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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utbia 김흥수 Jan 12. 2017

부다페스트의 추억 – 교민 한사장

낯선 곳에서 만남 3

유럽엔 세 가지 보석이 있습니다. 하나는 물의 도시 베네치아, 두 번째는 평원의 피렌체, 또 하나는 언덕 위의 부다페스트. 자살을 부르는 노래로 유명한 영화 "글루미 선데이"의 첫 장면을 기억하십니까? 언덕 위의 성채와 유유히 흐르는 강, 맞은편 유역의 고풍스러운 건물들, 멋진 현수교…. 그곳이 바로 부다페스트, 체인 교에서 본 백만 불짜리 경관입니다. 다뉴브 강을 사이에 두고 부다와 페스트 지역으로 나뉘어 있는 이 도시는 볼거리도 많지만 동구권의 가장 큰 매력인 물가가 싸다는 이점이 아주 맘에 들었습니다. 당시 유럽 평균 물가의 절반만으로도 호의호식할 수 있는 곳이 부다페스트였습니다. ** -유로 통합 후 지금은 부다페스트의 물가도 많이 올랐습니다. 서유럽 물가와 비슷합니다.- ** 여행에서 피로가 쌓였다면 이곳을 찾아봅시다. 곳곳에 널려있는 온천에서 휴식을 취하고 다뉴브 강을 바라보며 마시는 와인 한잔은 오래도록 가슴에 남을 겁니다. 특히 체인교 근처에서 보는 부다페스트의 야경은 압권입니다.




[ 유명 인사 ] 터덜터덜~ 엄청나게 큰 뮌헨역 2층 대합실을 걸으며 쉴 자리를 찾을 때였습니다. 왠지 모를 따가운 시선이 쏟아지는 것을 감지했습니다. 고개를 들어 저 앞을 보는 순간, 귀에 익은 우리말과 함께 함성이 터져 나왔습니다. "맞아 맞아~ 저 아저씨야~" 어디선가 만났던 학생이 보였습니다. 그간 여러 차례 한국 학생들을 만나긴 했지만 이렇게 때로 모여 있는 모습을 본 건 처음입니다. 프라하를 가는 사람들이 역에서 자연스럽게 만나 이 얘기 저 얘기 나누다가 웃기는 아저씨 이야기를 하던 중이었나 봅니다. 그래도 어른이라고 학생들을 만나면 이것저것 챙겨 주었더니 기억을 했겠지요. 원래 여행자들은 말이 많아집니다. 그때 제가 나타났으니 얼마나 웃기는 일입니까? 당황스럽긴 해도 기분은 좋았습니다. 이야기를 들은 다른 여행자들도 덩달아 반가워하며 음료수를 내밉니다. "우리 프라하 가는데 아저씨 같이 가요. 거기 가면 물가가 싸다는데 점심 사드릴게요." 정말 고맙지만, 정중히 사양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한 다스의 고삐 풀린 망아지를 보살필 힘도 없고 프라하와 부다페스트를 저울질하다 왠지 부다페스트가 무게를 더 했기 때문입니다. "우리 언젠가 다시 만나면 햄버거라도 사줄게. 내 흉은 그만 보고 이제는 칭찬 좀 해주라." 밤 11시에 떠나는 부다페스트행 카르멘 호를 타며 혼자 웃고 있었습니다. 


