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에피소드 01
지금은 추억이지만 당시의 황당함이란….
잊고 싶은 기억도, 행복했던 기억도 인생의 훈장입니다.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프리발티스카야 호텔’은 회색 콘크리트구조물로 규모가 엄청납니다. 설마 이게 호텔일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돈데 모양새도 특이하여 한국 사람들은 "마징가 호텔"이라 부르더군요. 정말 그랬습니다. 마징가Z 머리와 흡사한….
이 호텔은 겉모양새와 어울리게 방을 찾아가는 동안 방화문 3개를 통과합니다. 첫 번째 문에서 룸 카드를 인식해야 문이 열리는 이상한 -러시아에선 자연스러운 일인지 모르지만- 구조였습니다. 방에 와서 카드를 넣어도 문이 열리지 않더군요. 몇 번을 시도했지만 불발! 착각했습니다. 어제 10층에 묵었더니 헷갈리우스... 제방은 7층이었습니다.
통로는 층과 상관없이 투숙자 키로 다 열리나 봅니다. 문 3개를 열고 나가 엘리베이터를 타고 7층으로 내려와 다시 문을 3개를 열고 들어갔죠. 헥헥. 샤워를 하는데 전화가 왔습니다. 9층에 계신 손님이 드라이가 이상하다고 좀 봐 달랍니다. 다시 저 많은 문을 여닫으며 9층으로 갈 일이 끔찍했습니다. 잘 돌아가는 머리를 굴렸습니다. 복도 끝엔 역시나 비상계단이 있습니다. 흐흐. 간단히 2층만 올라갔다 오면 되겠죠? 문을 열고 진입!!!
어두운 비상구를 두 층을 가늠하여 올라가 빠져나오려는 순간, 옴마나~~~! 비상계단은 밖으로 나갈 수만 있고, 안으로 진입하지 못하도록 문고리 자체가 없었습니다. 케케겍. 동굴 속 같은 비상계단엔 그야말로 희미한 전등불뿐. 꼼짝없이 비상구에 갇힌 겁니다. 문이 얼마나 튼튼한지 발로 차도 꼼짝도 안 합니다. 누군가 목을 조른다 해도 쥐도 새도 모를 장소. 계단 하나를 내려올 때마다 발자국의 울림이 기괴하기 그지없습니다.
아~~ 층고는 왜 이리 높은겨…? 일 층에 다다라도 문고리가 있다는 보장이 없습니다. 내려가는 길이 공포의 계단으로 돌변했습니다. 5층쯤 내려오자 아예 전등불도 없습니다. 더듬더듬…. 전구가 없는 세 개 층을 내려오는 동안 완전한 암흑…. 식은땀이 줄줄. 겨우 일 층에 도착하여 아래를 보니 또 계단이 있습니다. 허걱~~ 지하다…. 조금 더 내려가면 나이트메어의 프레디가 손가락 칼날을 갈며 기다릴 것 같은 분위기. 목이 바작바작 타들어 갔습니다.
더듬더듬... 아~ 일층 반대편에 손잡이가 있습니다. 겨우 빠져나오는 안도감이란...휴우~~. 그런데 내가 나온 곳은 무지하게 큰 호텔 뒷부분입니다. 좌우 어느 쪽이 빠를까 가늠을 하다 좌측으로 이동을 했습니다. 제기랄~~~ 안 되는 놈은 끝까지 안 됩니다. 한참을 가다 꺾어지는 쪽에서 길이 막혔습니다. 뚫고 나가려 해도 가시덤불입니다. 다시 돌아가는 길도 만만치 않습니다.
5월 페쩨르의 밤바람은 쌀쌀하기 그지없었습니다. 젖은 머리에 가벼운 옷차림으로 나왔다. 꽁꽁 얼었습니다. 겨우겨우 손님방에 갔더니 영문 모른 손님은 왜 이제 왔냐고 핀잔을.-!- 여러분도 조심하세요. 이 이후 여행 중엔 비상구 점검을 꼭 합니다. 호주에도, 유럽에도 중국에도…. 문고리 없는 비상구 많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