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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utbia 김흥수 Jan 13. 2017

준비가 어렵다고? 그게 바로 여행의 시작!

여행 단상

멈추지 않고 여행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불가능하다고요? 문제없습니다. 

몸은 집에 있고 마음만 떠나도 여행입니다. 


첫 여행을 유럽으로 떠나겠다는 작심을 한 후 6개월 이상 유럽에 관한 자료를 모았습니다. 머릿속은 틈만 나면 유럽 땅에 발을 딛고 마음은 벌써 떠나있었기에 여행은 이미 시작된 겁니다. 매달리고 안달하던 일상의 시시콜콜한 걱정거리가 몽땅 사라졌습니다. 짜증 나는 일들이 비집고 들어 올 틈이 없어진 겁니다. 더 중요한 일 앞에서 작은 일은 아웃 오브 안중입니다. 사람이 전 보다 더 넓어지고 환해지더군요. 자리를 비운다는 책임감 땜에 일도 더 열심히 하게 되고 가족에 대한 배려도 더하게 됩니다. 이전에 없던 모습을 새로 보여준다는 것은 발전을 뜻합니다. 그리고 메인 게임에 돌입했습니다.


물론 여행은 만족스러웠습니다. 집에 돌아온 후에도 여행은 끝나지 않았습니다. 그간 못했던 일도 마무리 하고 친구를 만나 이야기꽃도 피우고 그럭저럭 한 달이 후딱 지나가더군요. 그다음 여행기 정리가 내 발목을 잡고 있었습니다. 사진을 보고 메모를 하고 글을 쓰는 시간 동안 내 여행은 줄곧 계속되었습니다. 다음 해 또 새로운 여행지를 선택하고, 이 일은 반복에 반복을 거쳐 오늘에 옵니다. 한 달 여행을 위해 6개월 준비하고 나머지 기간은 정리하며 1년을 몽땅 여행한 셈입니다.


여행 일을 본업으로 한 이후에는 정리할 시간이 없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이제 내 시간을 보냈으면 좋겠다 생각해도 그건 꿈일 뿐입니다. 힘닿는 데까지 뛰어야 목구멍에 풀칠하게 되겠죠. 몇 년 후면 이 일도 더 이상 할 수 없게 될 겁니다. 내가 아무리 하고 싶어도 고객이 늙은 안내자를 반가워할 리 없습니다. 눈치가 보이면 앞으로 인생을 다시 설계할 겁니다. 지금 정리하지 못한 자료는 그때를 위해 틈만 나면 색인을 달아 보관을 하고 있습니다. 퇴직 후에 할 일이 기다리고 있으니 이 또한 즐겁지 않겠습니까?



아는 것만큼 보인다?


여행이 서툰 초반엔 철저한 준비가 도움이 됩니다. 만약의 사태를 대비하고 그 뒤까지 생각하며 준비해야 현지에서 당황하지 않습니다. 아는 것만큼 보인다는 말도 여행에선 명언 중 명언입니다. 준비 없이 다가간 앙코르 와트 유적은 그저 돌무더기에 불과했습니다. 너무 아쉬워 작심하고 공부하여 다시 갔습니다. 역시 처음과 달리 눈이 확 뜨이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지금 저는 이런 준비 없이 여행을 떠납니다.


그렇다고 아무런 준비를 하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동선을 짜고 시간 안배를 위한 자료를 찾은 후 이동과 숙박지 관리는 철저히 하는 편입니다. 나머지는 가능한 한 비워둡니다. 너무 많은 것을 알고 가면 여행에서 아주 중요한 요소인 감흥이 떨어집니다. 학술탐사를 한다면 철저한 사전 준비와 공부가 필요하겠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이럴 때는 너무 많이 아는 것이 독이 될 확률이 더 높습니다. 많은 사람이 말합니다. 진정한 여행은 길을 잃었을 때 시작된다고. 저 역시 이 말에 적극 동감합니다. 아래는 2003년 샹그릴라 여행을 마치고 쓴 글입니다.



여행을 하다 보면 아는 것만큼 보인다는 말을 자주 실감합니다. 쓰러져 가는 기둥 하나도 유래를 알면 달라 보이고, 건축물, 그림, 조각, 하다못해 마을의 전설까지 알고 가면 모든 것이 눈에 쏙쏙 들어옵니다. 저가 중국 사천성을 짝사랑하게 된 이유도 바로 이놈 때문입니다. "아는 것만큼 보인다." 


실은, 역설입니다. 사천성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고 첫 대면 했기 때문에 미쳐버린 것 같습니다. 일 년에 한 번, 틈을 내겠다고 마누라를 협박한 이후, 여행지를 선택할 때 가능한 한 멀리, 그리고 우리와 다른 곳을 선택했습니다. 중국은 워낙 가깝고 사는 모습도 비슷해서 별 매력을 느끼지 못했습니다. 그래도 여행지를 중국으로 택한 이유는 "잃어버린 지평선"이라는 책 한 권과 삼국지의 무대 "장강 삼협"이 댐 건설로 물에 잠기기 일보 직전이라는 것이 유일한 이유였습니다.


이 여행을 준비하며 운남과 삼협 정보만 뒤졌기 때문에 사천성의 수도가 성도라는 것만 알고 떠났습니다. 막상 여행하는 동안 자세하게 준비한 운남과 삼협은 감흥이 떨어졌습니다. 예상했던 수준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딱 아는 만큼의 정도였습니다. (물론 좋긴 하죠) 중디엔에서 코스를 변경하여 아무것도 모르는 사천으로 발길을 옮기는 순간, 그때부터 제 앞에 펼쳐진 풍광은 놀라움 그 자체였습니다. 만약 이 길을 알고 떠났다면 그런 놀라움은 전혀 없었을 거라 확신합니다. 미지에 대한 두려움과 어떤 상황이 발생할지 모르는 긴장감. 이것이 바로 여행의 묘미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아는 것만큼 보인다!” 이 말은 정답. “모르고 보면 더 좋다!” 이 말도 정답.


여행기를 쓰면서 자세한 묘사나 사진 설명이 가끔은 여행자의 눈을 흐리게 하는 것 같아 미안한 마음이 들기도 합니다.


2015. 06.18 SONY α77M2II  아일랜드, 더블린 트리니티 대학 도서관


배낭여행을 준비하신다면 첫 페이지부터 차분히 보아주시길 권합니다. 이 시리즈는 단행본 두 권 정도 분량으로 준비되어 있습니다. 정독하시면 여행준비에 도움은 물론, 현지에서 시행착오도 훨씬 줄어들 겁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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