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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utbia 김흥수 Mar 17. 2017

샹그릴라를 찾아서,  
운남에서 사천까지...

잃어버린 지평선

제임스 힐튼의 소설 "잃어버린 지평선"을 읽어보셨나요? 힐튼은 "굿바이 미스터 칩스" "마음의 행로"를 쓴 영국의 유명한 작가입니다. 아니면 "Shangri-la 샹그릴라"란 말을 들어보신 적은 있으신지요? 오래전, 추리소설 읽는 재미에 빠져 살 무렵, 문고판으로 발행된 "잃어버린 지평선"이란 책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추리나 SF라는 장르에 귀속시키기 힘든 묘한 분위기의 소설이었죠. 책을 펼친 후 한나절 만에 다 읽은 기억이 나는 걸 보면 꽤나 흥미로운 소설이었습니다.


이 소설 속에 시간이 멈추고 공간이 응축되는 마을 -우리가 理想鄕이라고 생각하는 곳- 이 나오는데 그곳을 "샹그릴라"라고 부릅니다. 그러니까 "샹그릴라"는 제임스 힐튼이 1933년 발표한 소설 속에 만들어낸 가상의 지명인 셈인데요, 책을 덮고 난 후에도 절대로 잊히지 않을 만큼 독특하고 매력적으로 그려져 있습니다.


오죽하면 이 단어가 "이상향"이라는 말을 대신하는 고유명사로 변하여 쓰이고 있겠습니까? 그뿐 아니라 소설이 발표된 이후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의 주 무대 "샹그릴라"를 찾아 히말라야로 떠났다니 별난 사람들이 세상엔 참 많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서양 사람들이 멍청한 걸까요? 아니면 힐튼이 꾸며낸 이야기를 진실로 믿고 싶었던 것일까요? )


또, "Lost Horizon"은 40년대에 영화로 만들어져 흥행에 성공했고 70년대엔 "로미오와 줄리엣"의 유명 스타 올리비아 핫세가 출연한 리메이크 판이 나올 만큼 "샹그릴라"의 매력은 시간이 갈수록 더해갔습니다. 그러던 중 1997년, 중국 정부에서 "잃어버린 지평선"의 주 무대 "샹그릴라"는 티베트와 접경지역인 운남성(雲南省)의 중전中甸(Zhongdian중디엔)과 덕흠德欽(Diqin더친)중간 지점이라는 공식 발표를 했습니다.


샹그릴라 가는 길


허~ 참! 이거 울어야 하나 웃어야 하나……. 허구임을 분명히 아는 독자라도 학자들이 오랜 고증 끝에 중디엔(中甸)부근을 "샹그릴라"라고 인정한다는 학설을 내놓았다니 그 진위를 확인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지 않겠습니까? 저 역시 얼마 전 이 소식을 듣고 가슴이 울렁거렸습니다. 소설처럼 시간이 멈추는 일은 일어나지 않더라도 제임스 힐튼이 그린 그 꿈같은 지형의 실체가 어떤 모습으로 드러날지 궁금해진 겁니다. 일면, 터무니없는 발표를 하여 관광객을 끌어들이는 중국 정부의 상술이 밉기도 했고요. 당연히 말이 안 되는 이야기- 차라리 흥부의 고향이 남원이라는 학설을 믿고 말지, 1930년대에 티베트 근처에도 안 가본 영국 소설가가 쓴 소설 속의 무대, 그것도 시간이 멈춘다는 기묘한 이야기의 무대를 공식적으로 발표한다는 것 자체가 우스운 이야기 아닙니까?


중디엔 가는 길


그렇거나 말거나, 지금 운남성은 "샹그릴라" 특수로 난리가 났습니다. 아예 중디엔 지역의 지명 자체를 "샹그릴라현'으로 바꾸었더군요. 며칠 전 national geography 기사를 보았는데 중국 정부에서 이 지역에 100억 달러를 투자하여 개발을 시작했답니다.


옥룡설산 운삼평


샹그릴라로 불리는 중디엔(中甸)의 옆 동네 리쟝(麗江)은 유네스코에서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하였고, 그 옆 동네 따리(大理)는 동양의 스위스라 불리며 옛날부터 서양 사람들에게 알려진 관광지입니다. (대리에서 나오는 돌 이름이 바로 유명한 大理石.) 그 옆에 있는 성도 쿤밍(昆明)은 사계절 내내 꽃이 피는 기후와 스린(石林)이라는 기묘한 자연경관 때문에 많은 관광객으로 붐비고, 더 아래 동네 시상판납은 월남, 라오스, 태국, 미얀마 접경지역으로 열대의 분위기를 만끽할 수 있고... 운남성 자체는 수많은 소수 민족들이 살고 있어 가는 곳마다 색다른 분위기를 맛보는 거대한 관광지가 되어 가만히 앉아 주머니를 부풀리는 그런 곳입니다. 이런 곳에 소설 속 이상향이 존재한다고 공식 발표를 했으니 오죽하겠습니까.


