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 폭력의 실체, 조직의 침묵
글에 앞서 다소 과격한 제목에 먼저 사과드립니다.
'상사의 개소리'는 나를 포함해 누구든 이미 상사이거나 상사가 될 것입니다. 언젠가 내가 하는 말들이 누군가에게 또 개소리가 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에 공부한다는 마음으로 기록하고 글을 써봤습니다. 진짜 문제는 '개소리'라는 비속하게 이르는 말보다 그걸 정당하다고 믿는 시스템에 대한 뜻이라고 해석해주시면 좋겠습니다. 더 나아가 ‘상사’는 직장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사랑에도, 가족 안에도, 친구 관계에도, 심지어는 연인 사이에도 존재합니다. 상대방의 마음 위에 올라타 위에서 내려다보며 말하는 그 모든 관계 속의 언어들이 ‘상사의 말’입니다. 누군가가 타인의 감정을 배려하지 않은 채, 위에서 아래로 떨어뜨리는 말. 그게 바로 이 글에서 말하는 ‘상사의 개소리’입니다. 상사는 어디든 있습니다. 존재하는 모든 '관계의 을'들을 응원합니다.
"네가 한 작업물은 쓰레기야!"
"월급이 아깝다."
"다른 데 가서도 잘할 것 같아?"
실제로 들었던 말이다. 모두 한 팀장한테 말이다. 이토록 처참한 말이 세상에 존재한다는 게 무섭다. 그리고 그 말이, 망설임 없이 던져졌다는 사실은 더욱 등골을 서늘하게 만든다.
그는 항상 당당했다. 자신은 ‘일을 잘해야 하는 사람’을 판단할 권리가 있는 사람이라고 믿었고, 모든 폭언은 조직을 위한 정당한 충고라고 말했다. 그가 던진 말은 칼날이었지만, 그의 얼굴에는 늘 정의의 가면이 씌워져 있었다. 그러니 더더욱 혼란스러웠다. 이 고통이 정말 나의 미숙함에서 비롯된 것인지, 아니면 단지 권력을 쥔 자의 취미인지 모르겠다. 왜냐하면 그렇다 할 작업에 대한 방향과 피드백이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가 화를 내고 목소리를 높일 때, 주위 사람들은 고개를 숙였다. 그들의 침묵은 비겁함이라기보다 자기 보호에 가까웠다. 누구도 나서서 “그건 아니지 않나요”라고 말할 수 없었다. 이해한다. 그 누구도 탓할 수 없다. 그걸 알기에 자책으로 이어질 뿐이다. “왜 이렇게 센스가 없냐고. 그렇게 생각이 없으니까 네가 이 모양이지.” 돌아가는 길에 지하철 창에 비친 내 얼굴을 보며 할 수 있는 말은 하나뿐이었다.
‘내가 못난 건가?’
정직함을 가장한 폭력이 난무한다.
그는 “나는 솔직한 사람일 뿐”이라고 자주 말했다. 정직함은 폭력의 면죄부가 될 수 없다. 그러나 많은 이들이 그렇게 믿는다. 직급이 높을수록, 연차가 많을수록, "나는 너보다 더 많이 알고 있으니, 더 날카롭게 말할 수 있는 자격이 있다"라고 생각한다.
그날 이후 나는 사람들의 말에 점점 예민해졌다. 메신저로 전해진 짧은 피드백에도 가슴이 쿵 내려앉았고, 회의에서 내 차례가 돌아오면 심장이 뛰기 시작했다. 무슨 말을 해도 부족할 것 같았고, 아무리 노력해도 ‘쓰레기’ 소리를 듣지 않을 만큼 완벽해질 수는 없을 것 같았다.
조직 안의 언어폭력은 실체가 없다. 그렇기에 더 끈질기고 무력하다. 누구는 "그 정도는 괜찮지 않아?"라고 말한다. 또 다른 누구는 "원래 사회생활이 그런 거야"라고 웃으며 넘긴다. 그러나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한다. 반복적인 폭언은 한 사람의 일상을 무너뜨리고, 존재감을 지워나간다는 것을. 스스로를 지키지도 못할 정도로 망가지고 만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힘을 추구하는 존재’라고 한다. "모욕을 주는 자는 열등감을 감춘다." 상사의 말은 어쩌면 그의 권력의지, 혹은 그 안의 불안의 또 다른 얼굴이었을지도 모른다. 말에 짓눌린 채 오래 있었지만, 이제는 그 힘이 어디에서 왔는지를 조금은 알 것 같다. 그리고 그 말이 반드시 진실이 아니라는 것도.
회의실에서 침묵하던 동료들, 그 말이 틀렸다는 걸 알면서도 아무도 입을 열지 않던 그 순간들. 우리는 다만, 살아남기 위해 순응했던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제 조금씩 다르게 살아보고 싶다. 권력의 말에 무릎 꿇지 않는 방식으로, 나를 지키는 말을 배우며.
누구나 부서지기 쉬운 밤을 가지고 있다. 그러니 누가 던진 돌이 파도를 만들지 않게 해야 한다. 무례한 말 앞에서 스스로를 탓하지 않기를, 마음이 상처 입을 때마다 그건 당신의 잘못이 아니라고 속삭여주기를 바란다. 누군가의 말이 가슴을 푹 찌를 때, 그 말을 그대로 믿기보다, 잠시 멈춰 그 사람이 어떤 얼굴로 그 말을 했는지 떠올려보자. 폭력은 종종, 아주 천연덕스러운 얼굴을 하고 있으니까.
그리고 꼭 기억해 줬으면 좋겠다.
당신은 누군가의 말로 정의될 존재가 아니라고.
말은 흘러가고, 당신은 남는다.
스스로를 아껴주었으면 좋겠다.
사진 출처: unsplash_victor rosari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