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utbia 김흥수 Jan 21. 2017

약자의 설움 - 오벨리스크 Obelisk (상)

박물관 이야기

파리의 중심 콩코르드 광장 한가운데 우뚝 선 돌기둥이 있습니다. 무슨 뜻이 담겨 있는 기념비 같은데 자세히 보면 신기한 문자가 쓰여 있습니다. 가톨릭의 총본산이라고 하는 성 베드로 성당 중앙 광장에도 돌기둥이 서 있습니다. 이 기둥엔 글자나 그림이 없고 대신 꼭대기에 십자가가 있습니다. 유럽 사람들은 이런 모양의 기둥을 아주 좋아하나 봅니다. 유럽의 동쪽 끝 이스탄불에도 위에서 보던 돌기둥이 있습니다. 로마 시대 대전차 경기장 안에 설치되었으니 이것도 로마의 유적 같은데 그림 같은 문자가 선명하게 남아있습니다.


좌상 : 파리 콩코드 광장, 우상 : 바티칸,  좌하 : 이스탄불 대전차 경기장 , 우하 : 이집트 룩소르 카르낙 신전


이집트 룩소르에 있는 카르낙 신전입니다. 정문 앞에 당간지주처럼 커다란 돌기둥이 우뚝 서 있습니다. 콩코르드 광장 돌기둥과 비슷하게 생겼습니다. 이 기둥은 원래 양쪽에 하나씩 두 개가 있었다는데 지금은 하나밖에 남아 있지 않습니다. 런던에도 이런 기둥이 서 있고, 로마에는 여러 곳에 저런 기둥이 서 있습니다. 서양 사람들은 왜 저런 형태의 돌기둥에 집착하는지 궁금하지 않습니까? 자료를 찾아 정리해 보기로 하겠습니다.


1. 이런 형태의 돌기둥을 무어라고 부르나?


오벨리스크(obelisk)라 부릅니다. 그리스어로 "작은 쇠꼬챙이"라는 뜻이라고 합니다.


2. 왜 이런 모양을 했을까?


고대 이집트 사람들은 태양신 라(La)를 섬겼습니다. 태양의 빛을 상징하여 사각형 단면이 위로 올라갈수록 가늘어져 끝은 피라미드 꼴로 마무리했다고 합니다. 한마디로 빛을 형상화한 것이라는데 그런 생각을 하고 보면 하늘에서 내려 쬐는 빛 같지 않습니까? 다른 학설로는 풍요의 신 이시스의 남편, 오시리스의 성기를 의미한다는 설도 있습니다. 


3. 언제부터 만들기 시작했는데?


지구 상에 남아 있는 가장 오래된 오벨리스크는 이집트 헬리오폴리스에 있는, 제12 왕조의 세누세르 1세가 건립한 것으로 지금부터 3,500년 훨씬 이전에 만들어진 것입니다. 크기는 20.7m로 당시의 기술을 생각하면 엄청나게 큰 조각품입니다.


4. 어떤 용도로 쓰였나?


보통 성전 안팎이나 탑문 앞에 2개를 1조로 세웠다고 합니다. 4면에는 신에 대한 찬가와 왕의 치적을 고대 이집트 성각문자인 히에로글리프어로 새겨 넣었고, 종교적 의미와 더불어 왕의 권력과 힘을 과시하기 위한 용도로 보입니다.


5. 고대 이집트 외에 다른 나라도 오벨리스크를 만들었나?


이런 모양의 화강암 기둥은 태양신을 섬기는 고대 이집트 사람들만 만들었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지금의 이집트와 인접한 아프리카 몇 개의 나라에서만 발견됩니다.


6. 그렇다면 유럽에 왜 오벨리스크가 있는 거야?


그러게요. 저도 이게 궁금해서 자료를 찾기 시작했습니다. 이집트와 교류한 로마 사람들이 오벨리스크의 형태를 본뜬 조형물을 만들긴 했지만, 태양신을 섬기지 않았습니다. 믿지 않는 신을 위해 20M 이상 되는 화강암을 다듬을 필요는 없었을 겁니다. 그래서 자료를 뒤지니 참 황당합니다. 파리, 런던, 로마, 이스탄불…. 유럽의 큰 도시에 세워진 오벨리스크가 모두 진품 이집트 유물이랍니다.


7. 에그~ 그렇다면 남의 나라 유물을 옮겨다 놓았다는 말 아냐?


