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단상
홍하상 님이 쓴 "진짜 일본 가짜 일본"이라는 책을 보다 폭소를 터뜨렸습니다. 아랫부분에서 왠지 모를 통쾌함이 일더군요. 그렇다고 저가 무라카미류나 하루키를 싫어하는 건 아닙니다. 몽환적인 분위기를 내는 일본 작가를 좋아하는 한국 독자가 많다는 것에 의아심을 갖고 있었는데 이렇게 철퇴를 가하는 글을 보니…. 하하하. 본인의 주장을 이렇게 딱 부러지게 하는 사람의 글이 좋아지는 걸 보면 저가 아직 겁이 좀 많은 편인가 봅니다. 사실, 글 자체에서 상대방의 공격에 대한 반응을 인식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은 내재한 힘이 있다는 뜻입니다. 준비되지 않은 사람은 공격할 수 없습니다. 섣부른 공격은 만용입니다. 웃뺘는 언제쯤이면 이렇게 입바른 소리를 펑펑할 수 있을지…. 자~ 아랫글 한번 보실까요? 독수리 타법으로 열심히 타이핑했습니다. 뒤에 저의 의견도 하나 더 달아 놓겠습니다. ↑위 표지사진 2015.05.18 SONY α77M2II 코트다쥐르 모나코
일본 사람들, 특히 여자들은 참 이상해서 영어를 유창하게 하거나, 반 미국인인 것처럼 행세를 하면 사족을 못 쓰는 경향이 있는데, 하루키야말로 그러한 이그조티시즘(이국취미)을 정확하게 실천하는 대표적인 작가가 아닌가. 무라카미 류 역시 그의 여러 책에서 유럽이나 미국의 최고급호텔 이름과 별 세 개짜리 식당(미슐랭 가이드의 분류법에 따른 것으로 미슐랭가이드는 맛, 분위기, 서비스를 평가, 그에 대한 기준을 ★로 표시함. 검은 별 세 개면 만점으로, 별 세 개짜리 식당은 프랑스 전체에 20개 밖에 없음)이나 음식에 대한 맛과 분위기를 감각적인 문장을 최대한 동원해서 그려낸다. 그걸 읽는 왜녀들은 자기는 별 세 개짜리 식당에는 가보지도 못했지만, 여행했던 그때의 분위기를 떠올려, 비록 싸구려 식당에서 먹었지만 자기가 별 세 개짜리 식당에 간걸로 상상력을 발휘해서 최대한 오버랩을 시키면서 그래 맞았어, 하면서 황홀해 하는 것이다.
이를테면 무스 쇼콜라. 무라카미 류가 그의 글 <달콤한 악마가 내 안에 들어왔다> 에서 달콤한 악마로 표현한 바로 그 음료이다. 그는 무스 쇼콜라에 대해 써 나간다. 그가 그 음료를 마신 곳은 남프랑스의 니스. 니스를 설명하기 위해서 그는 코트다쥐르부터 그리기 시작한다. 코트다쥐르 하면 한 번쯤 그곳을 가본 사람이라면 그 말만 들어도 맛이 가기 시작하는 지명인데, 아름답지 않다는 건 아니지만 그걸 쓰는 사람이 실제보다 더 아름답게 한껏 부풀려 그리고 있다.
그곳을 한번 밟아본 왜녀들은 코트다쥐르라는 지명을 읽는 순간, 코발트 빛 지중해의 바다와 하얀 분말 같은 조갯가루 백사장을 떠올리면서 벌써 가슴은 두방망이질 치기 시작한다. 그리고 이어 그는 해안가에 늘어서 있는 휴양도시의 지명들, 생 트로페 (그는 상 트로페라고 일본식으로 썼지만), 칸느, 니스, 망통 (그는 만톤이라고 썼지만, 왠 만톤?), 모나코에 이르는 여정을 상세히 그려 나간다.
내가 좋아하는 것은 낮은 절벽길이라 불리는 해안에 가까운 오래된 도로이다. 그 도로는 다른 도로에 비해 좁고, 구불구불하지만 유서 깊은 마을과 요트 항구 등을 가까이 보면서 달릴 수 있다. 문장이 이쯤 나가면 왜녀들의 머릿속엔 고흐의 풍경화보다도 더 아름다운 그림이 그려져 나간다. 좁은 돌계단과 골목길이 미로처럼 뒤엉켜 있고 성벽의 내부에는 교회나 상점, 작은 정원, 그리고 소박한 별 네 개짜리 호텔이 둘 있다.
