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ecial, 유럽
베를린이 통일 독일의 수도라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독일의 수도지만 인구는 350만 정도. 우리나라 부산보다 작습니다. 이런 도시에 상설 오케스트라를 무려 8개나 보유하고 있습니다. 더 놀라운 사실은 이 단체들의 실력이 모두 최정상급이라는 겁니다.
관현악에 관심이 있는 분이라면 이 숫자가 얼마나 놀라운 것인지 아실 겁니다. 오케스트라는 고도로 훈련된 전문 연주가의 집단입니다. 이를 유지하려면 막대한 자금이 필요합니다. 상설 오페라 극장이나 방송국 같은 곳에 소속된 단체가 아니면 세계적으로 명성을 날리는 오케스트라조차 후원금을 받아야 유지가 됩니다. 공연수입과 저작권 수입이 세계 최고라는 베를린 필하모니도 이따금 적자를 본다는 글을 보았습니다.
이렇게 어려운 문화 사업의 하나인 교향악단이 베를린에 유독 많은 이유가 궁금하지 않으십니까? 일단은 시민의 호응도가 높아서 공연 수익이 난다는 것도 이유는 될 겁니다. 그러나 350만 명 상주하는 곳에서 아무리 날고 기어도 수요 공급의 법칙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속내를 알고 보면 금방 답이 나옵니다. 베를린 분단과 통합이 이유였습니다.
2차 대전 후 동, 서독이 나뉘면서 전례에 없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베를린이란 도시를 반으로 나누어 동과 서에 편입하였는데 이런 경우 상당히 애매한 일이 벌어집니다. 도시 전체가 한쪽에 편입된다면 공공건물이나 시설을 그대로 이용할 수 있지만, 도시를 반으로 쪼개자 한쪽에 있는 것이 한쪽엔 없는 경우가 생긴 겁니다.
콘서트홀이나 오페라 하우스 경우 양쪽에서 부족한 부분을 새로 지었고. 예전엔 한 도시에 한두 개면 충분하던 오케스트라도 두 배로 늘어났습니다. 더불어 동과 서가 보이지 않는 경쟁을 하지 않았습니까? 올림픽의 경우에 동독이 무섭게 치고 나왔죠. 문화 부분에서 베를린은 그야말로 보이지 않는 자존심의 경연장이 되어 규모와 함께 실력을 한껏 키운 겁니다.
음악 부분만 이런 것이 아니라 전반적인 문화 부문의 인프라가 2배로 늘어난 셈입니다. 이러다가 어느 날 갑자기 장벽이 펑하고 사라져 부산만 한 도시에 전용 오페라 극장이 3개. 오케스트라 8개가 된 겁니다. 박물관도, 미술관도…. 베를린 시가 이런 문제 때문에 겪는 고충이 많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통폐합에도 한계가 있으니…. 이런 이유로 베를린 시민들은 다른 도시에 비해 더 많은 문화 혜택을 받게 되었습니다. (추가로 드는 세금을 어떻게 감당하는지는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다른 곳에서 볼 수 없는 문화 집중효과에 가속이 붙어 베를린은 진짜 날개를 얻은 셈입니다. 헉~~ 글이 점점 산으로…. 이래서 제 블로그 타이틀이 샛길로 빠지는 입니다용. 한마디로 줄이면 베를린은 공연장, 미술관, 전시장, 박물관이 뻥튀기처럼 많습니다.
베를린 콘체르트하우스 Konzerthaus Berlin
이번엔 베를린에서 가장 멋진 연주회장을 한번 찾아가 보겠습니다. 앞에 소개한 베를린 필 전용극장은 50년 전에 지은 건물이고 콘체르트하우스는 200년 전, 정확히 말하면 195년 전인 1821년 왕립극장으로 지어졌습니다. 이 극장은 베를린에서 가장 아름다운 광장이라 불리는 겐다멘마르크트 (Gendarmenmarkt)에 있습니다. 이 광장 가운데 극장이 있고 양쪽에 비슷한 형태의 성당이 있는데요. 오른편은 프랑스 성당, 왼편은 독일 성당이라 부릅니다.
이 왕립극장도 프랑크푸르트 알테 오퍼처럼 2차 대전 끝 무렵에 폭격을 당하여 절반 이상 파손이 됩니다. 그 후 베를린이 분단되자 무너진 극장은 동독 지역으로 자연스럽게 편입되었습니다. 전후 복구에 힘을 쏟고 있었지만, 대규모 문화재를 쉽게 복원할 수는 없는 노릇. 동독에서 왕립극장을 방치해둔 사이에 서독은 1963년 10월 15일. 초현대식 디자인의 콘서트 홀 <베를린 필하모니>를 오픈하고 캬라얀이 개막연주를 하게 됩니다. 당시 캬랴얀의 명성이 하늘을 찌를 때라 음향공학과 현대 시설이 조화된 베를린 필 연주장은 자연스럽게 세계의 주목을 받게 되었습니다. 냉전의 경쟁 구도에서 동독이 침만 흘리며 쳐다볼 수는 없었겠죠. 머리를 짜낸 것이 바로 왕립 극장의 복원이었습니다.
