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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디지털전사 Feb 08. 2021

자본의 사육장 안에서 소리 없는 울부짖음과 최저 출산율

혹시 개 사육장에 가보신 적 있으신지요? 고기로 팔려갈 운명인 개들은 철망 속에서 살아가는데 아래가 뚫려 있어 배설물이 그대로 아래로 흘러갑니다. 작은 몸도 편히 누일 수 없는 철장 속에서 평생을 살아가는 개들은 발은 갈라지고 기형이 됩니다. 시간이 흘러 감에 따라 걷지 못할 정도로 뼈는 기형화 되고 평생 불구로 살아가게 됩니다. 사방을 둘러싼 날카로운 철사로 인해 생긴 상처는 곪고 살을 썩게 합니다. 죽어 가고 있지만 저항할 수 없는 개들은 그저 컹컹 거리며 자신들을 사육하는 인간을 애처롭게 쳐다볼 뿐입니다.


어떤 의미에서 현대 자본주의 사회는 거대한 개 사육장과 같습니다. 가난한 자들은 자본이라는 굴레와 사회적 제도라는 감옥에 갇혀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 인간은 자신도 모르게 노예의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자신의 목에 걸린 쇠사슬의 두께와 번쩍거림을 비교하며 누가 가장 멋진 노예인가 언쟁을 벌이는 노예들의 모습이 바로 우리들의 모습일지도 모릅니다. 만석꾼의 머슴과 천석꾼의 머슴은 현대 사회에서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직장인으로 바뀌었을 뿐입니다. 


시대를 불문하고 평범한 서민층은 귀족(양반)에게는 그저 불특정 군집의 하인이나 종놈에 불과했습니다. 분류와 차별은 인간을 포함한 동물의 본성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적어도 당하는 사람에게는 분노가 치밀어야 하는 것이 정상입니다. 그럼에도 부당한 차별에 저항하거나 현실을 바꾸어 보려고 했던 시도는 극히 소수에 불과하며 대부분은 운명이라 생각하며 참고 살아갑니다. 오히려 후손에게 가난의 대물림을 해주며 가족의 부양까지 책임지게 만들게 되고 이로 인해 불합리한 사회 질서는 더욱 고착화됩니다. 


그렇다면 왜 우리는 저항하지 못하는 것일까요? 답은 간단합니다. 정부로 대변되는 권력의 크기와 전통에 순응하기를 기대하는 사회의 압박은 개인이 감당하기에는 너무나 거대하기 때문입니다. 사소한 법 위반에도 감옥에 보낼 수 있는 공권력 앞에서 모든 것을 잃어버릴지도 모를 가족의 눈망울은 가장 강력한 투사마저도 소심한 강아지로 만들 힘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개돼지가 아니고 인간이기에 차별에 저항하고 더 나은 사회를 만들어가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현대 국가에서 인간으로서 최소한의 삶을 살아갈 지원은 복지라는 이름으로 주어지며 권리로 여겨지고 있습니다. 소수지만 저항했던 사람들에 의해서 많은 다수는 혜택을 누리고 있습니다. 선진국으로 간다는 것은 단순히 경제가 성장한다는 차원을 넘어 다수의 시민이 불합리한 차별을 인식하고 부당함에 공감하는 시민 의식이 깨어나가는 과정입니다. 과거에 그냥 넘어갈 수 있었던 갑질도 이제는 공론화되고 시민들은 저항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위로 올라갈 수 있는 사다리를 걷어 차는 제도적 차별은 보이지 않게 두터운 벽으로 개인을 감싸고 있습니다. 적어도 노력하는 사람들이 올라갈 수 있도록 지원해 주는 정책은 계속 만들어져야 합니다.


세계 최저 수준의 대한민국의 출산율은 청년층의 소리 없는 울부짖음이 아닐까요? 정치적 옳고 그름을 떠나 이제는 근본적인 분노에 대한 고민과 정책적 대안이 필요한 시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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