이쯤 되면 왜녀의 머릿속은 프랑스 낭만주의 화가의 그림보다 더 선명한 유럽의 골목 풍경이 확연히 들어오면서 자기가 그곳을 걷고 있는 것 같은 착각마저 인다. 그러면서 별 네 개짜리 호텔이 소박하다고 쓴 류의 고급 취향에 대해 내심 감탄한다. 별 네 개짜리 호텔이 소박한가? 별 네 개짜리 호텔이 소박한 게 아니라 건물이 소박하다면 몰라도. 그러나 그는 거기서 멈추지 않는다. 그는 소박한 별 네 개짜리 호텔을 버리고, 그 아래 수목의 그늘에 있는 백악의 호텔에 투숙한다. 이쯤 되면 참 취미도 고상하셔 하는 말이 입속에서 튀어나온다.
그리고 그는 뜸을 들일 대로 들이다가 드디어 문제의 식당으로 간다. 생 햄과 모차렐라, 냉채 수프, 튀르프가 든 부드러운 쇠고기를 먹고, 보르도와인과 치즈로 마무리를 한다(이쯤 되면 미식취향이 상당히 복잡해진다). 그리고 드디어 문제의 무스 쇼콜라가 나온다. 독자들은 여기까지 오느라고 얼마나 가슴을 졸였겠는가. 그리고 무스 쇼콜라의 맛을 기가 막히게 표현해낸다. 입안에서 녹아서 다른 존재가 되어 버리는 것 같아. 달콤하다거나 쓰다는 말도 맞지 않아. 그런 걸 넘어선 맛이야. 왜녀는 이 대목을 읽으면서 이렇게 훌륭한, 이렇게 유명한 음료라면 꼭 가서 먹어봐야지 하면서 이번 휴가는 적금을 깨서라도 니스로 갈 것을 굳게 결심하고 일기장에도 별표까지 치면서 써 놓는다.
어디서 이런 고전적인 수법을 쓰고 있는가, 류여! 현지에 가서 물어보면 무스 쇼콜라를 아는 주민들이 별로 없다. 그리고 그게 그렇게 맛있는 음료냐고 되묻는다. 그리고 그 음료가 어떻게 일본에서 까지 유명하게 되었을까, 하고 턱을 괸 채 그 이유를 찾아내기 시작한다.
요즘, 무라카미 류는 아침마다 애들 학교 데려다주기 바쁘다. 그는 바쁜 와중에 무스 스콜라를 맛보면서 패션모델 출신과 니스 공항에서 우연히 만나 섹스할 틈이 없다. 그리고 그는 별 네 개짜리 호텔을 소박하다고 할 만큼 부자도 아니다. 그리고 알만한 일본 사람들은 다 안다. 그가 얼마나 쫌상인지는. 무라카미 하루키도 마찬가지이다. 자폐증 환자와 자개증 환자는 자(自)자 돌림의 형제간이다. 둘 다 정상이 아닌 것이다.
한국의 젊은 독자들이여, 무라카미 형제에게 너무 뻑 가지 마라. 요즘 일본 애들 말로 초베리베(超very bad), 무라카미 형제.
딱히 하루키나, 류와 연관도 없고 일본은 정말 여행하기 좋은 나라에 배울 것도 많은 나라지만 왠지 잘되면 배 아픈 나라가 일본이어서 왜녀라고 불러주는 용기에 내 속도 씨원합니다.ㅋㅋ 하지만…. 다시 생각해 보면 이런 현상 그리 나쁜 것도 아니지 않습니까? 팍팍한 세상에 달콤한 꿈이라도 잠시 꾸게 해주는 무라까미 형제의 환상여행 동참이…. 내가 못 간다고 꿈꾸지 말란 법 없고, 환상 없이 여행 떠나기 쉽지 않고…. 다만, 기대 이상의 환상은 절대금물! 책은 책이고 현실은 다릅니다. 실제 여행에선 꿈꾸던 일 별로 일어나지 않습니다. 차라리 여행은 생각지 못한 장소에서 감동 받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배낭여행을 준비하신다면 첫 페이지부터 차분히 보아주시길 권합니다. 이 시리즈는 단행본 두 권 정도 분량으로 준비되어 있습니다. 정독하시면 여행준비에 도움은 물론, 현지에서 시행착오도 훨씬 줄어들 겁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