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자를 화분으로 쓴다고?

이름이나 모양대로 쓸 필요는 없잖아

by 도유영

오랜 기간 전공을 살려 그림, 영상, 디자인 등 관련 업계에서 일했다. 한 번은 필이 꽂혀 과일을 팔아본 적도 있다. 호기롭게 도전했지만, 결과는 초라했다. 그 외에도 목공, 에어컨 설치, 식당, 영화관 같은 아르바이트를 오래 해본 적도 있다. 그런데도 여전히 SNS나 은행에서 직업을 적는 칸을 마주하면 망설이게 된다. 가장 오래 한 일로 나를 설명해야 할지, 내가 가장 잘하는 일로 설명해야 할지—아직도 기준을 정하지 못했다.


직업이 나를 증명해 주기를 바랐다. 명함 한 장으로 설명될 수 있다면 마음이 더 단단해질 거라 믿었다. 하지만 어떤 이름을 붙여도 나를 온전히 담아내지 못하는 기분이었다. 늘 겉도는 느낌이었다.


하루는 친구 집에 집들이를 갔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수다를 떨던 중, 눈길을 끄는 가구가 있었다. 생김새는 분명 의자였지만, 그 위에는 화분들이 올려져 있었다. 의자답지 않은 모습이 마음에 오래 남았다. 그 외에도 몇몇의 가구를 특이하게 배치했다. 친구에게 물었다.


"저건 원래 용도가 뭐야?"

"원래는 ㄷ형태 협탁인데 옆으로 눕혀서 쓰고 있어"


짧고 단단한 원목 가구는 옆으로 눕혀 한쪽 면에 물건을 올려둔 채 쓰이고 있었다. 세로가 된 수납공간은 책을 꽂기에 좋아져 책장이 되기도 했다. 나는 저런 생각은 어떻게 하냐고 물었다. 친구는 꼭 이름이나 모양대로 쓸 필요는 없다고 했다. 컵을 화분으로 써도 되고, 화분을 연필꽂이로 써도 된다고.


맞는 말이었다. 쓰임이 꼭 용도를 증명해야 하는 건 아닐지도 모른다. 의자도, 컵도, 테이블도, 나도. 꼭 정해진 자리에 놓이지 않아도 충분히 제 몫을 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날 이후로는 특별히 정해진 직업과 명함으로 나를 설명하기보다, 매일 남기는 작은 흔적들이 모여 나를 말해주기를 바랐다. 그 자리에 묵묵히 화분을 품고 있는 의자처럼. 언젠가 내가 남긴 글과 그림을 바라본 누군가가 “이런 사람이었구나”라고 말해줄지도 모른다. 직업이 아닌 이름 석자 그 자체로 존재하려고 노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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