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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hitehole Aug 12. 2023

미국 신용등급이 왜 중요할까?

내 신용등급과도 별 상관없는데, 알아야 하나?

  약 한 달여간 무더위에 지쳐 글쓰기를 쉬는 사이, 꽤 중요한 변화들이 여러 가지 생겼다. 그리고 그중에 중요하지만 중요하지 않은 것처럼 지나가고 있는 일 한 가지를 우선 짚어보고자 한다. 바로 미국의 국가 신용등급이 강등된 일이다.


  국가들의 신용등급을 정해주는 회사가 세 군데 있다. S&P, 무디스, 그리고 Fitch 이다. 이 중에 S&P가 11년 전 미국 신용등급을 AAA에서 AA+로 강등했다. 그리고 얼마 전  Fitch가 AAA에서 AA+로 두 번째 강등을 했다. 11여 년 전에는 만에 발생한 일이다. 그러고 나서 세상은? 금융시장은? 으응? 큰 변화가 없었다. 잠잠했다. 11년 전과는 다른 모습이다.

S&P500 Index / source: tradingeconomics.com

  위 그래프를 보자. 실제 강등은 2011년 8월에 일어났지만, 그전부터 이에 대한 우려가 생겼었고, 이벤트 전후로 시장은 가격의 급락으로 반응했다. 1300 pts 수준에서 유지되던 미국 S&P500은 급락하면서 1100 pts 대로 내려앉았고, 몇 개월동안은 회복하지 못했다. 채권시장은 더 극적이다. 미국채 10년물 금리는 3% 이상에서 유지되던 수준이 순식간에 2% 초반으로 하락했고, 이후 회복하지 못하고 더 아래로 내려가 버렸다. 하지만 이번에는 아무 일 없다는 듯이 조용히 지나가고 있다. 당시에는 미 국채금리가 왜 그럴까? 그리고 진짜 이게 끝일까? 다른 분야도 비슷하지만, 금융처럼 인적자원으로 부가가치를 만들어 내는 곳에서는 끊임없이 질문을 던져보는 게 중요하다. 여담이지만, 금융권에 다니는 사람에게 정말 기본적인 원리에 대해 질문해 보라. 알고는 있지만 왜 그런지는 잘 모르는 경우가 생각보다 많음을 알게 될 것이다.


  미국이 가지는 특수성은 군사력에도 있겠지만, 달러에서도 나온다. 소위 말하는 기축통화, 그중에서도 최고존엄인 달러를 발행할 수 있는, 발권력을 가진 나라라는 점은 금융권 나아가 경제 영역에서는 유일하게 핵무기를 손에 쥔 나라와 같다. 한마디로 대체불가다. 바로 이 특수성이 금번 신용등급 강등 이벤트에서 별 임팩트가 없는 가장 큰 이유인 듯하다.


  2011년, 미국이라는 대체불가한 존재의 첫 신용등급 강등이라는 경험을 맞이했을 때, 다들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몰랐었다. 다른 나라 같으면 신용등급이 하락한다 함은 대체로 해당 국가가 사용하는 통화가치가 하락하고 외국인 자금이 빠져나가 달러와 같은 신뢰도가 좋은 통화로 옮겨간다. 그 과정 속에서 환율과 주식, 금리가 가격하락을 경험하게 되는 게 일반적이다. 그런데 달러를 빼서 어디로 가야 한다는 말인가? 이걸 알 수 없었던 당시에는 일단 불확실성이 높아졌다. 금융시장에서 불확실성이 높아진다는 것은 주식과 같은 위험자산 돈을 일단 빼서 채권과 같은 안전자산으로 간다는 말과 같다. 그럼 세계에서 제일 안전한 곳은? 흐음......... 일단 미국 정부가 보증하는 미국 채권보다 안전한 건 없지 않나? 설마 미국이 망하겠어? 어차피 미국이 망하면 모두가 같이 망할 것 같은데?....... 그럼 일단 다시 미국으로 가는 결론이 나온다. 일반적인 금융 논리가 비틀어지는 경우다.

