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tGPT에게 경제 공부 시켜본 건에 대하여
원래 쓰고자 한 내용은 이게 아니었다. 원래 쓰려는 내용은 지난 글에서 언급했던 가격 상승과 인플레이션의 관계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써보려 했다. 미 연준이 가장 발생할까 두려워했던 임금이 가격을 끌어올리고, 또 그 가격이 임금을 올리게 되는 현상, 소위 전통적인 "Wage-Price Spiral" 현상이 아니라, 기업 이윤이 가격을 끌어올리는 현상, "Profit-Price Spiral"에 대해 최근 나온 연구결과를 소개하고 생각해보고자 하는 글을 쓰고자 했다.
경제 관련 글을 쓰려고 할 때에는 언제나 정확한 내용과 숫자, 주장에 대한 명확한 근거를 찾아서 쓰고자 하기에 글 쓰기에 앞서 관련 내용을 공부하고자 했다. 그중에 호주중앙은행(Royal Bank of Austrailia, RBA)에 게재된 내용이 있었고, 미 연준 부의장에서 미국 국가경제위원회(NEC) 위원장으로 지명된 브레이나드가 올해 1월 관련된 내용에 대해 연설을 한 자료가 있었다. Profit-Price Spiral 연구는 최근 들어 더욱 주목받고 있기에 관련 자료를 찾는 건 쉽지 않았다.
하지만 긴 영문 자료를 보자니 귀차니즘도 발동하고, ChatGPT와 같은 AI들에 대해 여전히 불신을 갖고 있는 터라 시험도 해볼 겸, 말을 걸어보았다. 대화를 대략 번역해서 올려본다.
나 : profit price spiral에 대해서 알려줘
GPT : 미안한데, 나 그 단어 몰라. 2021년 9월 이후 나온 개념이나 지식인가 본데, 내 지식은 거기까지야. 괜찮으면 그 용어에 대한 자료 좀 준비해 줄 수 있어? 해주면 도와줄게.
나 : (귀찮게스리..) 어떻게 준비해 주면 되는데
GPT : 네가 설명해 주거나, 자료 준비해 주면 되는데
나 : 그거 관련된 연설 자료가 있긴 하다만
GPT : 내가 그거 직접 가져다 볼 수 없으니까 복붙 해서 알려줘. 자료를 많이 갖다 주면 내가 좀 더 잘 도와줄 수 있을지도?
나 : 옛다 복붙 (브레이나드 연설문 복붙. 단어수로 1912개, 10포인트 글자로 줄 띄우지 않고 붙여 써서 A4 2장+2/3장 정도의 꽤 긴 내용임)
GPT : (정말 2초 안에 답변 시작) 자료 감사. 공유해 준 내용 분석해 보면 정확히 그 용어는 안 나오네. 연설문은 기본적으로 최근 경제상황하고 물가, 노동시장, 통화정책, 그 외 기타 요소들을 다룬 내용이야. 그런데 내용을 살펴보면 그 용어는 이런 이런 내용이고(설명하기 시작함). 이 글에 따르면 인플레이션은 높은데 최근 이런저런(실제 예를 들어줌) 하강 신호가 나오고는 있다네. 그리고 1970년대의 "Wage-Price Spiral"랑 비슷한 상황은 아니라고 하네. 저임금 노동자 늘어난 게 고임금 노동자 축소하고 상쇄되는 것 같아. 추가적으로 총수요 둔화와 잠재되어 있는 이익 축소 압력이 인플레이션 하락을 이끌 것이라고 해. 전체적으로 보면 이 글은 직접적으로 "Profit-Price Spiral"을 직접적으로 설명하고 있지는 않아. 전반적인 경제와 물가 등에 대한 인사이트를 설명하고 있는 글이야.
나 : (....헐) 하나 더 있어
GPT : 다시 한번 말하지만, 내가 직접 못 구하니까 공유해라.
나 : 자 복붙 (Austrailia Institute에서 연구한 리포트 요약본 복붙. 640 단어.)
GPT : (1초 뒤) 공유해 준 자료에 따르면, RBA가 임금 상승을 제한하는 건 실수라는 거야. 이 리포트는 호주의 인플레이션은 "Profit-Price Spiral" 현상이지, "Wage-Price Spiral" 현상이 아니라네. 그리고...( 그 뒤는 요약본 내용 다시 요약해서 붙여 넣기)... 그리고 이건 리포트 요약본인데, 내가 그 리포트를 얻을 수 없다. 알아둬라.
