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의 공연, 문화
첫 배낭여행에서라면 일정 소화에 정신이 없어 나이트 라이프나 현장 체험에 시간을 할애하기 어려울 겁니다. 저 역시 그랬고, 돌아와서 아쉬움이 많이 남았습니다. 그래도 미리 준비하여 특별한 시간을 낸다면 다른 어떤 것보다 기억에 오래 남으시리라 봅니다.
저는 첫 여행에서 런던 뮤지컬 하나와 비엔나 음악회는 꼭 보고 싶었습니다. 결과는 대만족! 그 이후 저의 여행 목표가 연주회장 순례로 바뀔 만큼 우선순위가 달라졌습니다. 오래된 여행기지만 첫걸음이라는 의미가 있어 감동의 순간을 편집 없이 그대로 옮겨봅니다.
[ Phantom of the opera ]
런던에서 두 번째 밤은 아주 기대되는 시간이 준비되어있었습니다. Her. Majesty 극장에서 공연하는 Phantom of the opera 관람. 떠나기 전, 형님에게 비싼 표를 선물 받았습니다. 사실은 강제 징수였지요.^^. 두 시간 동안 정말 숨도 크게 못 쉬고 몰입을 했습니다. 음악이란 귀에 익을수록 감흥이 더한가 봅니다. 그 뻔한 스토리를 손에 땀을 닦으며 보다니. 음악적 감흥은 덮어두더라도 무대의 화려함과 순식간에 장면이 바뀌는 깜짝쇼 때문에 넋을 빼앗겼습니다. 천장에서 떨어지는 샹들리에, 바닥에서 솟아오르는 수백 개의 촛불…. 무대 연출로는 불가능한 마술을 보는듯하여 오페라보다 무대가 기억에 오래 남았습니다.
[ 비인 국립극장 투어 ]
"비인 국립극장"은 공연이 없는 낮 시간에 공연장 자체를 돌아보는 투어가 있었습니다. "Phantom 오페라"의 신기함이 생각나 극장의 실체를 파악하러 이곳에 갔습니다. 유럽의 건물은 웬만한 곳이면 다 크고 징그럽지만, 이 극장의 사치스러움도 한 사치하고 남았습니다. 공연 없는 극장에 돈을 내고 들어가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는 뜻이겠지요. 정말 돈을 받을 만했습니다. 극장 내부의 화려함은 물론이고 캬라얀 전시실 하나만으로도 가치를 인정하는 음악도들에게는 황홀한 장소였을 겁니다. Phantom의 무대에 대한 궁금증은 이곳에서 웬만큼 풀렸습니다. 우리가 보는 극장 무대를 "1"이라는 공간으로 보자면 그 뒤편은 3~5의 넓이가 있었습니다. 그날 "로미오와 줄리엣" 무대 장치를 하고 있었는데 할리우드 영화 Set보다 더 정교할 것 같았습니다. 수많은 밧줄과 도르래, 2, 3, 4, 5중의 칸막이 무대. 바닥이 솟고 내려가며 회전하는 무대 뒤편은 그야말로 Set 공장이었습니다. 한편의 공연 뒤에 저렇게 엄청난 기자재와 인력이 필요하다니…. 보이는 것만 다가 아니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 비인 악우회 연주회 ]
비인에 왔으니 제대로 된 연주회를 볼 차례입니다. 곳곳에 공연 안내가 있어 표 사는 데는 어려움이 없습니다. 재미있는 광경은 길거리에서 "모차르트"가 티켓을 파는 겁니다. 흰 가발을 쓰고 전통복장을 한 "모차르트"가 심심치 않게 돌아다녔죠. 이 사람들이 바로 티켓을 파는 길거리 판매원들이었습니다. 말하자면 일종의 호객꾼인데 꼭 그렇게 부를 수는 없습니다. 이 일을 아무나 하는 분위기가 아니었습니다. 공연에 대한 지식이 있고 소양을 갖춘, 그러니까 시에서 허가하여 관광안내원 임무도 겸하는 듯했습니다.
기왕이면 잘 생긴 모차르트를 골라 표를 구입하기로 했습니다. 팸플릿을 좌악 펼칠 때, 바로 눈에 들어오는 공연이 있었습니다. "비인 악우회 극장 모차르트 연주회" 매년 1월 1일 TV를 통해 실황 중계하는 "비엔나 신춘 음악회"를 공연하는 바로 그 극장입니다. 이곳에서 직접 연주를 들을 수 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습니다. 몇 번 망설이다 거금을 주고 S석 티켓을 샀습니다. 스텔라의 부라린 눈이 눈앞에서 왔다 갔다 했습니다만 이곳까지 왔는데 제일 좋은 자리에서 음악을 듣고 싶다는 욕심을 떨칠 수 없었습니다.
정신없이 다니느라 점심도 걸러 갑자기 배가 고파졌습니다. 비엔나에서 비엔나커피를…. 이건 어디 가서 찾아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작고 예쁜 카페에 들어가 휘핑크림을 얹은 멜랑쥐와 달콤한 케이크를 주문했습니다. 나이 들어 담배 피우고 술 마시면 단 음식을 멀리한다는데 아직도 저는 달콤함 앞에서는 무너집니다. 철이 덜 들었나 봅니다.
[ 잠깐 ] 비엔나엔 비엔나커피가 없다고? 슈테판 성당 앞엔 한국인들이 워낙 많이 가서 비엔나커피를 찾기 때문에 자리에 앉으면 종업원이 “비엔나커피?”라고 먼저 물어봅니다.^^ 멜랑쥐나 아인슈페너라 불리는 크림 얹은 커피가 기억에 나지 않으면 “비엔나커피”라고 주문해 보세요. 단, 번화가 케른트너 거리를 벗어나면 못 알아듣습니다.
음악회 S석 티켓 값이 60,000원 정도였습니다. 한국에서 웬만한 공연 좋은 자리 차지하려면 이 정도 지불을 해야겠지만 유럽에서 이 금액은 아주 비싼 공연에 속합니다. 역시 이 음악회는 제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습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귀에 익은 곡만 연주했습니다. 일부러 레퍼토리를 골라 놓은 것 같더군요. 두 시간 동안 졸 틈이 없었다는 것이 그 증거입니다.
한 가지 문제가 있었다면 -이거 보통 큰 문제가 아니었죠. 이 극장의 S석이 바닥에서 수평으로 평평한 구조여서 키 큰 사람이 앞에 앉으면 시야가 가립니다. 당연히 제 앞에 덩치 큰 아줌마가 진을 치고 있었습니다. 음악회에서 소리만 들으면 그만이라고 생각하시면 오산! 이 음악회는 절반이 코믹한 오페라였습니다. 차라리 절반 가격으로 2층이나 무대 바로 옆에서 볼 걸 하고 머리를 쥐어뜯었죠. 그래도 그 감동…. 정말 좋았습니다.
배낭여행을 준비하신다면 첫 페이지부터 차분히 보아주시길 권합니다. 이 시리즈는 단행본 두 권 정도 분량으로 준비되어 있습니다. 정독하시면 여행 준비에 도움은 물론, 현지에서 시행착오도 훨씬 줄어들 겁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