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관절 치료와 한약 치료까지, 긴 기간 치료를 진행하며 환자분은 개인적인 이야기는 굳이 꺼내놓지 않는 분이었다. 주변에 항상 스트레스 받는 일이 가득하다 얘기하여도 그것의 정체가 무엇인지 털어놓고 싶어 하지는 않는 눈치였다.
그래서 부러 묻는 일도 없었다. 어떤 진실은 감감히 묻어 둠으로써 도움 되는 것도 있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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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어느 날, 평소와 다르게 본인의 이야기를 이것저것 꺼내놓으시던 환자분은 치료를 진행하며 처음으로 "확실히 좋아졌다"는 말을 건넸다. 나는 놀란 마음을 감추며 아주 다행이라고 답했다. 한약과 추나 치료를 받으며 통증과 피로감이 한결 편해져 이렇게 좋은 걸 나 혼자 받으려니 조금 미안하다고도 덧붙였다.
환자분은 그 문장 뒤에 한참의 공백을 넣어두고는 혹시 치매에도 이런 치료가 도움이 될 수 있는지 물었다. 나는 조금 생각한 후에 증상 전체를 온전히 좋아지게 만드는 데는 솔직히 어려울 수 있다고, 하지만 진행을 늦추는 문제라면 꾸준한 치료는 분명 도움이 될 수 있을 거라고 답했다.
"아, 그런가요. 사실 이건 제 남편 이야기예요."
환자분의 남편분은 다소 이른 나이에 시작된 치매로 말하고 이해하는데 어려움이 있다고 했다. 좌측 측두에서 시작된 치매는 언어와 관련된 능력을 앗아갔지만 사물에 대한 인지능력이나 뇌 전반의 기능은 손해를 입지 않았다.
마스크 위로 눈을 맞추고 한참을 이야기할 때 그 주변은 조금 촉촉해지고 붉어지기를 반복했다. 부부의 예약 날이 도래했을 때 나는 나의 말이 그에게 닿지 않으면 어떻게 해야 할까 고민이 들었다.
하지만 염려와 다르게 환자분은 내내 미소를 지으며 모든 것이 좋다고 말했다. 나는 그가 정말로 괜찮은지 확신은 들지 않았으나 입술 끝에 걸린 미소를 부적 삼아 치료를 진행하기로 했다.이제는 보호자가 되어버린 나의 환자분은 치료가 끝나고 연신 감사하다는 이야기를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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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자가 나의 말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어떤 방법으로 진심을 전해야 할까? 당신이 안녕하시길 바랍니다, 라는 마음은 어떻게 해야 전해질 수 있을까.
고민을 거듭해보아도 결국 결론은 이거였다. 말의 높낮이와 애정 어린 눈빛, 손끝의 결로 전하는 방법 밖에 답은 없었다.
가끔은 이미 결말이 정해진 것들에도 온몸으로 부딪혀야 할 때가 온다. 삶이 그렇듯, 맑게 피어오르는 봄날의 꽃봉오리가 그렇듯, 질 것을 알고도 피어나는 용기는 귀하다.
그러니 우리도 일단은 최선을 다해 던져보기로 한다. 손끝에 진심을 모으는 방법으로, 나는 최선을 다해 환자에게 마음을 전해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