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단상
여행에서 언어란?
외국어를 한마디도, 정말 한마디도 못하는 사람이 해외여행이 가능할까요? 답은 무조건 Yes입니다. 불시에 목소리와 청력을 동시에 잃은 장애가 생겼다고 가정했을 때 우리나라 여행이 불가능할까를 생각하면 답이 나옵니다. 듣지도 말하지도 못하는 상태라면 우리나라든 해외든 똑같은 조건의 불편을 겪겠지만, 여행을 못 할 정도는 아니라고 봅니다. 귀는 들리는데 목소리를 잃었다면 한국에서는 약간 불편하겠고 해외에서는 조금 더 많이 불편해지겠죠. 그뿐입니다. 언어란 소통하기 위한 약속일뿐, 서로 소통하려는 의지만 있다면 불가능할 이유가 없기 때문입니다.
토비응이 그린 “백 명의 세상”을 보면 이 세상에서 가장 많은 사람들이 쓰는 말은 영어가 아니라 중국어입니다. 영어를 원어로 쓰는 사람은 전 세계를 통틀어 9%에 불과합니다. 그럼에도 여행에서 언어라면 당연히 영어를 떠올리게 되는데 실제로 그렇습니다. 세상 말이 달라도 영어를 배우는 사람들이 놀랍도록 많기 때문에 현재로썬 영어가 가장 유용한 소통수단이 됩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영어가 서툰 상태에서 해외여행을 하다 보면 다른 나라에서보다 영어를 원어로 사용하는 영국, 미국, 호주 같은 곳이 더 불편하고 의사소통이 더 안 되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영어를 원어로 쓰는 사람들은 영어로 말하는 나를 이해하려 들지 않기 때문입니다. 실제 우리도 주변에서 그런 일을 겪습니다. 외국에서 온 친구가 한국말을 하면 한국사람 대하듯 빠르게 답을 하게 되죠. 그런데 그 사람이 영어로 물어왔다면 “아~ 이 사람은 한국말을 못하는구나.”하고 차분히 알아듣기 쉽게 대답해주는 이치와 같습니다.
여행에서 대화를 가장 많이 나누고 친구를 만들게 되는 경우는 내 영어 실력과 비슷한 수준의 사람이나 나보다 영어가 서툰 사람을 만났을 때입니다. 이때는 내가 소통의 끈을 놓지 않는 한 대화는 무한정 이어집니다. 말이 안 되면 표정으로 대화하기 때문입니다. 특히 후진국 여행에서는 정말 많은 이야기를 하게 되는데, 은연중 우리에 대한 동경이 있어 스스로 다가서려는 자세를 보이기 때문에 바디랭귀지라 할지라도 대화가 자연스럽게 진행됩니다.
어느 정도 영어를 하면 여행에 불편이 없을까?
제 경험에 비추어 단순히 무언가를 보고, 먹고, 자는 생존여행은 70~80세대에서 중학교를 나왔다면 충분하다고 봅니다. 후진국 여행이라면 이 정도로도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친구를 만들 수 있습니다. 30대 미만이신 분들은 지금의 영어로도 여행은 차고 넘칩니다. 제 말이 절대 과장되지 않았다 확신하는 이유는 은연중 우리는 생활에서 영어를 많이 접하고 청소년기에 배운 기억들이 머릿속 어딘가에 보관되어있기 때문입니다.
실제 여행에서 상황이 다급해질 때 숨어있던 영어가 튀어나오는 신기한 경험을 직접 체험하는 재미도 있습니다. 더 확신하는 이유는 영어를 내 머릿속에 있는 단어로만 나열할 필요가 없는 시대에 와 있다는 것입니다. 와이파이가 접속되는 지역에서 번역 앱을 이용하면 영어가 아니라 스페인어 러시아어도 수준 높게 스마트폰이 해결해 줍니다. 약간의 돈을 지불하면 세계 각국의 언어를 번역하고 소리로 들려는 칩을 스마트 폰에 저장할 수 있으니 데이터 이용이 불가능한 지역에서도 걱정할 일이 없습니다. 다만, 영어를 능숙하게 구사하면 언어 소통에 머리 아픈 절차를 거치지 않아 편하고 속 깊은 대화를 나눌 수 있다는 것이 차이가 납니다.
영어가 느는 신기한 경험
첫 여행 이후 몇 차례 여행 더하는 동안 나도 모르게 영어가 많이 늘었습니다. 언어란 자주 사용하는 것이 중요한 것 같습니다. 이제 영어에 대한 두려움은 거의 없습니다. 자막이 없는 영화도 예전보다 보기 쉬워졌습니다. 여행과 펜팔이 영어를 얼마나 늘게 하는지 단적인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첫 여행 후 7년이 지난 2005년 4월 중국 사천성 랑무스에서 로라라는 영국 처녀를 만났습니다.
온종일 랑무스를 함께 돌며 친해졌더니 로라가 이런 말을 해줘서 저를 기쁘게 했습니다.
"아저씨…. 근데 있잖아요. 중국 사람들하고 일본 사람들과 말하면 무슨 말인지 잘 못 알아듣겠는데요,
한국 사람들은 영어를 참 잘해서 좋아요."
"그래? 내 말도 괜찮게 들리냐?"
"그럼요…. 아저씨 영어 참 잘하세요."
"내가 잘 해? 허허 개가 웃겠다. 난 T와 Th, L과 R, F와 P를 구분하지 못하는데 그래도 알아들어?"
"그럼요. 나는 한국말을 한마디도 못하는데 아저씨는 영어를 하시니 대단한 거잖아요."
" 에고 기특하다. 그렇게 말해줘서... 덕분에 영어 노이로제 좀 벗어나겠다."
올 7월에도 아일랜드 코크에서 만난 젊은이가 함께 놀다 이와 비슷한 말을 해서 웃었습니다. 한국 사람들 다른 나라 사람들보다 영어 발음이 좋다 하니 힘냅시다!
배낭여행을 준비하신다면 첫 페이지부터 차분히 보아주시길 권합니다. 이 시리즈는 단행본 두 권 정도 분량으로 준비되어 있습니다. 정독하시면 여행 준비에 도움은 물론, 현지에서 시행착오도 훨씬 줄어들 겁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