운남성 여강 (리쟝)


각설하고, 다시 "샹그릴라" 이야기로 돌아갑시다. 티베트! - 인도와 네팔을 다녀온 배낭여행자들에겐 마지막 성지 같은 꿈의 여행지. 황량한 풍경과 하얀 설산, 높은 고도에서 오는 청명함.... 조금이라도 히말라야를 맛본 사람이라면 마약처럼 이름만 들어도 가슴이 두근거리는 곳. 그곳 어딘가에 있을지도 모르는 理想鄕 "샹그릴라". 여행을 꿈꾸는 사람에게 이 보다 매력적인 여행지는 없습니다.


동티베트 단빠 가는 길


책 속의 "샹그릴라"는 티베트의 중심 "라사" 부근이 아니라 변방 쪽으로 그려져 있습니다. 여행지 사진을 볼 때나 여행기를 읽으면서 혹시 힐튼이 그린 곳이 이곳이 아닐까 하고 생각해 본 곳이 있다면, 인도 북부 부탄왕국, 네팔의 무스탕 왕국, 아니면 파키스탄의 훈자 계곡쯤일 거라고 상상을 했습니다. 이런 차에 중국의 서남쪽 운남성에 샹그릴라가 있다는 발표는 좀처럼 믿음이 가지 않았습니다.


파키스탄, 훈자 계곡


밑져야 본전, 의아해하며 지도를 펼쳐 보았습니다. 웃비아가 지금까지 아주 중요한 사실 하나를 간과하고 있었더군요. 히말라야 산맥의 크기가 생각보다 훨씬 크다는 것, 그 시작은 중국에서부터라는 사실을…. 또, 이전 티베트 영토가 중국 침공 이후 축소되어 지도상에 표시되어 있다는 것을요. (운남, 사천, 감숙성 일부는 예전 티베트 땅이고 지금도 티베트 사람들이 삽니다)


샹그릴라 (중디엔) 가는 길


먼지가 쌓인 책을 다시 찾아 꼼꼼히 읽었습니다. 오호라~ 놀랍게도 제임스 힐튼이 그린 소설 속의 무대가 지금 운남성에 편입된 티베트가 맞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주인공 콘웨이 일행이 탄 비행기가 인도 북부에서 납치되어 동북쪽으로 오랜 비행을 합니다. 거기다가…. 콘웨이가 샹그릴라를 탈출할 때 분명히 중국으로 발을 들여놓았습니다. 소설 속에 나오는 분지의 모습과 장족 노인, 어우러진 종교, 생필품을 수급해 주는 상인들…. 여러 가지 정황을 종합해 보면 정말 중국에 포함된 티베트 일부가 중국 정부에서 공식 발표한 "샹그릴라"가 맞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자꾸만 드는 겁니다.


작은 포탈라라  불리는 중디엔 송찬림사


에니웨이~. 궁금함을 참을 수 없는 웃비아 아닙니까? 직접 가서 확인해 보고 와야지요. 반신반의하며 실망할 각오를 하고 중국으로 떠날 행장을 챙겼습니다.


중디엔 샹그릴라 고성




원래 이 여행기는 운남성 곤명 [쿤밍]을 출발하여 사천성 성도 [쳉두]를 거쳐 장강삼협을 따라 물길 여행으로 상해 [상하이]까지 가는 한 달간의 대장정 기록이었습니다. 지면으로 다 소개하기엔 무리여서 가장 기억에 남는 한 구간만 여러분에게 소개합니다. 이 여행에서 아무 정보 없이 해발 4,000m 이상을 넘었기 때문에 그 기억이 남달랐습니다. 이 이후 이보다 더 장대하고 높은 지역을 오르내렸지만, 첫 경험의 기억만큼 충격이 크지 않았습니다. 여행기를 추리면서 글을 다시 보자니 얼굴이 좀 달아오릅니다. 분명히 그때는 저런 느낌이었습니다. 기억이란 시간이 지나면 퇴색되어 엷어지므로 다소 과장스럽지만 그대로 옮겨봅니다. 당시, 기록에 대한 중요성을 크게 생각하지 않은 때라 웹페이지에 올려둔 아주 작은 이미지 몇 장 밖에 남아 있지 않아 생생한 현장을 보여드리지 못하는 점도 사과드립니다.