부다페스트 겔러티역


[ 테레자 민박 ] 새로운 경험을 하겠다고, 뮌헨- 부다페스트 구간을 일반석에 타고 야간 이동한 것은 별로 좋은 생각이 아니었습니다. 이 구간은 독일, 오스트리아, 헝가리 3개의 국경을 통과해야 합니다. 잠들만 하면 "티켓 플리즈.", 또 잠들면 "패스포트 플리즈." "얘들아 잠 좀 자자. 니들은 잠도 없냐?" 그나마 수확이라면 각국 경찰의 제복을 한자리에서 비교해 볼 수 있었다는 것이지요. 몽롱해진 걸음으로 겔레티역을 빠져나오려는 순간 한국인 학생을 만났습니다. "팔자로 다. 우리나라 사람을 만나는 건. 어디서 묵을래? 이곳은 유스호스텔보다 민박이 났다더라. "때맞추어 할머니 같은 아줌마 한 분이 와서 한글로 적힌 종이로 내밀었습니다. "테레자 민박" 하이텔 "세계로 가는 기차"에서 읽은 적이 있는 문구였습니다. "따라가자~!" 이 아줌마가 배낭여행객들에게 꽤 유명한 테레자씨였습니다. 쫄쫄 뒤를 따라 버스를 타고 민박집에 짐을 풀었습니다. 


겔러르트 온천


[ 겔러르트 온천 ] 워낙 시달린 뒤끝이어서 얼른 온천으로 달려가 여독을 풀고 싶었죠. 그 학생도 O.K!. 시내로 걸어 나오는 길에 로즈와인 한 잔씩 걸치고 시내를 대충 훑어 본 다음 언덕 밑에 있는 겔러르트 온천으로 갔습니다. 입구를 들어설 때 대우 씨에로가 눈에 띄어 반갑더군요. 빈 차에 문이 조금 열려 있었습니다. 누구 찬지 모르지만, 그냥 두면 위험할 것 같아 잘 닫아 주고 온천을 들어섰습니다. 겔러르트 온천은 로마의 유적 같은 분위기가 풍겼습니다. 물도 깨끗하고 오래된 역사만큼 무게가 있었죠. 특히 유리로 덮인 천장에서 쏟아지는 빛이 좋았습니다. 앞치마처럼 생긴 가리개로 으뜸 부끄러움을 가리고…. (왜 이런 걸 하고 욕탕에 들어가는지 참 웃깁니다. 어차피 탕에 들어갔다 나오면 별로 가리게 행세를 못 합니다. 차라리 수영복을 입던가. 바로 옆 나라 독일은 남녀 혼탕이 있고 헝가리에도 나체촌이 있었습니다) 뜨거운 물에 들어가 휴식을 취한 다음, 귀(?)한 때밀이 타올로 번갈아 등을 밀고, 탈의실에서 이 앞치마 흉을 보고 있는데 함께 목욕하던 중년 남자가 다가왔습니다. (목욕 중 흘끔 보았더니 중국인 같았습니다) "반갑습니다." 아~ 한국인이었구나…. 학생이 귀에 특이한 피어싱을 하여 일본이나 홍콩 사람으로 착각했다가 탕에서 때밀이 수건을 쓰는 걸 보고 한국인임을 알아보았답니다. (여행을 떠날 때 배낭 무게를 줄이려고 다른 것은 다 덜어내면서 이날을 위해 작은 때밀이 수건 하나를 준비해 갔었습니다) 1년 전 이곳으로 이민 온 사업가였습니다. 


[ 교민 한사장 ] 밖으로 나오면서 시내 안내를 하겠다고 차를 몰고 오는데 아까 그 씨에로…. 이렇게 만나려고 그 차 문 열린 것이 눈에 들어왔었나 봅니다. 겔러르트 언덕을 올라 "어부의 성채"와 "마차시 성당"을 보며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니 저와 동갑입니다. 나이가 같다는 것은 삶의 경험치가 같아서 금방 친해지죠. 낯가림이 사라지고 편안했습니다. 


