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비안 마이어 사진전
뉴욕, 1954년 ©Estate of Vivian Maier, Courtesy of Maloof Collection and Howard Greenberg Gallery, NY
비비안 마이어의 사진은 고집스럽다. 세상의 구석구석을 트리밍(trimming)한 마이어의 시선을 따라가다 보면 그가 길에서 보낸 시간 옆에 서 있는 기분이 든다. 찰나를 잡아내기 위한 위치에 서서 피사체를 보고 카메라를 본 다음 셔터를 누르는 그의 모습이 보이는 것 같다.
사진전은 비비안 마이어의 사진을 여러 가지 테마로 나누어 보여준다. 마이어에 대한 정보가 전혀 없어도 사진을 감상하는 데는 문제가 없다. 1950~60년대 미국과 시카고, 그리고 세계 각지의 길거리를 담은 마이어의 시선을 따라가다 보면 서랍에 잠들어 있던 카메라를 깨워보고 싶어진다.
정사각형의 따뜻한 흑백
현재 공개된 비비안 마이어의 사진은 대부분이 흑백사진이다. 컬러 필름이 없었던 시기 마이어는 롤라이플렉스를 활용해 12롤 짜리 흑백 사진을 찍었다. 6cm 정방형 필름으로 잘린 세상은 비비안 마이어의 상징이기도 하다. 정방형은 중앙에 시선을 집중시키는 방식이고, 트리밍된 나머지 세상에 대한 관객의 상상력을 자극하기도 한다.
롤라이플렉스는 위에서 내려다보고 찍는 구도로 되어 있어 찍히는 사람의 시야에 쉽게 잡히지 않는다. 즉, 캔디드 사진(candid photo, 스냅 사진)을 찍기 적합한 카메라라는 이야기다. 마이어의 사진 속 사람들은 이 카메라 덕분에 마이어를 직접 응시하고 있거나, 렌즈를 똑바로 쳐다볼 수 있을 정도로 가까이에 멈춰있다.
마이어가 카메라를 들고 피사체와 눈을 맞추는 동안 손은 셔터를 누른다. 마이어의 일생을 담은 다큐멘터리 영화 <비비안 마이어를 찾아서>에서는 롤라이플렉스를 사용하면 위로 올려다보는 구도로 촬영되기 때문에 평범한 행인의 사진에서도 힘과 위엄이 느껴진다고 설명한다. 피사체와 가까워질수록 사진은 생동감이 넘친다.
이는 단순히 사진을 잘 편집하고, 잘 찍기만 해서는 달성하기 어려운 영역이다. 사진은 어떠한 순간을 눈으로 포착하는 데서부터 시작한다. 같은 공간, 같은 시간에 있어도 누구는 건물 외벽에 비친 하늘을 찍을 수도 있고, 누구는 넘어질 뻔한 사람을 찍을 수도 있다. 어떤 것을 찍느냐를 결정하는 것은 온전히 사진작가의 영역이며, 마이어는 대부분의 사진에 사람과 사람이 만든 것들을 담았다.
피사체와의 거리가 가깝고 어떠한 여과도 없이 얼굴이 모두 드러나는 사진이다 보니 초상권에 대한 비판도 존재한다. 다만 촬영 시기인 1950년이 초상권에 대한 인식이 높은 시기가 아니었고 초상권을 주장할 수 있는 사람들의 생존 여부도 명확하지 않다는 점이 판단을 유보할 수 있는 배경이 된다.
사진에도 온도가 있다면 마이어의 사진은 36.5도가 될 것이다. 사람의 체온과 닮은 36.5도의 사진들.
바깥의 온도가 너무 높아서 겨울 사진 앞에 자주 서 있었다. 잔뜩 두꺼운 털옷과 코트를 입고 있는 겨울을 배경으로 한 사진조차도 따뜻하기만 하다. 겨울의 칼바람이나 떨어져 나갈 듯한 손끝의 저림같은 것은 느껴지지도 않는다. 마이어의 시선을 옮겨낸 사진을 보고 있으니 어쩌면 당연한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마이어는 시선을 옮겨 사람들의 뒷모습도 자주 찍었다. 사람의 뒷모습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특히 관찰자가 바라보고 있는 것을 인지하지 못할 때는 더욱 그렇다. 사랑하는 사람 앞에서 비비 꼬인 다리, 버스를 기다리는 지친 다리, 바쁘게 가게로 들어가는 모습 등. 마이어가 담은 사람들의 뒷모습에는 무방비한 진실함이 담겨 있다.
사진을 찍는 마이어의 뒷모습은 어떤 장면일지 궁금해졌다.
