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디지털전사 Mar 13. 2019

IS의 아이들과 부모의 원죄. 저들을 용서할 수 있을까

삶은 결코 영속적이지 않다

미제라블(Les Misérables)은 빅토르 위고의 소설입니다. 뮤지컬로도 대성공을 거둔 이 작품은 우리에겐 장발장이란 소설로 유명합니다. 주인공 장발장에 가려져 있는 조연 중에 에포닌 테나르 디에(Éponine Thénardier)라는 소녀가 나옵니다. 부모는 사기꾼이자 악당의 대표 격인 테나르 디에 부부입니다. 돈을 받는 조건으로 입양했던 어린 코제트를 학대했던 것도 모자라 선량한 장발장에게서 더 돈을 뜯어 내고자 마지막까지 악랄한 모습을 보여주었던 구제 불가능한 인간 막장들입니다. 그런 부모 밑에서 자라난 에포닌도 소매치기와 사기로 밑바닥 인생을 전전하였습니다. 그러나 거리에서 만난 마리우스를 짝사랑하며 결국 그 대신 총을 맞으며 목숨까지 바치는 희생으로 짧은 삶을 마감합니다. 


그녀가 사랑한 마리우스는 부잣집 도련님으로 혁명을 꿈꾸는 열정이 넘치는 청년입니다. 그녀를 정열적인 짝사랑의 광풍 속으로 몰아넣은 것은 무엇이었을까요? 삶에서 결코 소유하지 못한 것들에 대한 동경이었을까요? 아니면 자신에 대한 연민 때문이었을까요? 그녀는 사랑과 함께 비극적인 삶을 마감해 독자들의 감성을 자극했지만 그 부모는 끝까지 반성하지 않는 삶을 산 듯합니다. 영화로 만든 장면에서도 테리우스의 결혼식에 몰래 잠입해 돈을 뜯어 내려다 결국 쫓겨나는 모습으로 그려집니다.


에포닌의 눈물을 보면서 오버랩되는 것은 한국 드라마 '나의 아저씨'에서 나오는 이지안입니다. 고아로 병든 할머니를 부양하며 처절하게 소녀 가장으로써의 삶을 이어갑니다. 병든 할머니를 폭행하던 사채업자를 우발적으로 살해한 후에는 사채업자 아들에게 지속적인 학대와 협박을 받으며 살아가는 모습에서 부모가 자녀에게 좋은 양육 환경을 제공하지 못할 시 자녀들이 겪어야 할 아픔은 시대와 장소를 초월함을 보게 됩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우리 주변에는 이런 아이들이 넘쳐납니다.


IS는 서방의 이라크 침공 이후 서방의 개입에 맞서 이슬람 종교의 교리와 문화를 지키겠다는 원리 주의에서 시작되었습니다. 하지만 종교 교리에 맞지 않는 잔악한 행동과 교리를 이용한 폭력적인 탄압으로 반인륜적인 테러 집단이라는 시선을 받고 있습니다.  지금의 중동을 내전으로 분열시키고 IS나 탈레반을 성장시킨 것은 사실 미국을 중심으로 한 서구 유럽의 원죄가 큽니다. 그들의 탐욕과 이기적인 욕구가 수많은 난민을 발생시켰고 세계를 혼돈으로 몰아넣고 있는 것도 현실입니다. 어쩌면 먼저 반성하고 돌이켜 보아야 할 것은 IS에 가담한 자들보다 이들 서구권 정치인들일 수도 있습니다. 다만 아이들을 생각한다면 검토할 시간이 많지 않습니다.


IS가 몰락하면서 포로로 투항한 가족들 중 특히 어린아이들에 대한 처우 문제가 논쟁이 되고 있습니다. 아이들을 생각하면 마음이 아프지만 현실은 소설이나 드라마처럼 상황이 결코 단편적이지 않습니다. 아이는 부모의 영향을 필연적으로 받을 수밖에 없고 일부는 극단적인 세력의 꼬임에 넘어갈 확률도 높습니다. 정치 및 사회 문화를 포함한 다양한 사정을 고려하면 최선의 선택은 복잡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동물적 관점에서만 단순화해 보면 해결 방법은 의외로 간단해질 수도 있습니다. 동물학적으로 보면 포유류 가운데 대부분 종(種)이라고 할 수 있는 95%에서 암컷이 혼자 임신, 수유, 양육 부담을 짊어지고 있습니다. 인간을 포함한 5% 종만이 수컷이 자식 돌보기에 참여하는데 특히 대형유인원 중에서 인간 수컷만이 유일하게 육아에 참여하고 있다고 합니다. 인간도 동물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결혼을 하고 가정을 충실하게 유지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현상은 아닌 셈입니다. 여담이지만 반면 조류는 암수가 양육을 함께 하고, 어류는 포유류와는 반대로 수컷 혼자 자식을 돌보는 경우가 더 많다고 하니 남녀평등 관점에서 가장 진화한 종은 조류가 아닐까 합니다. 


양육의 대부분을 책임질 엄마들을 먼저 교육시키고 철저한 검증이 이루어지는 것이 선행 절차입니다. 만약 이들이 변하지 않는다면 안타깝지만 아이들을 기존 사회로 받아들이는 것은 너무 위험한 선택이 될 수 도 있습니다. 아이들의 장래를 어머니와 연결시키는 것은 도덕적으로 바람직하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다만 그녀들이 반성하지 않는다면 그 아이들에게는 더 큰 고통이 닥쳐올 것입니다.


사람이 먼저라는 문구가 떠오르는 세상입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은퇴하면 동네 아저씨? 이기적 유전자는 늙지 않는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