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유수풀 Jan 15. 2022

화화화(火禍和)

비정기적 우편함

1월이 절반 정도 지났다. 2주 정도는 화를 많이 냈다. 화를 낼 일들이 실제로 많았는지 역치가 낮아진 것인지는 모르겠다. 그전까지는 어떻게 했냐. 화를 내는 게 오히려 힘들고 버거운 마음에 입을 딱 다물어버렸다. 화를 내야 하는 일이면 그냥 그 자리를 피했다. 그게 더 나은 선택처럼 보였다. 게다가 카톡이나 전화로 싸워야 하는 경우는 더 하다.


표정이 없으면 다 거짓말 같다. 미안하다는 말도 마음이 아프다는 말도. 그래, 그렇구나, 그런데 내가 그걸 어떻게 믿지. 그러면 내가 어떻게 하면 되냐고. 어떻게 하면 되겠냐고 묻는 사람의 앞에서는 나도 할 수 있는 말이 없다. 나도 모르겠어. 이번엔 피하는 게 아니라 정말 알 수 없어서 그러는 거야. 정말로 모르겠는 걸 어떡해.


나름의 정의가 있었고 규칙이 있었다. 함부로 화를 쏟아내고 후회하기 싫었다. 그래서 화의 도입부부터 망가뜨리는 일은 당장은 효과가 좋았다. 그래도 장기적으로는 좋지 않았던 것이 분명하다. 최근에 화를 뚝뚝 흘리면서 걸었던 며칠을 생각해보면 그렇다. 날이 너무 추워서 주머니에 손이 한 번에 안 들어가는 게 화가 났고, 바로 앞에서 놓쳐버린 버스에는 눈물이 났다. 헤어지는 일은 후련했고 이미 내가 빠진 진창은 깊게 느껴지지도 않았는데...


간단하게 결론을 내자면 ‘내 마음에는 그만한 여유가 없다’ 정도가 되지 않을까. 내가 넓힐 수 있는 마음이라 해봐야 선영이랑 함께 사는 열 몇 평짜리 쓰리룸 정도가 다다. 자본주의의 잔혹함을 깨달은 지난 1년을 복기하자면 그렇다. 내 마음은 그 정도의 여유밖에 없다. 예전에는 힘들면 밖을 떠돌았다.


다른 사람들의 온기에 기대서 그 온기가 식으면 또 다른 온기에 몸을 맡기며. 지금은 힘들면 망설임 없이 집으로 향한다. 하루종일 갇혀있던 따뜻하고 텁텁한 공기를 지나 그대로 침대로 들어선다. 몸을 굽혀 지나치게 푹신 거리는 매트리스 안으로 꺼져 들었다. 내 주변으로 우글거리며 모여든 이불솜과 탄력 좋은 메모리폼이 나를 숨겨주기를 바라며.


그리고 조금 시간이 지나면 다시 아침이 온다.

매거진의 이전글 밤은 외롭고 시간은 느려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