나 : (.....) 자 전체 리포트 링크 (full report 링크 복붙. PDF 파일 링크이며, 전체 16 페이지 자료. 그래프와 표를 포함하고 있으며 상당한 양의 내용임)
GPT : (한 2초 뒤) 자료 제공 감사. 일단 내가 전에 착각했네. 미안(무엇이 미안한지는 모르겠음). 리포트를 리뷰해 봤고, 이 리포트는 "Profit-Price Spiral"에 대한 디테일과 호주 인플레이션에 미친 영향을 실증적인 증거를 제시했네. 2022년 9월까지의 자료를 분석한 리포트이고, 기업 이익과 임금, 인플레이션에 대한 포괄적인 시각을 제공하고 있구만. 이 자료의 실증적인 데이터는 기업이익의 초과가 인플레이션의 주요 원인이지, 임금이 아니라고 해. 그래서 RBA를 포함해서 중앙은행이 임금제한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건 실수라고 하고 있어. 게다가 이 리포트는 호주의 실질임금이 하락하고 있고, GDP에서 노동이 차지하는 부분이 감소하고 있는 점을 1970년대에 임금이 오르고, GDP에서 노동이 차지하는 부분이 확대된 점하고 비교해서 지적하고 있어. 너도 한번 리포트 읽어봐라.
나 : (.......호...혹시 이런 것도 대답할 수 있을까?...) 그럼.... 그 리포트를 기반으로 해서 볼 때, 처음에 준 연설자료의 내용이 리포트가 주장하는 바에 부합하는 것 같아?
GPT : (1초 만에) 아까 준 연설자료하고 리포트의 주요 포인트를 기반으로 해서 살펴보면, 몇 가지 겹치는 부분들, 비슷한 부분들이 존재해. 둘 다 "Profir-Price Spiral"이 인플레이션의 원인이라고 주장하고 있고, 기업이익 초과가 주요 원인이라고 하고 있지. 실제로 연설문에서는 호주 사례를 직접적으로 예시로 들고 있고. 그리고 두 자료 다 노동자들에 대한 부정적인 효과, 즉 실질임금 하락과 생활비용의 상승 위기를 강조하고 있어. 임금 제한과 기준금리의 계속적인 인상은 실수 일 수 있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네. 일단 연설문은 좀 더 광범위하게 이슈를 다루고 있고, 리포트는 더 깊게 디테일을 연구했다는 점을 알아둬라.
여기까지가 대화내용이다. 세상에. 물론 더욱 새로운 내용을 알아냈다거나, 모르던 지식을 알려줬다거나 하는 내용은 없다. 제공한 자료가 적기도 했고, 쉽게 정의 내릴 수 있는 부분은 아니니까 말이다. 하지만 혼자 읽고 이해하려면 필자에겐 족히 1시간은 걸렸을 내용을 복붙 몇 번 하니 10분 만에 내용 정리가 끝나버렸다. 공유한 자료들의 주요 내용을 요약해 준 것뿐만 아니라, 개인적으로 가장 놀라웠던 점은 두 자료의 비교 분석까지 했다는 점이다.
이러한 자료의 수요자로서는 실로 엄청난 일이다. 여러 가지 자료를 보는 입장에서 개별 자료의 정확성을 검증하기는 어렵고, 또 필요로 하지 않는다. 자료를 읽고, 그 논리의 타당성을 검토한다. 그리고 한 자료의 질을 깊게 파는 것도 좋지만, 논리적 타당성을 검토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자료를 접해서 비교 분석하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논리와 논리의 비교를 통해 상호검증하고 나의 주장 근거로 삼을 자료를 찾는 것이, 우리가 리포트와 뉴스, 자료를 소비하는 방법이다.
그런 측면에서 볼 때, ChatGPT는 매우 유용하다는 점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그전에 가지고 있던 부정적인 시각을 한 번에 날려 보냈다. 첫 대면 때 요즘 일본에 관광으로 가볼 만한 도시가 어디 있을까 물었더니, 부산도 나오고 포함도 나왔었다. 그 뒤로 아직 성장하지 못한 미숙아 정도로 취급했다. 명확히 틀린 생각이었다는 것을 인정한다. 또한, 한편으로는 많은 인력에 대한 불필요함을 느끼는, 소름 끼치는 경험이었다는 점 역시 알리고 싶다. 결론적으로 잘은 모르지만 앞으로 이 친구에게 자료를 계속 먹여주며 대화하게 될 것 같다는 생각을 떨쳐버리기 힘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