샹그릴라 대협곡 ( 香格理拉 大峽谷 )


또다시 새벽 별 보기 운동은 시작되었습니다. 새벽이면 어김없이 눈이 떠지는 걸 보면 여행과 웃비아는 찰떡궁합임이 분명합니다. (집에선 절대로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깜깜한 거리를 걸어 터미널에 도착하여 김이 모락모락 나는 만터우와 찐 달걀, 녹차 한 잔으로 아침을 해결하고. (눈뜨자마자 아침 챙겨 먹는 것도 여행 중에만 있는 일입니다) 매번 타던 그런 종류의 버스를 탔습니다.



꼬불꼬불, 덜컹덜컹, 여명을 뚫고 2시간여를 달리던 버스가 갑자기 멈추었습니다.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 그랬습니다. 고장! 버스 밑에 들어가 한참을 붙잡고 헤매던 기사가 도저히 안 되겠다며 손을 들어 버립니다. 흐미~ 부품이 도착하려면 온 시간만큼 기다리고 있어야 한다는 이야기…. 그나마 다행스러운 건 마을 옆에서 버스가 망가져서 집 짓는 것을 구경하며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는 것이지요. 지금부터 서술하는 장면은 영원히 잊지 못할 순간입니다. 숨을 죽이고 천천히 읽어 주시기를….



몇 시간 동안 진을 빼놓은 작은 합승 버스가 힘차게 시동을 걸었습니다. 고마운 놈~. (이렇게라도 갈 수 있는 것이 고맙다는 말입니다) 며칠째 보던 비슷한 풍광이 이어지고 있어 "샹그릴라 협곡"에 대한 기대감은 그리 크지 않았습니다. 소설가가 상상으로 그려 놓은 환상의 세계를 지구촌 어디를 간들 찾을 수 있겠습니까? 새벽에 일어나 추운 곳에서 떨었더니 깜빡깜빡 졸음이 밀려왔습니다. 창밖 풍경 보기를 포기하고 눈을 감았지요. 몸을 이쪽저쪽 뒤척여 본격적인 잠자기 자세를 잡으려다 알 수 없는 기운에 그냥 눈을 뜨고 주위를 둘러봤습니다.



산을 휘감고 올라가는 버스 속에 무언가 심상찮은 기운이 감돌고 있음이 분명했거든요. 함께 탄 현지인들은 지루한 여행에 그저 무덤덤했지만, 공기가 흔들리는 이상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얼른 손목에 찬 고도계의 숫자를 쳐다봤습니다. 3,700…. 3,800…. 10, 20, 숫자가 힘겹게 힘겹게 올라가다 4,000m에서 멈추는 순간 차는 정상을 막 넘어섰습니다. (4,000m를 차로 넘는 것은 장난이 아닙니다. 나중엔 더 높은 곳도 넘었지만, 인생에서 첫 경험이 늘 중요합니다) 멍멍한 귀를 가라앉히려고 침을 꿀꺽 삼키며 눈 앞에 펼쳐진 광경을 확인한 웃비아는 "왁~~"하고 나도 몰래 소리를 질러 버렸습니다. (버스 속에 탄 사람들이 저보고 더 놀라는 눈치여서 민망~…. 푼수라 불러도 어쩔 수 없습니다.)



을 빼앗긴다는 말이 이런 말일까요? 이곳에 시간과 공간이 응축되는 일이 실제로 일어나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눈 앞에 펼쳐진 장엄한 광경이란…. 처음 머릿속을 휘감은 느낌은 이게 바로 "샹그릴라"다…. 그겁니다. 공간의 응축이라 함은 -내가 본 풍경을 사진에 담았지만, 전혀 아니 올시다. 인 걸 보면- 일리가 있는 말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정상에서 내려다본 샹그릴라 협곡은 병풍처럼 둘러쳐진 암벽 때문에 천연의 요새를 보는 듯했습니다. 눈이 닿는 이쪽부터 저쪽까지의 폭은 너무 넓어서 어느 정도의 거리인지 도저히 짐작할 수 없는 크기였죠. "그랜드 캐니언"도 보았고 "요세미티 국립공원"도 보았던 저가 이 협곡의 규모가 더 크다고 주장하면 당장 얼빠진 놈이라고 몰아붙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분명히 눈에 보이는 그 규모는 그것들보다 훨씬 크고 웅대했습니다. 클 뿐만 아니라 아름답기 그지없는 선경이었습니다.