예~ 참으로 할 일 없는 사람들입니다. 그리스나 로마 지천에 깔린 것이 대리석인데 딱딱한 화강암에 무슨 욕심이 나서 저 무거운 것을 가져올 생각을 했는지 모르겠습니다. 차라리 값진 보석이라면 운반하기도 쉬웠을 텐데…. 그러니까 지금부터 2,300년 전,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더 대왕이 이집트를 정복했고 그 후, 로마인들이 그리스를 정복하였습니다. 이집트도 자연스럽게 로마인들의 지배를 받게 되었습니다. 이때 극성스러운 로마인들이 수백 톤이 나가는 오벨리스크를 전리품으로 가져왔답니다. 이렇게 무거운 오벨리스크가 유럽 땅에 들어온 이유는 순전히 힘과 권력을 과시하는 수단이었다니 기가 찰 노릇입니다.


유일하게 파리 콩코르드 광장에 세워진 오벨리스크만 1831년 이집트 국왕이 프랑스에 헌사한 것입니다. 비교적 최근의 일이라 분명히 약탈은 아닌데 이 부분도 무언가 찜찜한 구석이 있습니다. 이 오벨리스크는 카르낙 신전의 부속 건물인 룩소르 신전 앞에 세워진 것이라고 합니다. 생각해보면 주는 나라나 받은 나라 모두 정신없는 나라들입니다. 이집트는 자기 내 유산 대부분을 로마에 약탈당하고 겨우 살아남은 몇 개 중에 하나를 또다시 선물로 주고….


프랑스 쪽을 생각해보면 보면 더 가관입니다. 이집트가 무슨 생각을 하고 오벨리스크를 준다고 했는지 모르지만 그걸 냉큼 받아 수도의 한 복판에 세워놓고 자랑을 하다니…. 자기네 선조와 아무 상관없는 돌을 모셔놓고 밤낮으로 쳐다본다는 것이 참 생뚱맞습니다.


룩소르 카르낙 신전 오벨리스크, 하나는 프랑스에 헌납하고 하나만 외로이 남아 있습니다.


속내를 들여다보면 이집트가 프랑스에게 자기 유물을 준 이유가 있었습니다. 1830년대면 나폴레옹이 세인트 헬레나로 귀향 갔다 죽은 지 몇 년이 지나지 않은 때입니다. 나폴레옹이 이집트와 그 인근의 나라를 몽땅 프랑스 식민지로 만들었던 때였으니 아마도 프랑스는 자기네들 힘을 자랑하고 싶었나 봅니다. 과시하고 싶은데 보여 줄 것이 마땅치 않아 약소국 이집트에 압력을 넣었겠죠. 헌사라는 명목으로 오벨리스크를 강탈한 것이 아닐까요? 그렇지 않고서야 이런 일이 일어날 수는 없을 겁니다. 근간 이집트 정부가 프랑스를 상대로 오벨리스크를 돌려 달라고 청원을 했다는데 자의로 준 물건을 돌려 달라는 바보를 프랑스가 무시한다는군요. 초등학생에게 물어보아도 답이 뻔한 일이 국가 사이에도 벌어지니 참 요지경 속입니다.


두 번째, 바티칸에 오벨리스크가 서 있는 이유는 더 웃깁니다. 이 돌덩이는 로마 시대에 강제로 이송해 온 오벨리스크 중의 하나입니다. 높이 30m, 무게는 300톤, 오지게 큰 돌덩이를 네로 황제의 경기장에 세워두고 로마의 힘을 과시하던 것을 교황 식스투스 5세가 성 베드로 성당을 증축하면서 중심 광장으로 옮겨 왔습니다. 이교도의 상징인 오벨리스크를 성전 중앙에 세우는 발상을 교황이 했다니 이건 또 무슨 해괴망측한 경우입니까? 오벨리스크 위에 십자가를 세움으로 크리스트교의 승리를 드러내려고 했다는데 저도 가톨릭 신자지만 이건 좀 너무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입니다. 다른 종교를 인정하지 않으면 영원히 지구의 평화는 없을 겁니다.


글이 길어 (하) 편으로 넘깁니다.



배낭여행을 준비하신다면 첫 페이지부터 차분히 보아주시길 권합니다. 이 시리즈는 단행본 두 권 정도 분량으로 준비되어 있습니다. 정독하시면 여행 준비에 도움은 물론, 현지에서 시행착오도 훨씬 줄어들 겁니다. ^^

매거진의 이전글 유럽 박물관 & 미술관 Top 16 # Part. 3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