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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수풀 May 27. 2021

당신은 장미향이 어떤지 아는 사람인가요

비정기적 우편함

작년 여름은 어떻게 보냈더라.



당신은 장미향이 어떤지 아는 사람인가요.

장미향이 어땠는지는 매번 까먹는다. 매년마다 다른 장미를 만난다. 다 태워버릴 듯 쨍쨍하게 내리쬐는 가문 여름 햇빛에 새애빨간 꽃잎을 무겁게 늘어뜨리는 해가 있었다.


어떤 해에는 굵은 비가 땅을 때리는 요란한 소리 가운데 제일 시끄럽게 한 무더기 피어있는 장미를 만났다. 그 어떤 해에도 장미향을 기억해본 적이 없는데 작년은 뭐가 달랐나.


비가 오는 날이었다. 걷다가 마스크를 뚫고 들어오는 강렬한 향에 잠깐 걸음을 멈췄다. 고개를 들어보니 머리에 닿을 만큼 길게 늘어진 장미 넝쿨이 담을 넘어와 있다.



너였구나. 나는 고개를 바짝 꺾어 코에 닿을 듯 내려온 장미를 마주한다.


그리고는 장미를 향으로 발견한 적이 있나 생각해본다. 여유롭게 담을 따라 줄지은 장미향을 건너간다.

화려한 색만큼이나 화려한 향이구나.

촉촉하게 비를 머금어 한껏 무거워진 향이 이지러진다.




무겁고 달다.


여태 내가 만났던 장미향들은 다 가짜, 너만이 진짜다. 5월의 장미는 두 손에 함뿍 담길 정도로 활짝 피어있다. 손을 대면 후두둑 떨어질 듯 한껏 몸을 펼친 모습이라 감히 손을 대지도 못하고 근처를 서성이기만 한다.


몸을 활짝 젖혀 속을 드러낸 장미 안에서는 끊임없이 초여름이 흘러나왔다. 가려던 곳도 잃은 채 담벼락 밑의 장미를 들여다보느라 여름을 다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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