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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utbia 김흥수 Mar 20. 2017

파키스탄 발라코트,
나시르 칸 Nasir Khan

낮선 곳에서 만남

이란 국경에서 출발한 심야버스에서 밤새 모래바람에 시달리다 새벽에 도착한 퀘타의 첫 만남은 꽤나 큰 충격이었습니다. 버스 하 차장 바로 앞이 양 도살장! 길바닥에 낭자한 선혈과 부산물을 직접 보여드리지 않아도 이 사진 한 장으로 충분히 짐작하시리라 봅니다.



이슬라마바드행 비행기 표를 예매하러 갔더니 당일 떠나는 비행기는 매진되었답니다. 하루를 쉬어 가라는 뜻으로 받아들이며 다음날 표를 끊는 데 도와준 파키스탄 젊은이가 있었습니다. "어디서 묵을 거예요?" "아무 데나 싸고 깨끗한 집이면…." "내가 묵는 호텔이 괜찮은데 거기 갈래요?" "얼만데?" "내가 말해주면 400루피(8,000원) 면 될 겁니다." " 그렇게 하자." 그가 잡은 택시를 타고 마들린 호텔로 갔습니다. 몹시 어수선한 길거리를 지나 도착한 마들린 호텔은 겉보기보다 속이 깔끔했습니다. 뜨거운 물도 잘 나오고 TV도 있고, 시트도 깨끗하고…. 종업원들의 친절도 맘에 들었습니다. 함께 묵은 젊은이는 바로 옆방인데 아마도 신혼여행 중인 것 같았고요. 불편하거나 궁금한 것이 있으면 언제든지 노크를 하라고 했지만 그럴 일은 없었습니다.



다음날 호텔을 나서자 어제 그 젊은이가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아직 시간이 좀 남는데…. 할 일도 없고 공항에 가서 기다리는 편이 낫겠다. 릭샤를 잡아타고 함께 공항으로 왔습니다. "너 부인은 같이 안 가니?" "음…. 사실 부인이 아니고 애인이에요. 집에서 결혼을 반대해서 몰래 만나러 왔어요." "웁스, 로미오와 줄리엣이 파키스탄에도 있네!"


그때부터 정식 통성명을 시작했습니다. 이런저런 이야기 끝에 "파키스탄에 와서 카슈미르 지역을 못 볼 것 같아 아쉽다"는 말을 했습니다. 이 친구가 갑자기 눈을 반짝이며 카슈미르 근처가 자기 집인데 함께 갈 생각이 없냐고 했습니다. "왜 없겠어? 정보가 없어 못 갈 뿐이지…." "그럼 이틀간 우리 집에 가요" "너 회사가 라호르에 있다면서…." "5월 3일이 파키스탄 국경일인데 연휴여서 집에 다녀 올참이었습니다." 이렇게 또 한 명의 친구를 만났습니다.



가지 않은 길


눈빛이 선해 보인다는 것과 파키스탄에서 경제적으로 별 아쉬움 없이 살고 있을 거란 짐작 하나로 아무런 정보도 없이 무작정 나시르를 따라나섰습니다. 4시 반에 출발한 비행기가 정확히 한 시간 후 이슬라마바드 공항에 도착했고, 라왈핀디 버스 터미널까지 택시로 와서 저녁 7시 40분에 출발하는 만세라 행 버스를 탔습니다. 밤 11시경 깜깜한 만세라에 도착하여 저녁을 먹고, 다시 택시를 타고 발라코트로. 나시르네 집에 도착한 시간이 자정입니다.


밤기운이 쌀쌀하여 나시르가 전기스토브를 내 침대 옆에 놓아주었습니다. 너무 늦은 밤이라 일단 자고 아침에 일어나서 가족들과 상면할 예정. 침대에 누워 잠이 들 찰나 나시르가 퀘타에 있는 애인과 끊임없이 속삭이며 통화를 했습니다. 저렇게 좋아 죽는데 왜 결혼을 반대할까? 삼십 분 이상 우르두어를 듣다 나도 모르게 잠에 빠져들었습니다.


여행 중 가장 어려운 일 하나를 꼽아보라면 어떤 사람을 믿어야 할지를 결정하는 것입니다. 인상, 차림새, 눈빛, 몇 마디 말…. 누구든 처음 본 사람을 평가할 때 자신의 느낌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내가 만난 상대방은 나를 어떻게 평가했을까요?


작년, 샹그릴라 여행 때 아무 정보 없이 씽을 따라나섰던 때와 마찬가지로, 퀘타에서 역시 나시르를 만나 오지로 선뜻 따라나설 마음을 먹은 것은 내가 결정한 일에 대해 후회하지 않겠다는 마음이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 사람을 믿는 것이 두렵다면 그 사람 역시 나를 믿기가 두렵겠죠. 


