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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utbia 김흥수 Jan 21. 2017

약자의 설움 - 오벨리스크 Obelisk
(하)

박물관 이야기

(상)편에 이어서...


성 베드로 대성당 앞 오벨리스크에 새겨져 있던 문자를 깨끗이 지운 것은 이곳에 새겨져 있는 문자가 태양신 La를 찬양하는 글귀라는 것을 알고 나서였겠죠? (언제 지웠는지 자료를 찾아도 나오지 않습니다. 혹, 정확한 자료를 아시는 분은 댓글 부탁드립니다) 나폴레옹이 로제타에서 가져온 3개의 언어로 써진 돌을 해독한 이후 이 성각문자를 읽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영국, 대영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로제타석
참고 : 로제타석
1799년 나폴레옹의 이집트 원정군이 알렉산드리아시 동쪽 60km 지점 나일 강 하구의 로제타 마을에서 진지 구축 중 발굴한 흑색 현무암의 비석 조각. 높이 1.2m, 너비 75cm, 두께 28cm로 표면은 3단으로 되어 있는데, 상단에는 14행의 신성문자 (성각문자), 중단에는 32행의 디모틱(고대 이집트의 민중 문자), 하단에는 54행의 그리스 문자가 새겨져 있다.

본래는 신전 경내에 세워져 있던 것을 후에 요새 구축의 석재로 이용한 것이다. 발견 당시에는 고대 이집트의 상형문자가 해독되지 못하였기 때문에 이 비석의 문자 해독이 그 열쇠라고 생각되어 매우 소중하게 보관되었다가 1801년 알렉산드리아가 영국군에게 점령되어 현재는 런던의 대영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로제타석 본문은 나폴레옹이 간행한 “이집트”라는 책에 발표되었지만, 이와는 별도로 필사되어 학자들의 연구에 제공되었다. 1802년 S. 웨스턴이 그리스 문의 영역을 발표하였는데, 국왕 프톨레마이오스 5세의 독실한 신앙과 덕행을 칭송한 신관의 송덕문으로 왕의 대관식 다음 해인 BC196년에 작성되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프랑스의 J.F. 샹폴리옹은 이 로제타석과 필레섬에서 발견된 오벨리스크 비문을 비교 연구하여 프톨레마이오스와 클레오파트라라는 왕의 이름이 실마리가 되어 1822년 마침내 성각문자의 해독에 성공하였다. 이로 인해 그때까지 베일에 가려졌던 이집트의 역사가 온전하게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 [네이버 지식백과에서]


‘클레오파트라의 바늘’이라 불리는 투트모세 3세의 오벨리스크는 영국이 한 쌍을 가져와서 하나는 템스 강 변에 세우고 다른 하나는 미국에 선물했다고 합니다. 참으로 어이없음. 곱하기 100배입니다. 형이 훔쳐 온 장물을 동생에게 선물로 주다니….


물론 이스탄불의 오벨리스크도 이집트에서 가져온 겁니다. 서기 390년에 테오도시우스 황제가 카르나크의 아몬 신전에서 가져왔다고 합니다. 이 기둥의 높이는 20m고 무개는 300t이 나간답니다. 옮기는 도중 아랫부분이 파손되어 잘라낸 흔적이 보입니다.


위에서 언급한 로제타석도 현재 보관하고 있는 장소가 재미있습니다. 분명히 나폴레옹이 이집트를 침략하여 발굴한 물건인데 지금은 영국 대영 박물관에 소장되어있습니다. 이집트에서 프랑스의 힘이 약해졌을 때 영국이 살포시 가져다 놓은 장물입니다.



8. 이집트 유적이 유럽으로 넘어간 것은 이것만이 아니다.


예전엔 테베라 불리던 룩소르에 가면 "왕가의 계곡"이라는 왕의 무덤이 즐비하게 있는 곳이 있습니다. 환생을 믿는 이집트 왕들이 본인의 무덤을 꾸미는데 집착했고 그만큼 도굴꾼의 표적이 된 곳입니다. 

룩소르 왕가의 계곡


1920년 이곳에서 하워드 카터라는 영국의 고고학자가 작은 무덤 하나를 발견하여 세상을 발칵 뒤집어 놓았습니다. 황금마스크로 유명한 투탕카멘 왕의 무덤입니다. 투탕카멘은 어려서 왕이 되고 일찍 죽었기 때문에 이름이 덜 알려졌고, 결정적으로 그 무덤 앞에 새로운 무덤이 들어서서 도굴을 피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그 덕에 지금은 이집트의 자존심을 살려주는 소장품으로 남게 되었습니다. 