이 극장은 1826년 9월 베토벤의 9번 교향곡 <합창>의 초연이 이뤄진 역사적 장소이기도 합니다. 8년이라는 공사 기간을 거쳐 1984년 완벽하게 프로이센 시대의 건축물을 복원한 동독은 이 왕립극장의 이름을 겐다멘마르크트 광장에 있는 콘체르트하우스 (Konzerthaus am Gendarmenmarkt) 라고 변경합니다. 그리고 서독의 베를린 필에 버금가는 오케스트라 <베를린 심포니>를 콘체르트 하우스 전속으로 편입하였습니다. 예술에 우열을 가리기 어렵지만, 동과 서는 오케스트라에서도 경쟁을 시작합니다.
그러다 몇 년 후, 1990년 10월 베를린 장벽이 사라지고, 그해 크리스마스 날 밤 콘체르트하우스에서 번스타인의 지휘로 165년 전에 초연되었던 베토벤 심포니 9번 합창 교향곡이 동서 화합의 상징으로 다시 울려 퍼졌습니다. 동독 소속의 베를린 심포니 (BSO)는 2006년 극장 이름과 같은 콘체르트하우스 오케스트라로 이름을 바꿨습니다.
오늘 보게 될 공연은 콘체르트하우스가 자랑하는 오르간과 솔리스트 요하킴 달리츠의 오르간 연주입니다. 이 멋진 극장에서 세계적인 오르가니스트의 연주가 단돈 10유로…. 참 므흣하네요. 요하킴 달리츠는 콘체르트하우스 전속 단원입니다. 메인 홀에 설치된 오르간은 74개의 음을 바꿀 수 있는 음전(音栓)과 5,811개의 파이프로 만들어졌다고 합니다. 그럼 들어 가 보실까요?
비정기 시즌 평일 오후, 오르간 연주라 허전할 줄 알았는데 1,600석 규모의 홀에 절반 이상 자리가 찼습니다. 역시 베를린은 시민들의 음악 애호가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중엔 저 같은 관광객도 많겠지만 말입니다. 홀 전체에 울려 퍼지는 오르간 소리는 2관 편성 오케스트라 소리보다 더 우렁찼습니다. 바하와 프랑크의 곡을 연주하였는데 황홀했습니다. 이 자리에서 베토벤이 직접 지휘하는 9번 교향곡이 초연되었다, 생각하니 가슴이 뭉클해지더군요. 집중하다 중간에 잠시 꿈나라를 좀 다녀오긴 했지만…. 아침부터 쏘다니다 이렇게 자리에 앉아 편안하게 음악을 들으면 나도 몰래 비몽사몽이 되곤 합니다.
유럽은 웬만한 성당에 파이프 오르간이 설치되어 있어 쉽게 오르간 소리를 들을 수 있다는 것도 참 맘에 듭니다. 성당을 울려 퍼지는 오르간 소리 정말 멋지지 않습니까? 연주회장에선 더 깨끗하게 들립니다. 콘체르트하우스에는 대연주장 말고 홀이 두 개 더 있습니다. 하나는 400석 규모의 쳄버 홀…. 하나는 연습실인가 봅니다. 휴식을 취할 수 있는 살롱도 있고요.
현재 베를린에서 활동하는 쟁쟁한 오케스트라 링크 합니다.
홈페이지를 가보시면 공연 정보만으로도 도움이 되실 겁니다.
베를린 필하모닉 1882년 창단 (상임 지휘 : 사이먼 래틀 )
http://www.berliner-philharmoniker.de/
베를린 슈타츠카펠레 1742년 창단 (예술감독 : 다니엘 바렌보임 )
http://www.staatsoper-berlin.org/
도이체 오퍼 베를린 1912년 창단 (음악감독 : 도날드 러니클스)
http://www.deutscheoperberlin.de/
베를린 코미셰 오퍼 1947년 창단 (음악감독 : 키릴 페트렌코)
http://www.komische-oper-berlin.de/
베를린 콘체르트 하우스 오케스트라 (구) 베를린 심포니 (BSO) 1952년 창단 (음악감독 : 로타 차그로젝 )
베를린 도이체 심포니(DSO) 1946년 창단 (음악감독 : 투간 소키에프)
베를린 방송 교향악단 (RSB) 1923년 창단 (음악감독 : 마렉 야노브스키)
베를리너 신포니커 1966년 창단 (음악감독 : 리오 삼바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