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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utbia 김흥수 Jan 12. 2017

정확한 일본인 – 마쓰오 Mr. Matsuo

낯선 곳에서 만남 4

노이슈반스타인 성을 보고, 역으로 돌아가는 버스를 기다릴 때 일본인 아저씨가 처량하게 벤치에 홀로 앉아 먼 산을 쳐다보고 있었습니다. "나도 혼자 나오긴 했지만, 이 양반은 이 먼 곳에서 웬 궁상이지?" 호기심이 발동하여 "Hello" 하고 인사를 했습니다. 기다렸다는 듯 "Are you Korean?" 하고 되묻더군요. 저 역시 한국인이라고 써 들고 다니나 봅니다.^^ 통성명했습니다. 




느낌대로 50이 가까운 마쓰오씨는 일주일간 독일과 오스트리아를 혼자 돌고 있었습니다. 전기 회사 과장인데 일 년에 한 번씩 휴가를 내어 해외 나들이를 한답니다. 일본을 방문한 적이 있다고 말했더니 아주 반가워하더군요. 일본인과 대화는 참 편합니다. 우선 어순이 같아 단어만 나열하면 뜻이 통하고, 가끔 한자를 표기하면 만사형통. 더 재미있는 것은 저의 웃기는 영어가 이 사람들 발음보다는 훨~ 났다는 것입니다. 퓌센역에 와서, 마쓰오씨는 호텔에서 가방을 가져온다고 했습니다. 아무 생각 없이 손가방과 손에 든 잠바를 지켜 준다고 말하자 성큼 건네주고 사라졌습니다. 


노이슈반스타인 성  2006. 08.25 SONY α100  F11  26 mm S1/160  ISO100


차 시간이 가까워질 무렵, 마쓰오씨는 이삿짐처럼 큰 트렁크를 둘둘 끌고 나타나더군요. 일주일 여행에 저 큰 가방을 무엇에 쓰지? 궁금증을 감추고 차를 탔습니다. 그 후, 2시간 내내 창밖을 내다볼 틈도 없이 우리는 수다를 떨었습니다. 무슨 예기를 나눴느냐면…. 세계평화를 위한 담론이랄까? 더 나아가 우리의 정신세계 고찰과 우주의 기원 같은 것. 또는 칸트의 순수이성에 대한 비판…. (믿어 봐!) 오후 5시경 뮌헨역에 도착했습니다. 밤 11시에 떠나는 쾰른행 야간열차 출발 시간까지 여유가 있어 시내도 둘러 볼 겸, 내친김에 친절을 베풀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솔직히 그 큰 짐 두 개를 끌고 예약해둔 호텔을 혼자 찾도록 두기에는 너무 안쓰러웠죠. 


지하철을 두 번 갈아타고, 전혜린 씨의 글로 유명한 슈바빙 근처에 내려 지도를 보며 이쪽저쪽 헤매다 간신히 호텔을 찾았습니다. 짐을 풀자 마쓰오씨는 언제 보아두었는지 한국 음식점에 가자고 합니다. "웬 한국 음식점이요?" "바로 곁에 있잖아." 호텔 근처에 식당이 있었는데 저는 못 보고 지나쳤나 봅니다. "정말?" 오던 길을 조금 돌아 "서울 식당"이라는 간판이 당당히 붙어있더군요. "눈이 보배야" 세계평화를 논할 때, 동경에 오면 자기가 식사를 대접하겠다고 해서, 전주에 오면 우리 집에 초대하겠다고 말한 터라 "그럼 한국 음식은 내가 내겠다."고 호기를 부리고 들어갔습니다. 

서울식당은 정갈하고 깨끗했습니다. 메뉴판을 들고 온 종업원이 완벽하게 평양말을 써서 나를 혼란스럽게 만든 것만 빼면. 의아하여 연유를 묻고 싶었지만 마쓰오씨를 두고 한국말로 떠들면 서먹해 할까 봐 더는 질문은 삼갔습니다. 역시 생각대로 음식값이 만만치 않군요. 한국 음식이 처음이라는 마쓰오씨에겐 불고기를, 제 몫은 그 집에서 제일 싼 육개장을 시켰습니다. 주위를 둘러보던 마쓰오씨가 갑자기 소주를 마셔 보고 싶답니다. 헥! 이 나라에서 소주는 수입 양주 아닙니까? 시바스 리갈값을 치르고 소주를 한 병 샀죠. 그래도 즐거웠습니다. 근 열흘간 우리 음식 근처에도 안 갔더니 얼큰한 육개장과 김치가 입에서 살살 녹더군요. "역시 우리 것은 좋은 것이야!" 매운 김치와 소주 때문에 얼굴이 빨갛게 달아오른 마쓰오씨도 기분이 아주 좋은 것 같았습니다. 


흐뭇한 식사를 마치고, 계산대에서 카드를 내밀자 이 양반이 더치페이를 주장합니다. "일본인들이 정확한 것은 알고 있지만, 이번은 상황이 좀 다르다. 여기는 한국과 같은 곳이니 양보하고 동경에서 만나면 당신이 청주랑 스시를 사라. 그리고 한국인은 딜러가 돈을 내는 것이 관습이라 한국인의 예를 지켜야겠다."고 되지 않은 영어로 설득했죠. (주변 사람들은 서로 돈 내려고 싸우는 모습이 아주 신기했을 겁니다.^^) 


마쓰오씨는 못내 찜찜한지 맥주를 한잔 사겠다고 했습니다. "그거야 좋지요." 호텔 라운지로 자리를 옮겨 또다시 제2차 세계 평화 회담을 열었습니다. 떠날 시간이 가까워 자리에서 일어나려는데, 마쓰오씨는 "작은 선물 하나를 줄 테니 사양하지 말라"며 당부를 합니다. 그때까지도 밥값이 마음에 걸렸나 봅니다. 작은 기념품이라면 받아도 괜찮을 것 같아 “그러마” 라고 했습니다. 엥…? 이 양반이 지갑 속에서 빳빳한 일본 지폐 5,000엔을 꺼내어 정중히 건넵니다. "연장자가 주는 선물은 받는 것이 예의"라면서…. "헉! 5,000엔이 작은 선물입니까?" 그리고 현금이 기념품이냐고요. "받을 수 없다"고 했죠. 


또 막무가내입니다. "차라리 더치페이를 하자"고 이번엔 제가 제의를 했습니다. 마쓰오씨는 "그 돈을 내가 받고 대신 맥줏값을 내라"고 합니다. 더 이상 고집을 피우면 실례가 될 것 같아 5,000엔을 받아 들었지만 난감했습니다. 맥줏값이라야 고작 우리 돈 3,000원 정도인데…. 우리의 방식이 꼼꼼한 일본인에게 오히려 폐를 끼친 결과가 되어버렸습니다. 헤어질 때 "새로 산 카메라 조심하고 아무나 믿으면 안 된다"는 당부를 합니다. "그런 양반이 퓌센에서 어떻게 처음 본 저에게 짐을 통째로 맡겨 두고 볼일을 보았냐?"고 대꾸했죠. "그것은 자기도 예외였다"며 머쓱히 웃습니다. 



한국에 돌아온 후, 편지와 함께 전주의 특산품 태극선을 소포로 부쳐 드렸습니다. 곧바로 “센수”라는 일본 부채를 답례로 보내온 영감탱이…. 이분의 부인은 영어 선생님이어서 이따금 남편을 대신하여 아주 예쁘고 쉬운 글을 보내줍니다. 서로의 집을 방문하는 약속은 언제나 유효 한 채로, 이제 우리는 국적이 다른 형과 아우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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