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에피소드 04
부쿠레슈티 북역 플랫폼에 서 있는 국제선 열차가 좀 이상합니다. 아무리 찾아봐도 소피아행은 없고 전부 모스크바, 키에프행만 매달려 있습니다. 역무원에게 물어물어 열차 끝까지 나가자 맨 앞에 달랑 한 칸이 소피아행 열차였습니다. 헐~ 뒤에 매달린 열차들은 멋지게 생겼는데 우리가 탈 칸은 엄청 낡았습니다. 주제에 1등 칸이라고 표기가 되어있네요. (소피아행은 침대칸이 없습니다. 우리는 2등 칸을 끊었습니다.)
승무원에게 우리가 앉을 자리를 물었더니 아무데나 마음에 드는 곳을 찾아 콱 처박히랍니다. 열차는 낡았지만 구조가 6인실 쿠셋형이라 중간 자리를 찾아 앉았는데 아무도 타는 사람이 없는 분위기입니다. 팔걸이를 젖히자 훌륭한 2인실 침대칸으로 변했습니다.
밤 23시 55분 소피아행 국제 열차 정시 출발합니다. 넓은 객차에 6명이 탄 것 같습니다. 더 바랄 나위 없는 상태에서 딱 한 가지 부족한 부분이 있다면 난방이 안 되는 열차였다는 것…. 지금까지 연일 낮 기온이 20도를 넘었는데 오늘은 밤 온도가 4도까지 뚝 떨어졌습니다. 가방에서 내복을 꺼내 입고, 점퍼를 하나 더 껴입고 자리에 누워도 따뜻한 이불이 그리워졌습니다. 그러거나 말거나 부쿠레슈티에서 워낙 헤매고 다녔던 터라 금방 곯아떨어졌죠.
30분쯤 후, 쾅쾅 문 두드리는 소리…. 표 검사를 한다고 단잠을 깨웁니다. 다시 1시간 반 후, 루마니아 측에서 여권 검사 한다고 또 잠을 깨우고…. 이때부터 두 시간가량 열차가 움직이지 않고 이름도 알 수 없는 역에 정차해있습니다. 1시간 반 정도가 지나면서 이번엔 불가리아 측에서 여권 검사를 나와 잠을 깨웁니다. 표 검사부터 두 차례의 여권 검사까지 문을 살살 노크하는 법이 없습니다. (부서 질 듯 요란하게 발로 찹니다) 이래저래 총 5번의 잠을 깨우는 동안 동생이 발딱발딱 잘도 일어나기에 난 죽은척하고 시체 놀이만 하고 있었습니다.
열차가 국경을 출발한 시간이 새벽 4시 반, 잠깐 잠이 들자 이번엔 모기 한 마리가 계속 앵앵거리며 팔과 얼굴을 물어뜯습니다. 엄청나게 가렵네요. 가려움을 참고 나머지 구간 1시간 반 정도는 아주 깊은 잠에 빠졌다가 알람 소리에 눈을 떴습니다. 열차가 막 고르나 오라호비차역에 도착하고 있었습니다. 동생은 그 무렵 겨우 잠이 들어서 정신이 없고…. 자칫하였으면 내려야 할 곳을 지나칠 뻔했습니다. (발칸 지역에서 열차를 타면 내릴 곳을 스스로 챙겨야 한다는 점 명심하시길.)