지금까지 보아 온 그 어떤 풍경 보다……. 정신을 차리고 기사님에게 제발 차를 한 번만 세워 달라고 졸랐습니다. 그 순간 눈에 본 풍경을 절대로 놓치고 싶지 않았지요. 그때 찍은 사진이 아래 것입니다. 지금 이 이미지를 보면 좀 너무 하다 싶습니다. 아무리 자동카메라라지만 이렇게 못 나올 수가…. 수십 컷 사진을 찍어도 그 장엄한 풍광을 담을 수 없었습니다. "샹그릴라"란 착한 사람(?)에게만 보이는 곳인가 봅니다.



4.000m 정상에서 한참을 달음박질쳐 내려오면 맑은 물이 흐르는 계곡이 나오고, 이 계곡을 따라 작은 마을을 지나면 씽이 운영하는 호텔이 나옵니다. (호텔이란 단어가 크고 좋은 숙소만 뜻하는 것이 아니라는 거 아시죠? 신수만 주점은 화장실도 없습니다) 4시간이면 올 길을 오늘도 8시간이나 걸려 도착했습니다. 버스 위에 실었던 배낭을 내려 보니 어떤 길을 달려왔는지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윈제 (雲杰) 


샹그릴라 대협곡 신수만주점에 다다르자 기다렸다는 듯 반갑게 관리인 내외가 마중을 나오는데 작은 꼬맹이가 쪼르륵 뛰어나와 얼른 배낭을 받아 들고 손을 잡아끕니다. "니 하우~" 몇 살? 이름은? 초등학교 4학년이라고 하기엔 너무 어려 보이는 꼬마 이름이 윈제(雲杰)였습니다. 사람은 자기 할 나름이라는 말이 있죠? 이 녀석이 바로 그 답입니다. 짐작하시겠지만 우리 둘은 언어를 통해 의사소통할 수 없는 사이입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너무 잘 통했습니다. 세숫대야를 찾으면 보온 통에 물을 한 통 들고 이 녀석이 쪼르륵 달려와 길 건너 작은 도랑으로 안내합니다. 물이 너무 차서 그냥 세수할 수 없습니다. 화장실을 찾자 손을 잡고 풀숲으로 들어갑니다. (신수만주점엔 화장실이 없습니다.-!-) 밥을 먹을 때도 옆에 붙어 앉아 코를 연신 훌쩍이며 이것저것 챙겨 줍니다.



[ 티베티안 결혼식 ] 오늘 아랫마을에서 결혼식이 있답니다. 피로연을 밤에 시작한다는군요. 해가 질 무렵 윈제 손을 잡고 아랫마을로 내려갔습니다. 티베트 전통 결혼식을 구경할 좋은 기회를 놓칠 수 없습니다. 이 녀석은 랜턴으로 내 발아래만 비춰 줍니다. 조금 험한 길이 나오면 아이를 돌보듯 조심하라고 타이르기까지 합니다. 초대받지 않은 손님이 꼬맹이 손을 잡고 불쑥 들어서자 모두 쳐다봅니다. 윈제가 신이 나서 뭐라고 막 떠들자 -아마도 신기한 사람이 자기 집에 왔다고 자랑을 하는 것 같았습니다- 긴장을 풀고 다들 악수를 청하며 화덕 앞에 자리를 내어 주었습니다.



맥주를 권해서 마시다 문득 인도에서 틈만 나면 마시던 짜이가 생각나더군요. 이곳까지 왔으니 티베티안 전통차를 마셔보고 싶었습니다. 화덕에서 김을 뿜고 있는 주전자를 손으로 가리키니 넓은 주발에 한잔 가득 따라 주더군요. 윈제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막 잡아당깁니다. (경계의 표시가 분명하죠) 괜찮다고 안심시키고 훌훌 불어 가며 쭈욱 들이켰습니다. 헉! 이건 차가 아니라 술이었습니다. 정종 맛이 나는 티베티안 전통주. 이름이 칭커(청과)주입니다. 이때부터 장족 사람들이 너도나도 이 술을 한 잔씩 권합니다. 두 번째 도전.... 주전자가 두 가지였습니다. 하나는 크고 넓적한 주전자, 하나는 아주 예쁘게 생긴 주전자. 이번엔 뒤에 것을 골랐죠. 맞습니다. 수유차.... 그런데 딱 한 모금 마시고 더 못 마셨습니다. (으으으~ 야크버터를 넣는다는데 정말 속이 울렁거리는 느끼한 맛이었습니다) 윈제의 눈에 원망이 가득합니다. "거 봐라. 내가 주의를 줬잖아. 다 큰 놈이 강아지처럼 아무거나 껄떡거리니?" 측은지심이 뚝뚝 묻어 나오는군요... 하하