  이때 다들 경험했다. 미국 신용등급이 떨어져도 결국 갈 곳은 미국이라는 것을. 게다가 11년 전 S&P가 한번 강등시키고 계속 유지되고 있는 그 수준으로의 강등이다. 마치 핵무기에 좀 스크래치가 났어도 여전히 유일한 핵무기라는 점에는 변함이 없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때문에 급작스런 발표임에도 명경지수와 같이 시장은 평온했다. 가장 민감해야 할 달러 인덱스는 겨우 8월 1일 0.4%, 8월 2일 0.3% 수준 상승하고 말았다. 그럼 오케이, 임팩트는 없는 걸로 하고 끝!이라고 외칠 일일까?


  금번에 Fitch가 강등한 이유를 살펴보면 요지는 다음과 같다.


'너네, 빚이 너무 많고 계속 더 안 좋아질 것 같아. 그래도 너희가 좀 힘도 세고 나름 잘 굴러가고 합리적이기도 해서 그래도 괜찮겠지 하는 믿음이 있었거든? 그런데 요새 하는 거 보니 그것도 좀 의심스럽네? 경고 한번 줄게'


  오바마 정부 시절 불거진 부채한도 협상 이슈는 이제 매번 등장하는 이슈가 되었다. 매번 합의가 돼서 넘어갔지만, 어느새 의회와 행정부 사이의 협상 레버리지로 쓰이는 도구가 되어버렸다. 그런 이유로 있는 부채한도가 아닌데. 우리가 알만한 주요 국가 중에 매번 국가부도를 판돈으로 올려놓는 상황이 생기는 국가는 미국 밖에 없다. 그런데 어쩌다가 이 게임에서 상황이 이상하게 흘러가거나 꼬여버렸을 때의 임팩트는 너무 크다. 피치가 경고를 날린 이유다.


  그러나 위의 얘기는 어디까지나 정치적인 얘기이고 여기는 투자에 대해 생각해 보는 곳이니 다시 생각해 보자면, 문제의 본질은 사실 부채가 너무 많다는 점이다. 코로나 팬데믹을 넘어가면서 불가피하게 시행되었던 재정정책 덕분에 급격하게 늘어난 정부부채가 가장 큰 이유이다. 부채의 규모도 문제지만, 더 큰 문제는 증가 속도다. 사실 부채가 늘어나도 GDP가 그 이상으로 성장해 버리면 관리 가능한 문제이다. 갑자기 1년 사이에 나의 빚이 10억이 늘었어도 나의 수입이 100억이 늘어버리면 괜찮은 것과 같은 이치이다. 하지만 오히려 코로나 팬데믹 기간에는 미국 경제의 성장이 둔화되었고, 엔데믹으로 가면서 고성장이 이루어지면서 어느 정도 설장 추세는 균형이 맞아가고 있다. 하지만 정부부채는 크게 증가한 뒤 축소되지 않았고 여전히 GDP 대비 높은 수준이다. 심지어 기준금리가 급격히 상승하면서 국채의 이자지출 비용이 크게 늘어나고 있다. 해결책은 명확하다. 부채를 줄여야 한다.


  얼마 전 미국의 3분기 재정조달 계획이 발표되었다. 6월에 부채한도의 증액을 합의했기에 국채 발행량이 증가할 것이라 예상했지만, 실제 발표된 계획은 시장의 예상을 뛰어넘었고 시장은 이를 반영해서 금리가 상승했다. 문제는 여기서 시작이다. 늘어난 공급량을 누가 받아줄 것인가의 문제로 넘어갔다.


