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눈부신 Jan 05. 2024

사주(四柱)와 초심(初心)

지난 크리스마스, A는 각자의 초심(初心)을 적어보고 그를 나눠보는 시간을 갖는 것이 어떻겠냐고 물었다.


그놈의 초심. 그는 초심을 지키는 것의 중요성에 대해 종종 얘기하곤 했으니 놀랄 것은 없다. 나는 그것이 "우리의 초심"인지 물었으나 그는 삶 전반에 관한 초심을 이야기했다.


명문화된 첫 마음이 있다면 설령 길을 잃더라도 다시 돌아올 수 있을 거라고.


삶 전반에 대한 초심이라. 그것이 가치관과 유사한 이야기라면 언제고 길게 문장을 늘어놓을 수 있겠지만 초심을 세우고 그를 지키기 위해 살아온 적 있는가를 묻는다면 그런 일은 지금까지 없었던 것 같다.


삶에 있어 이것만은 양보하기 어려운 일, 자신의 생을 본격적으로 펼치기에 앞서 스스로 세우는 뜻이란 어떤 것이어야 할까?  나는 사주(四柱)와 같은 네 가지 기둥으로 삶을 지탱하는 힘과 그들을 지키는 초심에 대해 적어보기로 했다.


기둥 하나. 언제고 행복을 선택하는 마음

행복은 선택과 관련한 문제라는 사실을 나는 최근에서야 알아차렸다. 행복은 상황과 환경에 의해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개인이 선택하는 문제다.


삶은 멀리서 보면 희극이고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라 말하지만, 우리는 언제고 희극을 선택할 수 있다. 명명한 불행이야 특별히 바라는 손은 아니지만, 부득한 불행이 찾아온대도 매일 행복하기를 선택하며 나아가는 일. 이것이 내가 세우는 첫번째 초심이다.



기둥 둘. 사랑하고 사랑받는 나의 가족

돌아보면 그것이 특권인 줄도 모르게 나는 꽤 안정적인 사랑을 받으며 스물여섯 해 동안 성장했다. 요즘 들어 사랑의 이름을 책임감이나, 혹은 부채감으로 적어놓고 나는 나의 가족에 대해 생각하는 일이 잦아졌다.


한두 발자국만 떨어져 바라보면 사실 이 모든 것은 우리 사이 문제라기보다 내 안에 웅크린 불안과 관련된 문제다. 서로의 안녕만을 빌어주는 사람이 이 세상에 존재한다는 것. 부족과 상실보다는 근원의 사랑으로, 나의 가족과 우리의 사랑을 너무 당연시 여기지 않았으면 좋겠다. 



기둥 셋. 귀한 인연 나의 연인

사랑에 관한 이야기를 한다면 그에 대한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우리는 친구에서 시작해 연인이 된 것이니 꽤 오랜 기간 친구로서도 연인으로서도 보았다.


나는 그가 내 곁을 지키지 않을 때에도 무척이나 귀한 인연이 될 것임을 한눈에 깨달았다. 그는 혼란 속에서도 언제나 최선을 향해 나아가는 사람. 그가 벼려온 단단한 마음은 숨기려 해도 숨길 수 없는 것이었다.


그런 귀한 인연이 나의 연인이 되었을 때 세상은 얼마나 찬란했던지. 이토록 짓궂고 까탈스러운 연인인 내가 그에게 지켜야 할 초심이라면 우리의 귀한 처음을 너무 늦지 않게 되새기는 일일 것이다. 


기둥 넷. 정직하고 정진하며 서로를 돕는 삶.

나는 분명 여유로운 삶을 꾸려갈 테지만 돈이 목표가 되는 삶을 살진 않을 것이다. 언젠가 현실이 나를 선택의 기로에 놓아둘 때 부디 널리 돕겠다는 첫 마음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정직하고 성실하게 복을 지으며 나아가는 길. 어제보다 오늘, 오늘보다 내일, 종이 한 장 혹은 글 한자라도 더 쌓아가며 의료인의 길을 걷고 싶다.



매거진의 이전글 엉덩이 종기와 편두통에 시호계지탕 - 2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