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whitehole Jun 11. 2023

탐욕이 경기침체를 이끌지어다.

화폐수량설로 풀어본 망상

  화폐수량설. 경제학을 공부해 본 사람이면 한 번쯤 들어봤을 고전 이야기. 어빙 피셔에 의해 본격적으로 시작되고 케인즈가 부정했고 밀턴 프리드만이 재해석해서 살려놓은 이론. 여기까지는 검색 5분만 하면 쉽게 쉽게 찾아볼 수 있은 내용이다. 이 글은 그 내용을 고찰하고자 하는 바가 아니고, 이를 바탕으로 최근에 일어난 어떠한 일을 매개로 해서 앞으로 어찌 될지를 한번 쓰잘데기 없이 생각해 본 글이다. 고로 화폐수량설 및 신화폐수량설은 매우 간단히 훑어보고자 한다.


  수학의 가장 매력적인 점은 말하고자 하는 바를 수식으로 매우 명확하고 간단하게 표현할 수 있다는 점이다. 화폐수량설도 그렇다. 단 하나의 수식으로 표현하면 아래와 같다.


P x Y = M x V


  왼쪽 항을 보면 P는 가격, 즉 물가 수준이며, Y(본래 거래량을 뜻하는 T지만, Y로 대체 가능 by 소득모형)는 실질 GDP이다. 자세한 내용은 생략하며, 디테일한 약간의 어긋남(P는 물가 수준 자체로 보기보다는 GDP 디플레이터로 봐야 한다든지..)은 대세에 지장 없으므로 넘어간다. 오른쪽 항을 보면 M은 통화량이고, V는 통화유통속도이다. 왼쪽은 좀 간단하다.


  또 한 번 생각해 보면 왼쪽 항, PxY는 가격에다가 물건 생산할 것을 곱한 것이니 공급량의 총 화폐적 가치를 의미한다고 볼 수 있고, 오른쪽 항 MxV는 통화량에다가 그 통화량이 돌아다닌 속도를 곱한 것이니, 쓴 돈의 총 화폐적 가치, 즉 수요량의 총 화폐적 가치를 뜻한다고 볼 수 있다. 여기까지를 배경지식으로 깔고 가자.


  이제 이 글의 주제에 관련된 이야기를 해보자. 최근 몇몇 미국 지역은행의 파산 소식이 들려왔었다. 나름 규모가 큰 지역은행의 파산이라 시장에 미치는 영향은 작지 않았다. 우려가 현재진행형인 만큼 은행의 안정성이 개별 은행 주가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고 있고, 안정성을 제고하기 위해 예금 규모를 확대하고 유동성을 확보하고자 하는 움직임이 강화되었다. 자연스레 은행은 돈을 웬만하면 가지고 있으려고 한다. 한마디로 돈이 돌아가는 속도, 즉 통화유동속도인 V가 줄어들어 버렸다고 할 수 있다. 그렇지 않아도 08년 금융위기 이후 통화유통속도는 크게 낮아졌다. 버냉키가 말 그대로 쇼미더머니를 쳐버렸지만, 돈 받은 금융기관이 다시 연준에게 갖다 주면서 골치 아픈 문제가 되어버린 V였다. 그게 이번에 다시 한번 낮아질 수 있다.


  V가 낮아진 가운데, 연준이 기준금리 인상 말고 꾸준히 하고 있는 일이 하나 더 있다. 양적축소, 즉 QT이다. 정확히는 자산을 축소하기 때문에 자산을 팔아버리고(또는 재투자를 안 하고) 돈을 빨아들인다. 결국 QT는 통화량 축소를 의미한다. 즉 피셔의 교환방정식 상의 M이 줄어들고 있다. 세상에. 연준은 기준금리를 올리지 않아도 풀브레이크를 밟고 있는 셈이다. 처음에 V가 낮아질 수 있다는 얘기를 기억해 보자. 그리고 M도 줄여버리고 있다. 수요의 화폐적 총량이 매우 매우 빠르게 축소되고 있는 것이다. 통화정책을 담당하는 연준이 원하는 바가 바로 수요의 화폐적 양을 줄여버리는 것, 이것이 아닐까?