  지난 8일 무디스는 미국 중소은행들에 대한 신용등급을 강등시켰고 6개의 대형은행은 하향 검토 대상에 올랐다. 다양한 이유가 있지만, 가장 큰 원인은 시장금리가 너무 빠르게 올랐기 때문이다. 조달비용이 오르는 속도만큼 수익률 상승 속도가 따라줘야 할 텐데 오히려 보유채권은 손실이 크게 발생해 버리는 상황이라 건전성이 흔들려 버렸다. 이런 상황에서 늘어난 미국 국채를 받아줄 여유는 생기지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럼 외국인 투자자는 어떨까. 미국 국채 발행량의 약 20%는 외국인이 보유한다. 그중에서 가장 보유량이 많은 곳이 일본, 중국, 영국이다. 이 중에서 가장 큰 손, 일본이 7월 후반에 생각지 못한 일을 벌였다. BOJ가 이번에는 넘어갈 것이라 예상한 것과는 다르게 통화정책을 일부 수정했다. 살짝 기준금리를 올린 것과 비슷한 효과를 냈다. 사실 이쪽 사정도 만만치 않기에 어쩔 수 없다지만, 하필 이럴 때에. 여하튼 일본 금리는 정책 일부 수정 이후 계속 오르는 상황이고, 장기적으로 꾸준히 매수를 하겠으나, 단기적으로 부담이 늘어나 버렸다. 게다가 2번째 큰 손인 중국과의 사이는 좋지 않다. 옐런 장관이 가서 달래 보려 했으나 쉽지 않았고, 사실 미국도 큰 기대는 하지 않았지 싶다. 오히려 중국의 채권 보유량은 줄어들 가능성이 높아진 것도 사실이다.

  다행히 최근 미국 국채 입찰 동향은 선방 중인 듯하다. 하지만 본질이 해결되지 않은 상태에서 언제든지 다시 문제가 불거질 수 있다. 게다가 'Higher for Longer'가 메인 테마인 현재 통화정책 상에서 기준금리가 쉽사리 내려가긴 어렵다. 그런 상황에서 미국 의회 예산국은 30년 뒤 미국 국채 이자지출이 세입의 약 35%, GDP의 6.7% 수준에 달할 것으로 전망했다. 결국 부채를 줄여야 한다.


  미국 정부가 부채를 줄인다는 얘기는 재정정책을 축소한다는 의미이다. 어떤 상황에서 어떻게 줄여나갈지 알 수 없지만, 확실한 건 미국 경제의 성장 기반 하나가 약화된다는 얘기이다. 게다가, 현재 상황을 둘러보자. 미국 2분기 GDP는 예상보다 호조를 기록하며 미국 경제 아직 죽지 않았음을 전 세계에 외치고 있다. 또한 하향 추세가 진행되었으나, 여전히 높은 수준의 인플레이션은 수요를 위축시키기에 좋은 환경을 제공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높은 기준금리로 인해 미국 경제의 둔화 가능성이 여전히 존재하고 있다. 미 연준 위원들은 내년 기준금리 인하를 예상하고 앗고, 연준의 자산축소 정책도 계속 진행 중이다. 만약 내년에 실제로 경기가 하강한다면, 재정정책 축소는 꿈도 꾸지 못할 일이 될 것이다. 따라서 생각보다 일찍 재정을 축소하는 모습이 빨리 나타날 수 있다. 그렇다면 국내 경기에는? 어떻게 보아도 좋은 일이라 하기에는 좀 어렵다. 재정 축소는 결국 미국의 소비 감소를 가속화 시키고, 이는 중국과 교역량이 줄어들고 있는 마당에 미국향 수출마저 감소시킬 수도 있다. 직접적으로는 아니더라도 졸고 돌아 간접적으로도 그렇게 될 수 있다. 지금 글로벌 경기를 멱살잡고 끌고 가는 친구는 미국이라는 점을 잊지말자.


  미국의 신용등급 강등이 나의 신용등급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칠 일은 없다시피 하다. 하지만, 간접적으로 멀리 빙 돌이서 나의 경제 상황에는 영향을 충분히 미칠 수 있는, 그냥 흘려보낼 수만은 없는 이벤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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