잠자리에 들자 프로스트의 "가지 않은 길"이란 시가 생각났습니다. 목적지에 거의 다가와서 다른 길을 선택하는 아쉬움과 두려움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어차피 인생이란 늘 두 가지 갈림길에 서서 선택을 하는 과정임을 우리는 압니다. 프로스트의 시가 늘 마음속에 남아있는 이유 또한 이 때문이었겠지요. 믿음은 인간관계에만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자신의 결정에 대한 믿음, 이 역시 아주 중요하다는 생각이 다시 들었습니다.



발라코트


이른 아침, 창을 통해 눈 부신 햇살이 들어왔습니다. 정말 상쾌한 아침입니다. 침대에서 일어나 살그머니 뒷문을 밀고 나가자 어젯밤엔 몰랐는데 뒤편에 정원이 하나 더 있습니다. 맑은 공기와 투명한 햇살, 싱그럽다는 표현이 딱 맞는 전형적인 농촌 마을 한가운데 나시르네 집이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낯설지 않은 풍경…. 40년 전, 잠에서 깨면 늘 맛보았던 그 상큼함을 이곳에서 맛보게 될 줄은 상상도 못 했던 일입니다. 정말 따라오길 잘했습니다. 한가하게 풀을 뜯는 검은 소, 낮은 소리로 꽥꽥거리는 거위, 뽕나무를 한 다발이고 가는 시골 아낙, 싱그러운 풀냄새, 상쾌한 바람, 흰 눈을 머리에 인 높은 산…. 누렇게 익은 보리가 실바람을 따라 일렁이고 있었습니다. "황금빛 물결" 누가 이런 표현을 처음 썼을까? 지금 눈앞에 보이는 모습을 이 단어보다 더 멋지게 표현할 수는 없을 겁니다. 소도 사람도 모습은 달라도 눈빛은 같았습니다.



나시르네 집은 꽤 큰 편입니다. ㅁ자 형태로 방들이 있고 가운데 중정이 있습니다. 본관 2층은 빨간색 지붕의 손님방이 별도로 큼지막하게 있어 스무 명쯤은 한꺼번에 잘 수도 있습니다. 옥상의 비둘기 집 같은 물탱크가 아주 인상적이고, 집 주위는 나무가 자라고 사방이 넓은 밭이어서 전형적인 시골 분위기가 납니다.



나시르네 가족은.... 아버님이 작년에 풍을 맞아 거동이 불편하게 된 이후 장남인 나시르의 형이 집을 돌보고, 2주 후면 결혼을 하게 된다고 좋아했습니다. 나시르는 23살, 라호르의 컨설팅 회사에 다니고, 여동생은 시집갈 준비를, 남동생은 올해 이슬라마바드에 있는 대학에 진학할 예정입니다. 청소도 하고 밥을 짓는 식모도 한 명 있고, 마당엔 공작새 한 마리와 거위 두 마리, 고양이 한 마리가 거주합니다.



아침을 먹고 나시르 형이랑 동내 구경을 나왔습니다. 마을 안에 제법 큰 학교가 있어 크리켓을 하는 아이들과 한참을 어울려 놀았습니다. 세상 걱정이 없는 아이들을 본 것 같아 정말 평화롭습니다. 마을을 가로지르는 개울도 둘러보았습니다. 이곳도 물 색깔이 탁한 녹회색 빛입니다. 파키스탄 북부 지방의 물은 모두 이런 색을 띠고 있더군요. 카간 벨리는 봄부터 눈이 녹아 수량이 풍부하고 장마철이면 계곡이 범람하는 사태가 종종 일어난다고 했습니다. 1994년 이 지역이 대홍수로 많은 이재민이 났었다고 설명하는데 아직도 그 흔적이 곳곳에 남아있었습니다.



나시르네 집에서 바라보면 해발 5,000m가 넘는 Musa Ka Masallah 봉이 보입니다. 이 지역 사람들이 신성하게 여기는 산으로 발라코트 어디에서든 북쪽으로 눈을 돌리면 이 산이 보입니다. 오후에는 마을의 유일한 통로인 현수교를 지나 버스를 타고 발라코트 읍내로 나갔습니다. 스즈키라는 작은 차가 유용한 이유는 이런 다리를 자유롭게 통행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북부 산악지역의 거의 모든 다리가 위태롭게 보이는 현수교인 이유도 갑자기 범람하여 급류가 몰아치면 교각이 있는 다리는 배겨내지 못하기 때문일 겁니다.