어느덧 저녁놀이 뉘엿뉘엿 지는 성채에서 시간을 많이 빼앗아 미안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저야 놀러나 간 사람이지만 현지인들에게 시간은 곳 돈이잖아요. 저녁이라도 대접하겠다고 하자 선뜻 응하여 국회의사당 앞에 있는 선상 식당을 찾아갔습니다. 물가 싼 나라에 오면 모처럼 호의호식하기로 마음먹었기 때문에 서슴없이 제일 멋진 배를 선택하여 들어갔습니다. (배는 물에 떠 있지만, 강을 운행하지는 않습니다) 어둠에 드리운 다뉴브 강엔 체인 교와 왕궁의 불빛이 어른거리고, 집시 복장을 한 악사들은 헝가리언 음악을 연주하고…. 캬아~ 분위기 죽입니다. 그럴듯한 메뉴에 와인, 음식 맛도 좋고…. 수컷만 모여 있다는 아쉬움만 빼면 걸판진 식사를 했습니다.


체인교와 왕궁 야경


그간의 일화와 헝가리에 관한 얘기로 꽃을 피우다 어느새 밤 11시. 숙소로 돌아가려는데 테레자 민박의 위치가 기억나지 않습니다. 우째 이런 일이…. 민박집을 나설 때 우리는 서로를 믿고 주소나 전화번호를 가져오지 않았던 겁니다. 한사장이 차를 몰아 겔레트 역으로 와서 버스에서 내리던 부근까지는 그런대로 찾을 수 있었는데, 비슷한 아파트가 그 근처에 한둘이 아니었습니다. (이곳의 아파트는 "ㅁ"형태로 지어진 5층 건물, 성문처럼 생긴 정문을 통과하여 중정에서 각 방향의 출입구로 다시 들어가는 구조였습니다) “이곳인가? 벼~” 아닙니다. “그럼 이곳인가 벼~” 또 아닙니다. 졸지에 미아가 되어버렸습니다. 


마차시 성당과 어부의 성채


새벽 1시, 결국 집 찾기를 포기하고 한사장은 자기 집으로 가자고 합니다만 그럴 수 없습니다. 이 시간까지 고생한 분에게 또 신세를 지고, 새벽에 낯선 사람이 집에 들이닥치면 부인이 얼마나 난감하겠습니까? 차라리 근처의 숙박지를 알아보겠다고 몇 곳을 돌아다녀도 이상하게 문이 열린 호텔이 없습니다. 시간은 자꾸 흘러 새벽 2시, 어쩔 수 없이 우리는 한사장 집 거실에서 눈을 붙여야 했습니다. (한사장은 동포가 아니라 골칫덩이를 만난 겁니다) 새벽 6시 반, 다시 한사장의 차를 얻어 타고 겔레티역 앞에 나왔습니다. "기쁘다 구주 오셨네!" 테레자 할머니가 차 시간에 맞추어 손님을 맞으러 어슬렁어슬렁 나오고 있었습니다. 한사장은 그렇게 우리를 인수인계하고 집으로 돌아갔죠. 


너무 피곤하여 아침부터 침대에 퍼져 있는데 "따르릉!!!" 10시 무렵 한사장에게서 전화가 왔습니다. "먼 길 왔다가 잠만 잘 거냐?” 시 외곽을 구경시켜 주겠답니다. 학생은 피곤해하는 것 같아 집에 두고 우선 쎄체니 광장에 있는 온천으로 향했습니다. 어제의 겔러르트 온천과는 달리 쎄체니 온천은 굉장히 넓은 노천 온천장입니다. 수영복을 입고 (한사장은 용감하게 팬티 바람에….) 풀장에 들어가 푸른 하늘을 보며 어젯밤의 여독을 풀었습니다. 온천 라운지에서 간단하게 점심을 먹고, 차를 몰아 나체촌이 있다는 시 외곽의 호수를 들렀지만, 날씨가 추워 옷을 벗은 이는 한 명도 없었습니다. 한사장은 내심 섭섭한 마음을 감추지 못합니다. 기왕 이곳까지 왔으니 제 옷을 홀랑 벗겨 놓고 기념사진 한 방 찍어 주고 싶었다는데….^^.


