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나는 미룰 수 있을 때까지 미룬다

미루기와 동거 중

by 도유영

미루기는 오랜 룸메이트다. 마감 하루 전에 집중력이 폭발하거나, 창의력이 터지는 것도 미루기는 다 알고 있다. "그렇지? 너 원래 이렇게 하잖아"라고 말을 걸기도 한다. 스스로는 똥줄타기 무형문화재라고 한다. 학생 때는 벼락치기로 공부했고, 마감 전날 밤에야 과제를 했다. MBTI를 신봉하진 않지만, 그래도 J인데 말이다. 그렇다고 결과가 아주 나빴냐 하면, 그건 또 아니다. (나름대로 해냈다.)


이번 주에도 그랬다. 분명 글을 미리 써둘 생각이었는데, 또 그러지 못했다. 그 시간에 엉뚱한 것들을 했다. 버려야 할 종이 상자를 접어서 정리하고, 커피를 내리고, 갑자기 봄을 맞이하여 화분 분갈이를 했다.


마감일은 사정을 이해해주지 않고 다가온다. 컴퓨터를 켜고 빈 종이를 본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그러다 화면이 꺼지면 퀭하기만 한 내 얼굴이 보인다. 어쨌든 지금은 글을 쓰는 사람보다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다. 붓을 들고 태블릿에 그림이 아닌 글자를 쓴다. 보통 '뭐 그리지'라고 쓴다.


미루기는 인간의 본능이라고 한다.

다양한 심리가 작용한다고 한다. 만약 미루기의 유형이 있다면, 나는 게으른 완벽주의자에 속할 것이다 그래도 미루기 전문가로서 그동안 쌓아온 지식이 있다. 심리적이든, 육체적인 이유든 미루는 습관을 완화해보려 했던 3가지 시도들을 공유드려본다.



미루는 습관을 어떻게 줄일 수 있을까?


1. 아주 작은 것부터

• “운동해야지” → “양말을 일단 신어보자”

• “글 써야지” → “제목이랑 첫 문장만 써볼까?”

• “뭐 그리지” → “빈 종이에 아무렇게 낙서하기”


2. ‘완벽하게’가 아니라 ‘일단 하자’

• 완벽하게 하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

• “이거 완벽하게 끝내야 해!”

• “일단 초안이라도 써볼까?”


3. 책임이 아닌 기회로 보기

• ‘해야 하는 일’이 아니라, ‘해보고 싶은 일’로 바꾸기.

책임감의 느낌보다 기회의 느낌으로 바꾸기.



도전했던 몇 가지 방법 중에 효과를 보았던 3가지를 골랐다.

습관에 관련된 책들의 공통점이 있는데, 뇌는 즉각적인 보상을 찾는다는 것이다. 그렇다 보니 조금만 해도 성취를 느낄만한 작은 행동부터 하는 게 좋은 것 같다.


마지막으로 팁이 있다면, 손재주가 좋은 사람들은 실패할 위험이 높다. 하고 싶은 일은 쉽게 배우지만, 그 덕에 모든 일들이 마감을 기다리는 상태로 쌓여버린다. 모르는 게 약이라고 했던가. 처리해야 할 일이 산더미처럼 눈앞에 펼쳐지면 차라리 모르고 싶어질 때가 있다. 결국 미룰 수 있을 때까지 미루다가 마감 직전에 부랴부랴 움직인다. 그게 바로 나다.


사소한 목표들이 테트리스 블록처럼 내려온다. 어찌어찌 맨 밑줄을 지우며 살아가고 있다.


그래도 한 가지 확실한 건 있다.

아주 꾸준히 매일 뭐라도 한다는 것.


작은 목표라도 벼락치기로 해내는 것도 능력이라면, 나쁜 것만은 아니지 않을까 엉뚱한 생각을 해본다.





[브런치 글 모아 보기]

https://brunch.co.kr/@uswimming


keyword
작가의 이전글걱정의 대부분은 기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