한 사람이 일어서서 일장 연설을 시작했습니다. 모두 장단을 맞추어 와르르 웃습니다. 이 웃음소리가 아주 특이해서 너무 재미있습니다. 처음엔 "허허허"하고 너털웃음을, 바로 "하하하"하고 숨넘어가듯 마무리 장단을, 그러면 다음 사람이 그 이야기의 뒤를 넘겨받습니다. 아마 이런 이야기가 아니었을까요? "옛날에 이 마을 뒤에 호랑이가 한 마리 살았었지. 그놈이 아주 고약해서 내가 혼을 내주려고 생각을 했단 말씨~. 잠자는 놈에게 다가가 꼬리를 나무에 묶고 콧잔등에 칼로 십자를 그었어. 뒤에서 방귀를 뿡 하고 뀌었더니 이놈이 놀라서 달아나는데..."



티벳티안(장족)의 결혼 피로연 하이라이트는 자정부터랍니다. 음식과 술을 마시며 이런저런 이야기로 흥을 돋우다 밤이 늦어지면 모두 어울려 춤을 춘다고 합니다. 더 머물고 싶지만 이쪽저쪽에서 받아 마신 술이 거나하게 돌더군요. 윈제도 재워야 하고.... 열쇠고리와 작은 부조금을 주인에게 슬며시 건네주고 조용히 빠져나왔습니다. 


샹그릴라 협곡의 별빛은 너무도 아름다웠습니다. 주먹만 한 별이 뚝뚝 떨어지는 길을 걸으며 내 손을 잡아끄는 꼬마는 나와 어떤 인연인지를 생각해 봤습니다. "윈제야... 공부 잘하고 건강하게 자라라." 이 녀석은 내 말을 알아듣는 눈치였습니다.



다음 날 


아침 일찍 4WD 지프가 한 대 왔습니다. 어제 씽이 가격을 말할 때 비싼 생각이 들었는데 야박하게 깎지 않았습니다. 얼마가 되었든 씽을 믿기로 했습니다. 혹시 씽이 수수료를 챙긴다면 그렇게 부조를 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제 왔던 그 길을 다시 달려 올라갔습니다. 이번에는 차에서 내려 찬찬히 보고 싶었습니다. 중간에 있는 산허리도 돌아서 내려다보고…. 역시 샹그릴라 협곡은 크고 아름다웠습니다. 부지런히 돌아내려와 협곡 아래 계곡으로 들어갔습니다. 차가 진입하지 못하는 곳까지 와서 걸어 들어갔습니다. 씽이 준비해온 큰 장화를 신고 얼음물을 건너 비경을 좀 더 돌아보았습니다. 소설에선 샹그릴라가 시간이 멈추는 곳이라 했지만, 실제는 반대였습니다. 겨우 입구만 구경했는데 훌쩍 점심시간이 넘어서더군요. 싸들고 간 도시락으로 요기하고 다시 호텔로 돌아오니 벌써 3시. 갈 길이 멀고 바쁩니다. 



[ 샹 쳉 ] 샹그릴라 협곡에서 샹쳉으로 가는 길 역시 장관입니다. 거대한 협곡이 끝나는 곳에 다다라 어제 내려온 높이만큼을 다시 올라갔습니다. 이번엔 큰 골이 나타났습니다. “옴마야~~ 여기 샹그릴라가 또 있네!” 이 골짜기 역시 만만한 크기가 아니었습니다. 정신없이 달리고 또 달리고…. (분명 정신이 없습니다) 고소 상태에서 멍~한 정신 때문에 지금도 헷갈리는 것이 하나 있습니다.



두 번째 골짜기를 빠져나오는 곳의 해발 고도가 4,500m에 육박했는데 이게 과연 가능한 일이었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때 너무 머리가 아파서 고도계를 잘 못 본 것인지? 정말 4,500m 높이에 길을 뚫은 건지…. 아무튼 중국 사람들은 길 닦는 부분에서만큼은 타의 추종을 허락하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만리장성을 쌓은 사람들에게 이건 쉬운 일에 속하겠지요?) 이제 운남성(雲南省) 여정은 모두 끝나고 사천성(四川省)으로 한 발짝 들어섰습니다.


리탕에서 캉딩으로 가는 길에 넘는 해발 4,298m 절다산 고개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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