세체니 노천 온천


다시 차를 몰아 다뉴브 제1의 경승지라는 "비제그라드"요새를 찾았습니다. 무너진 산꼭대기 요새에 서자 멀리 산을 돌아 흐르는 다뉴브 풍경이 또 한 번 여행자를 감동 속에 밀어 넣었습니다. 돌아오는 길에 보답하고 싶어 가족과 식사를 제의하였습니다. 초등학교에 다니는 아들 둘과 부인을 모시고 부다에서 제법 유명한 음식점을 찾았습니다. 이곳은 1년 가까이 헝가리에 사는 한사장도 같은 아파트에 사는 이웃의 도움으로 예약을 해놓고 가는 곳이랍니다. 식당은 유명세만큼이나 크고 붐볐습니다. 고풍스런 실내 장식도 맘에 들고, 격식을 갖추고 우아하게 들어서는 손님들의 모습도 보기 좋았습니다. 


비제그라드 성채


부다페스트 시민들은 레스토랑이나 극장을 갈 때면 양복을 말끔히 갈아입고 나온답니다. 밤이면 유난히 정장 차림을 많이 보는 이유가 그래서인가 봅니다. 참 여유 있는 사람들 아닙니까? "경제 발전이 문화적인 삶과 비례하지는 않는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큰 잔에 따라주는 붉은 포도주, 전통 소스를 발라 장작불에 구운 소갈비, 달콤한 아이스크림…. 다섯 명이 4인분을 시켰는데 양이 많아 절반도 먹지 못했습니다. (글을 쓰면서 그 생각이 나서 군침이 자꾸 도는군요.) 



이틀째 포식을 하고, 밤 12시경 테레자 민박에 돌아왔습니다. 정신없이 다닐 땐 몰랐지만, 피곤이 엄청 쌓였나 봅니다. 그대로 죽었다 부활하니 아침 8시, 세면을 하려는데 한사장에게 전화가 왔습니다. "별일 없으면 더 머물다 가라"고…. 진심이 담겨 있었습니다. 신세를 지는 만큼 갚아야 할 빚이 커집니다. 모자람이 지나침보다는 낫고요. 다음 만남을 위해 아쉬움을 남겨 놓기로 했습니다. 정중히 12시에 떠날 잘츠부르크행 열차를 예약했다는 구실을 대었습니다. 기다리라는 말을 남긴 한사장은 30분 후 민박집으로 왔습니다. 


열차 시간까지 못다 본 시내 구경을 하라면서 차를 돌려 시내로 나갔습니다. 노천카페에 앉아 커피 한잔 마실 때, 집에서 식사 한 끼 대접 못 해 미안하다며 슬그머니 비닐 백을 내밀더군요. 앞으로 여행에서 필요할 것 같다며 담배, 과일, 비스킷, 그리고 티셔츠 한 장과 만날 때부터 쓰고 있던 가죽 모자를 기념품으로 담아 두었습니다. (유도 선수처럼 덩치 큰 한사장은 가죽 재킷과 그 모자가 잘 어울렸는데….) 뜻밖의 선물에 당장 답례를 드릴 수 없었습니다. 주머니 속에 남아 있던 2만 원 정도의 포린트를 이제는 제게 필요가 없으니 받으라고 내밀었죠. 웃으며 받아 들고 따라오라더군요. 선글라스 없이 다니면 못 쓴다면서 굳이 하나를 골라 줍니다. 개찰구를 빠져나올 때까지 지켜보고 있던 이 양반 땜에 차에 오르면서 시야가 흐려 한참을 서 있어야 했습니다. 내가 왜 이러지? 집 떠나기 전에 눈물을 흘려 본 적이 언제였던가? 



그 후, 한사장이 전주를 다녀갔습니다. 얼마 전부터 전화번호가 바뀌어 연락을 할 수 없습니다. 만약 다시 한국을 온다면 연락주리라 믿으며 한사장에게 이 지면을 통해 뜨거운 감사를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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