새벽 6시 45분, 고르나 오라호비차역에 정확히 내렸습니다. 루마니아나 불가리아 열차는 상습적으로 연착한다는데 신기하게 딱딱 맞추었습니다. 비몽사몽 역을 빠져나와 택시를 타려고 돌아보는데 코앞에 벨리코행 미니버스가 대기하고 있습니다. 20Km 정도를 버스를 타고 가서 숙소까지 택시를 타면 많이 절약될 것 같아 1.5레바를 주고 버스를 탔습니다. (1레바는 우리 돈 700원 정도임)
[친절한 사람들] 며칠 전, 구르카 호텔 이름을 키릴문자로 동생이 그려 둔 것이 있어 차장에게 보여 주자 어딘가에 전화하더니 걱정하지 말고 타라고 했습니다. 기사도 아주 친절합니다. 벨리코터르노보에서 다른 차를 잡아 준다니 이 어찌 아니 기쁠 수가…. 불가리아 사람들 친절에 감탄하며 20분쯤 달려오자 벨리코터르노보시 중심에 진입했습니다. 인터넷 검색과 구글 지도 덕에 요즘은 어딜 가도 예전에 와 본 듯한 느낌이 듭니다. 센터에서 몇 사람은 내리고 버스가 더 달려 시 외곽 쪽으로 나갔습니다.
조금 이상한 생각이 들었지만, 곧 버스정류장에 도착하여 차장이 짐을 내리고 다른 차를 소개해 주었습니다. 이렇게 친절해도 되는 걸까요? 불가리아가 너무 맘에 듭니다. 새로 탄 버스가 벨리코 시내 쪽으로 가는 동안 동생과 뒷자리에 앉아 불가리아에 대한 첫인상을 이야기하며 희희낙락. 그런데 한참이 지나도록 시내가 보이지 않습니다. 고속도로 같은 길을 차는 달리고…. 이상하다. 이렇게 돌아서 호텔 쪽으로 가려나? 아무래도 이상하다 싶어 앞자리에 앉은 사람에게 이 차 벨리코터르노보 시내로 가는 것이 아니냐고 물었더니…. *&^ %$ # @#$ %^&*
황급히 영어가 되는 사람을 찾아 사정을 물었습니다. 이 차는 벨리코에서 200Km 이상 떨어진 플로브디프로 가는 차라고…. 엥 멍뮈? 우리는 벨리코터르노보 구루코 호텔을 가는데…. 그제야 분위기가 파악되었습니다. 동생이 써 놓은 구루코호텔 (키릴문자)를 보고 차장이 우리가 "구루코"라는 지역으로 가는 줄 알고 벨리코터르노보에서 플로브디프행 차를 연결해 준 겁니다요. (플로브디프 근처 어딘가에 구루코라는 지역이 있나 봅니다)
갑자기 차 안이 술렁술렁…. 영어 되는 사람과 기사님의 친절로 차를 우회하여 벨리코터르노보를 가는 버스가 있는 지역에 우리를 내려 주었습니다. 때맞추어 벨리코행 버스기 들어오고, 고맙다는 인사를 할 틈도 없이 플로브디프행 차는 출발하고…. 우리는 벨리코행 마을버스를 타고 시내로 들어왔습니다. 결과적으로 시내 버스비 1레바를 주고 시외 구경을 한 시간 했다는 것. 조금 더 멍청했더라면 불가리아 제2의 도시 플로브디프로 가서 새우잡이 배에 팔려 갈 수도 있었지만……. 카카
이렇게 헤맨 덕분에 좋은 일도 있습니다. 너무 이른 시간에 호텔에 오면 체크인이 안 되어 어정쩡한 시간을 보냈을 텐데 구르코 주인아주머니가 따끈한 커피까지 끓여주며 마실 동안 방을 마련해 주었다는 사실…. 그런데 또 대박! 주인아주머니가 우리 방을 일반실이 아닌 로얄 스위트룸으로... 아무튼 웃비아의 여행 운은 계속됩니다.
상- 벨리코터르노보 구루코호텔 전경
중- 구루코호텔 아침 식사(숙박비 포함)와 저녁 (별도)
하- 일반실 요금으로 얻은 구루코호텔 로얄스위트룸 (사진의 왼쪽 아침 식사 포함 55유로^^)
침실 2, 월풀욕조와 2개의 화장실, 거실, 베란다까지... 매번 이 가격이라면 이 호텔 전세 내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