읍내가 코딱지만 했습니다. 그래도 이곳에 장이 서면 이 계곡 저 계곡에서 몰려나온 사람들로 제법 붐빌 것이고, 많은 사람에게 추억거리를 안겨주는 장소가 되겠죠. 이효석의 "메밀꽃 필 무렵"이 생각났습니다. 파키스탄에도 이렇게 멋들어진 소설이 있을까? 이런 마을을 무대로 글을 썼다면 틀림없이 멋진 작품이 탄생했을 겁니다.


저녁나절은 한가하게 나시르네 가족과 이야기하며 보냈습니다. 나시르네 집에 컴퓨터가 있어 접속했으나 몹시 느리고, 한글을 볼 수 없어 집에다 영문 메시지 하나를 겨우 남겼습니다.



이틀간 너무 잘 쉬고 갑니다. 파키스탄에서 새로운 친구를 만나 그들의 삶을 잠시나마 들여다보고 인연을 나눈 것도 만족스러웠습니다. 나시르네 가족은 오래 사귄 친구처럼 느껴졌기 때문에 이별이 오히려 쉬웠죠. 언제든 마음만 먹으면 다시 와서 머물 자리를 남겨 둔 셈입니다. 무언가 선물을 주고 싶은데 마땅한 것이 없어 답답했습니다. 이럴 줄 알았으면 한국에서 준비를 해왔을 텐데…. 나시르 동생의 덩치가 딱 나만 하여 등산용 재킷을 벗어 걸쳐 주었더니 입이 함지박만 하게 찢어졌습니다. 메이드 인 코리아. 좋은 거란다.^^ 달리는 버스에서 창을 열고 카간 벨리의 끝자락을 아쉬운 마음으로 사진에 담았습니다.



오후 내내 차를 타고 라왈핀디에 도착했습니다. "나시르, 지금부터는 내 구역이니까 주머니에 손 집어넣지 마라." 나시르가 발라코트를 다녀오는 동안 버스와 택시 요금을 모두 계산했었습니다. 이틀간 내 돈은 한 푼도 쓰지 못하게 한 것이죠. "한국 음식 먹어 본 적 있니?" " 아니요." "라호르 가는 버스는 몇 시가 막차냐?" "자정쯤까지요." "잘됐다. 지금부터 내가 쏜다. 일단 내가 묵을 집에 가서 저녁을 먹고 이슬라마바드 야경을 본 다음, 라왈핀디로 다시 와서 너 표를 끊어줄게. 알았지?" "예~~."


이슬라마바드 서울 클럽. 인터넷에서 파키스탄 자료를 찾다가 발견한 곳입니다. 서울 클럽의 식사는 한국에서도 맛보기 힘든 정갈함이 있었습니다. 오랫동안 한식을 먹지 못하다가 깔끔한 상을 받는 순간 정말 황홀했습니다. 나시르에겐 볶음밥, 난 김치찌개, 그리고 "전"도 한 장 주문했습니다. 여행 중 한식이 그립다는 생각을 별로 하지 않고 다니는데 막상 눈앞에 흰쌀밥과 김치가 나오자 눈이 돌아갔습니다.^^ “한국 사람들은 이렇게 맛난 음식을 먹는단다. 나시르에게 자랑스러웠습니다. (나시르가 김치의 맛을 알기나 할까요?) 아무튼 김치전도, 볶음밥도 아주 맛있게 먹는 걸 보니 흐뭇했습니다. 한국에서도 먹기 힘든 호박잎이 나오고…. 꿀맛입니다. 이럴 땐 배가 두 개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녁 식사를 마치고, 서울 클럽의 차를 빌려 이슬라마바드가 내려다보이는 Margalla 언덕으로 갔다가 밤이 깊어 나시르를 라왈핀디 대우 엑스프레스에 데려다주었더니 다른 버스를 타겠다고 했습니다. 영문을 몰라 이슬라마드 근처로 다시 와서 버스표를 끊어주고 작별 인사를 했습니다. 이상한 생각이 들어 서울 클럽 주인마님께 버스 터미널이 왜 두 개냐고 물었더니 라왈핀디 대우 익스프레스는 값이 비싸 나시르가 내 생각을 해서 값싼 버스를 탄 것 같다고 했습니다. 기특한 놈. 편하게 가도 될 일을…. 아주 생각이 깊은 청년입니다.


● 나시르는 지금도 라호르에 있습니다. 물론 결혼하여 아이들도 있구요. 제가 브런치 글을 페이스북에 링크하면 사진으로 글을 이해하고 이따금 댓글을 남기내요. 인터넷 발전이 세상을 정말 가깝게 만드는 것 같습니다. 분명 이 페이지에도 반가운 댓글이 달릴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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