.

꽤나 오래 봤던 친구들이었다. 애정이 깊었던 만큼 많이 다쳤던 것 같다. 아픔이 커지면서 친구를 그만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고 실행에 옮기기로 결정했다. 마음속에서 그 친구들의 자리를 없애는 것은 쉽지 않았다. 이 친구들이랑 더 이상 보지 않는다면 또 어떤 후회를 해야 할지가 두려웠다. 친구와 인연을 정리하는 것을 다른 친구에게 상담하고 있는 나도 웃겼다.



'이제 친구 하지 말자'라고 이야기한 것은 아니다. 서서히 멀어지기로 했다. 약속에 응하지 않았다. 연락이 와도 답장은 내킬 때 한 번씩 했다. 그렇게 몇 달을 반복하자 한 친구는 요새 바쁘냐고 전화가 왔다. 한 친구는 연락을 더 이상 하지 않았다. 그들의 반응을 내가 감히 예상하지 않기로 했다.




생각보다 괜찮았다.


언젠가는 연락이 오면 받을 거였고 만나자고 하면 가끔 밥 한 끼 할 정도의 사이로는 남을 수 있다. 다만 이제는 그 친구들을 '소중하다'는 범주에서는 보지 않게 될 것이다. 그것이 내가 정의한 정리였다.

그리고 남은 숙제는 뒤돌아보지 않는 것이다. 내가 못해준 것, 아쉬운 것들에 골몰하는 과정에 아까운 시간을 쓰지 말도록 하자는 것이 내가 내린 결론이다.




그러니까 뒤돌아보지 않기로 약속한 1월이 저물고 2월을 달리고 있다.



앞에 좋은 것들이 더 많을 거라는 막연한 기대로 2월을 시작했다. 돌아가면 어쨌든 그만큼 더 앞으로 걸어와야 한다. 넘어지지 않으려면 앞을 보고 걷는 편이 좋다. 뒤돌아보는 것보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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