  방정식으로 돌아와서 왼쪽항을 다시 한번 살펴보자. 우측의 수요 화폐총량이 줄었으니, 방정식에 의하면 공급 화폐 총량도 줄어야 한다. 수요 화폐 총량은 생각보다 빠르게 줄어들 수 있다. 그럼 우측항도 숫자가 빨리 줄어야 할 텐데, 특히 가격이 빨리 줄어들어야 공급이 줄어드는 양이 그나마 작을 수 있다. 그렇지 않다면? Y가 더 빨리 줄어들어야 한다. Y가 의미하는 바를 떠올려보자. GDP, 즉 경제성장률이 축소되는 것은 우리의 삶에 더 큰 악영향을 줄 수 있다.


  그럼 P가 빨리 줄어들면 되는데, 작년부터 지금까지 하나같이 고물가라는 얘기를 하고 있다. P가 빨리 줄어들지 않고 있다. 그 원인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가장 큰 용의자 두 명을 고르자면 임금과 마진이다. 주요 용의자였던 원자재는 이미 나가떨어졌다.


  첫 번째 용의자 임금은 사실 거의 유죄 확정적이었다. 주로 미국 얘기지만, 일자리는 풍부했고 기업은 사람을 못 구해서 난리였다. 그런 와중에 이민 제한으로 노동력 유입도 지지부진하니 임금은 빠르게 올라갔다. 모두 원자재가 쏘아 올린 작은 공을 임금이 받아서 더 높이 쏘아 올렸다고 생각했다. 아예 틀린 말은 아니었다. 실제로 임금은 크게 상승했다. 그런데 얼마나 높이 쏘아 올렸으며, 어디까지 쏘아 올렸는지에 대해 다른 얘기들이 나오고 있다. 최근 미국 IT 대기업은 대규모 감원을 지속하고 있다. 반면 미국의 숙박/레저/외식 부문에서의 고용은 이민자 유입이 확대되면서 빠르게 충원을 이어가고 있다. 돈 많이 받는 사람이 줄고 돈 적게 받는 사람이 늘어났다. 최근 임금 상승률 증가폭이 둔화하고 있는 점이 이를 시사하고 있다. 그리고 원래 임금이 오른 걸 보니 물가 빼고 생각하고 고임금 노동자들의 임금 상승률도 감안하면, 고개를 좀 갸웃하게 된다. 올해 1월 미 연준 부의장을 지내다 경제자문위원회 위원장으로 자리를 옮긴 브레이나드 위원장이 발표한 내용에도 이러한 점이 드러난다.


  두 번째 용의자 마진은 사실 숨겨진 용의자였다. 크게 눈에 띄지 않았다. 비용 상승이라는 가면을 쓰고 마치 마진 확대가 적었던 것처럼 은밀하게 움직였다. 하지만 조금씩 베일이 벗겨졌고, 마치 유주얼 서스펙트의 카이저 소제처럼 사실은 모든 일을 뒤에서 꾸민 두목일 수 있다는 얘기가 흘러나오고 있다. 그리고 일정 부분의 윤곽이 드러난 상태에서 가격의 하방 경직성과 메뉴 비용을 무기 삼아 방어를 시도하고 있다.


  물론 모두가 그런 것은 결코 아니다. 모든 가격이 다 그렇게 매겨지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아무도 그런 적이 없다고 말한 수는 없다. 자동차 딜러의 마진은 여전히 높고, 식품업계는 우크라이나 전쟁을 핑계 삼아 가격을 올려버렸다. P를 지지하고 버티는 데에 분명히 일조한 바가 있다. 탐욕이 기회를 틈타 활개를 치고 있을 수 있다.


  다시 한번 방정식으로 돌아가보자. 정책으로 조절할 수 있는 것은 오직 M 뿐이다. 목적은 P를 낮추는 것. 그래서 M을 축소시켰다. 그런데 뜻하지 않게 V도 한 단계 줄었을 수 있음을 감안해야 하는 지경에 처했다. 목표인 P는 최대한 버티고 있다. 결국은 Y가 생각보다 크게 줄어야 할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탐욕 때문에. 탐욕이 우리를 다 같이 붙잡고 경기 침체로 급행열차를 태워 보내고 있는 중일수도 있다.



   

작가의 이전글 ChatGPT, 너 대단하긴 하구나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