이집트 역사박물관에는 이 능에서 발굴한 유적으로 2층을 완전히 메우고 있습니다. 투탕카멘 왕의 황금 마스크는 이 박물관의 백미이기도 하고요. 이 왕의 치적이나 젊은 나이에 죽은 그의 일생에 견주어 역대 유명 왕들의 능에 얼마나 많은 소장품이 있었을지 짐작이 되더군요.



9. 그렇다면 그 이전에 도굴된 소장품들이 모두 어디로 사라졌을까?


금붙이는 녹아서 누군가의 패물이 되어 세상을 떠돌겠죠. 더러는 호사가의 손에 들어가 세상에 공개되지 않은 유물도 있겠지만, 대부분은 그 값을 모르는 무지한 사람들이 훼손하였으리라 짐작합니다. 혹 거래가 되었다면 아마도 세계 3대 박물관이라 일컫는 영국의 대영박물관과 프랑스의 루브르 박물관, 바다 건너 미국의 메트로폴리탄 박물관 같은 곳에 와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물론 독일이나 러시아 같은 나라에도 흘러들어 갔습니다. 이 세 곳에서 이집트에서 보지 못한 수많은 유물과 미이라 관들을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특히 미국은 역사가 짧은 나라 아닙니까? 메트로폴리탄에 이집트 유물이 그렇게 많을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참으로 미스터리입니다.


투탕카멘왕의 무덤이 발굴 되지 않았다면 속빈 강정이 될뻔한 이집트 국립 박물관 


10. 박물관 이야기가 나왔으니 좀 더...


유럽 사람들의 고상한 취미를 박물관에 가면 확실히 알게 됩니다. 어떤 물건이든 손에 넣으면 이유 불문 자기 것이 된다는 것. 대영박물관엔 ‘엘긴 마블스’라는 특별한 이름이 붙은 전시실이 있습니다. 이곳은 세계 문화유산 1호 ‘그리스 파르테논 신전’의 조각과 부조들이 전시된 곳입니다. 대영박물관이 가장 자랑하는 곳이죠. 재미있는 것은 오스만 트루크 시절 터키 대사를 지낸 엘긴이라는 사람과 그 행적입니다. 인터넷에서 찾은 자료를 한번 보죠.


대영박물관 엘빈관 일부
엘긴 마블스  (파르테논 마블스의 다른 이름)
이 조각은 아크로폴리스 언덕에 2,500년 전 세워진 파르테논 신전 벽면 조각을 일컫는 것으로, 현재 대영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그리스 유물인 파르테논 마블스를 영국으로 뜯어간 영국 엘긴 경의 이름을 따 엘긴 마블스로도 불린다. 고대 유물 애호가 엘긴 경은 19세기 초, 신전의 벽면 기둥 조각품 등 100개가 넘는 대리석 조각을 뜯어갔다. 이는 트로이 전쟁과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신 등 인물 400명, 동물 200마리가 등장하는 웅장한 규모. 1802년부터 10년에 걸쳐 신전 조각들이 차례로 영국으로 옮겨졌다. 엘긴 경은 '오스만 제국 지배하에 그리스에서 문화재 파괴를 우려한다'라고 변명했지만, 시인 바이런 등 지식인들은 "탐욕스런 약탈 행위""라고 비난했다. 이후 영국 왕실은 엘긴 경이 문화재를 발굴 선적 인양 보관하는데 들인 비용의 절반가량인 3만 5,000파운드에 수집품들을 사들였다.


예~ 이후 2004년 올림픽 당시 그리스 정부는 “유물을 되찾을 기회다.” 생각하여 영국 정부를 압박했지만 무산되고 말았습니다. 나중엔 임대 형식으로 빌려 달라고 사정을 했는데 그것도 여의치 않았답니다…. 쩝. 힘없는 나라의 설움인지 힘센 나라의 횡포인지 알쏭달쏭합니다. 


우리나라도 프랑스와 이와 비슷한 일이 있습니다. 냉정히 따져보면 우리나라가 훨씬 더 억울한 경우입니다. 그리스 유적은 터키 사람들이 돈을 받고 팔아먹었는데 우리는 탈취를 당한 물건입니다. 세계 최고의 금속활자본 ‘직지’의 이야기 아시지요? "직지"는 흔히 "직지심경"으로 부르지만 원이름은 "백운화상초록불조직지심체요절"이라고 합니다. 현존하는 세계 최고의 금속 활자본으로, 인쇄문화의 전파와 인류의 역사에 큰 영향력을 미친 기록유산으로 유네스코가 인정하였습니다. (직지는 세계 최초의 금속활자라고 주장하던 구텐베르크의 성경보다 70년이나 앞선 1377년에 인쇄된 책입니다.)