장소 미상, 날짜 미상 ©Estate of Vivian Maier, Courtesy of Maloof Collection and Howard Greenberg Gallery, NY
자화상
비비안 마이어는 거울, 그림자, 금속성 물질에 비친 자신을 촬영하곤 했다. 흔히 우리가 알고 있는 셀피(Selfie)지만, 익숙한 형태는 아니다. 경직된 얼굴과 표정으로 카메라를 보거나 자신을 어느 구석에서 비밀스럽게 담고 있다. 자기 자신조차도 길거리, 배경의 한 요소로 활용한다는 느낌이 강하게 든다.
웃지 않는 여성은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피사체인데, 한편으로는 신디 셔먼이 떠오르기도 했다. 신디 셔먼은 구성사진을 주로 찍던 작가로 자신을 어떤 역할로 투영해 찍는 자화상으로 유명세를 치렀다. 그의 사진은 ‘역할놀이’로 설명되기도 한다. 자신을 매개체로 활용해 여성을 관음적 대상으로 활용하던 미술과 미디어를 지적한 셔먼의 사진 속에는 수많은 웃지 않는 셔먼이 등장한다. 대상화된 모습의 여자들은 웃지 않고, 기괴한 표정으로 화면 밖을 바라보기도 한다.
다시 돌아와 보자면, 비비안 자화상의 수는 꽤 많다. 알려진 것만 해도 600장이 넘는다고 한다. 나는 셀카를 자주 남기는 편이고 표정도 다양하다. 늘 셀카를 찍을 때 나도 모르게 반영되는 습관 같은 것들이 있다. 마이어의 사진에도 그런 습관들이 반영된 것인지 묻고 싶었다. 그게 아니라면 내가 여기 존재했다는 증명과 같은 기록이었을까.
시카고, 1960년 ©Estate of Vivian Maier, Courtesy of Maloof Collection and Howard Greenberg Gallery, NY
아이들
당시 아이들 사진은 행복한 모습, 차려입은 모습을 찍는 게 관례였다고 한다. 비비안의 사진에는 울고 있는 아이, 길바닥에 앉아있거나 얼굴에 무언가를 잔뜩 묻히고 있는 아이, 겁먹은 얼굴의 아이 등 다양한 아이들이 담겨있다.
평생 아이와 함께 하는 삶을 살았던 그의 사진에 아이들이 담기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좋아하고 사랑하는 것들을 기록하고 싶은 것은 인간의 예술적인 본능과도 같으니까.
비비안의 사진에 어른들의 얼굴은 나오지 않는다. 어른들의 얼굴을 감춰야 사람들은 아이들의 얼굴을 본다는 점을 알았기 때문일까. 카메라의 위치 자체도 아이들의 얼굴 정도로 낮춰져 있다. 위에서 내려다보는 형태로 찍지 않고 아이들과 눈높이를 동등하게 한 것이다. 덕분에 우리는 그의 주변을 맴돌았던 아이들을 그 대신 기억할 수 있다. 말년을 함께 했던 겐스버그 가족은 ‘세 형제의 두 번째 엄마이자 위대한 사진가’라고 그를 기억했다.
전시를 함께 갔던 H는 전시장 안을 걷다 말고 ‘더럽게 잘 찍네’하고 중얼거렸다. 나는 그 옆에서 웃음을 터뜨렸다. 그러게 더럽게 잘 찍네. 비비안의 사진을 보고서 가장 솔직하게 내놓을 수 있는 반응이 아닐까 싶다.
그는 이제 세상에 존재하지 않아서 어떤 수식어가 자신을 따르는지는 알 수 없겠지만, 죽어서야 빛을 발했다는 방식의 평가는 별로 좋아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진을 현상하지 않은 것도 누구에게 주지 않은 것도 비비안의 선택이었으니 그게 빛이었는지 어둠이었는지 속단할 수는 없지 않을까.
‘불우한 유년 시절’, ‘죽음 이후에야 알려진 비운의 예술가’와 같은 설명을 배제하고 사진가 비비안 마이어의 작품들만 따라갈 수 있게 구성되어 있었던 점이 사진전에 대한 몰입도를 높여줬다고 본다. 몇 군데를 제외하고는 전부 사진 촬영을 금지해놓은 점도 마음에 들었다. (사진을 위한 사진전이 아니라 얼마나 다행이었는지.)
덕분에 세상을 얼마나 따뜻한 시선으로 보았는지, 그에게 아이들이란 어떤 의미였는지 만을 기억할 수 있었다. 세상에서 가장 따뜻한 흑백사진. 다음에는 흑백 필름을 사볼까 싶다.
위 리뷰는 아트인사이트에서도 보실 수 있습니다
https://www.artinsight.co.kr/news/view.php?no=6129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