상하 두 권으로 나누어져 강화도에 있는 외규장각에 보관되어 있었습니다. 이 중요한 책이 병인양요 때 프랑스에 의해 약탈당하여 상권은 행방불명되고 하권은 겉표지가 떨어나간 채로 지금은 프랑스 국립 도서관에 보관되어 있습니다. 프랑스 정부는 우리나라 고속철 건설을 수주할 당시 TGV 알스톰사와 계약하면 약탈해간 외규장각 도서와 "직지심경"을 돌려준다는 당근을 던졌었습니다. 일본 신칸센과 독일 이체, 그리고 프랑스 테제베가 경합을 벌이는 와중에 "직지"의 반환은 알스톰사가 우리 고속철 파트너로 선정되는 데 큰 영향을 미친 것은 불을 보듯 뻔했고 당연하게 파트너로 선정되었습니다.


그 후 직지 반환의 움직임이 보이자 이번에는 파리 국립도서관 측에서 정부에 항의하고 고서 담당 여직원은 자기 아이를 빼앗기는 것보다 더 서럽게 울며불며 떼를 쓰는 해프닝이 벌어졌습니다. 이에 프랑스 정부는 “대통령이 약속하였다 해도 프랑스 법률에 따라 그 권한을 행사할 수 없다”고 못을 박아 버렸습니다. (으이그~ 약속도 못 지키는 국가 웬쑤) 우리나라는 왜 하는 일이 이런지 모르겠습니다. 계약서에 직지 반환이라는 조항을 성문화 하여 정당한 거래를 했다면 프랑스 정부도 어쩌지 못했을 텐데…. 이 일로 인해 한국은 프랑스에 두 번 당한 겁니다.


솔직히 저쪽 나라들 입장도 이해가 가긴 합니다. 유물 하나 돌려주는 건 문제가 없겠지만 이런 사례가 생기면 거의 모든 나라가 손을 내밀 텐데 차 떼고 포 떼고 나면 박물관은 텅 비게 되겠죠? 한 나라만의 문제가 아니라 유럽 거의 모든 나라가 걸려듭니다. 이런저런 불똥이 미국까지 튈 터인데 부서진 돌멩이 하나 돌려주기도 쉽지는 않을 겁니다. 몇 년 전, 유럽의 9개 큰 박물관 관장들이 모여 성명을 발표했다는 기사를 보았습니다.

“현재 각 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있는 유물은 어떤 경우라도 돌려줄 수 없다.” 그럼 누군가 힘센 나라가 나타나서 탈취해 가면 그걸로 끝? 인정?


경제사정이 어렵거나 문제가 많은 나라의 유물을 가져다가 잘 보존했다는 가치는 정말로 인정하고 싶습니다. 수집가들의 예리한 눈이 아니었다면 사라져 버린 문화유산이 얼마나 많았겠습니까? 인정할 건 인정해야죠. 하지만 이제 그 가치를 인정하고 관리할 수 있는 수준에 들어섰다면 그 자리에 돌려주는 아량도 필요한 때가 아니겠습니까?


추신 : 수탈만 당한 줄 알았던 우리나라에도 돌려주어야 할 세계 문화유산이 국립박물관에 지하에 잠자고 있다 합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일제 강점기 시절 일본군이 약탈해 온 실크로드 유적을 미처 본토로 옮기지 못하고 해방을 맞아 우리가 보관하고 있는 유물입니다. 지인 중 한 분이 이 유물을 돌려 주자는 운동에 동참하고 있어 알게 된 사실입니다.


그리고 이런 글을 쓰기에는 저의 지식이 턱없이 부족합니다. 본문 중 오류가 있다면 댓글 남겨 주시기 바랍니다. 감사한 마음으로 수정하겠습니다.



배낭여행을 준비하신다면 첫 페이지부터 차분히 보아주시길 권합니다. 이 시리즈는 단행본 두 권 정도 분량으로 준비되어 있습니다. 정독하시면 여행 준비에 도움은 물론, 현지에서 시행착오도 훨씬 줄어들 겁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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