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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디지털전사 Jul 28. 2022

동네 악당 뺑덕어멈이 납신다: 불신과 뻔뻔함의 공존

인간은 기본적으로 남과의 비교를 통해 자신의 가치를 정하고자 하는 습성이 있다. 내가 이만큼 고생하고 노력하는데 타인이 노력도 없이 더 좋은 결과를 차지한다는 생각이 들 때는 능력이 부족한 자신에게 분노하기도 한다. 모두가 잘 사는 유토피아는 이상일뿐 역사에서 차별과 계급 갈등은 언제나 파국을 맞고 새로운 씨앗을 잉태하고를 반복한다.


그런데 좋은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스스로를 탓하는 반면 사이코패스(소시오패스)  탓을 하며 약탈과 뻔뻔하기까지 한다. 예전에도 마을마다 이런 악당이 존재했는데 우리  고전 소설에 묘사된  인물을 생각해 본다. 흥부전의 '꾀쇠아비' 심청전의 '뺑덕어멈' 대표적인 인물이다. 전자의 악행을 예로 들어 보자. 흥부가 배고파 우는 아이들을 위해 대신 매를 맞는  '매품'이라는 부업을 하기로 하고 선도금으로 닷냥을 받는다.  돈으로 쌀을 사다가 아궁이에 오랜만에 불을 지펴 밥을 지어 자식들을 먹이는데 이웃에 사는 꾀쇠아비가 흥부 집의 굴뚝에서 연기 나는 것을 수상히 여겨 울타리에 귀를 대고 엿들어 매품  사실을 탐지한다. 그리고 먼저 관가에 가서 흥부의 매품을 가로채버린다.  들판에서 젊은 남녀의 정사 장면을 발견하고 돈을 갈취하는  한마디로 인간 말종이다.  


뺑덕어멈도 워낙 악행이 다양한데 심청전에 나열된 예만 보더라도 '양식 주고   먹기', ' 푸다가  잡기', '머슴 잡고 어릿광 피우기', '젊은  보면 히죽거리기', '  총각  사주기' 다양하다. 보수적이고 여성에 엄격했던 조선의 관점이 아닌 현대인의 관점에서 보면 애교(?)라고  수도 있다. 하지만 효녀 심청의 공양미 삼백석을 횡령하는 것도 모자라 심봉사를 알거지로 내다 버리고 뻉소니 쳤으니 인성 파탄자임은 부인하기 힘들다.


선량한 대다수의 시민들의 목소리보다 몇몇 악인들의 목소리가 커지게 되면 사회라는 공동체에는 큰 구멍이 생기게 된다. 죽음을 거부하고 영양분만 주어진다면 불멸을 살아갈 수 있는 이기적 암세포가 결국 육신에 죽음을 불러오듯이 악인은 공동체의 암적 존재이다.


전국시대의 혼란기에 자공이 공자에게 정치의 덕을 물었다. 공자가 대답하길 '식량을 풍족하게 하고 군사를 튼튼히 하며 백성의 신뢰를 얻어야 한다'라고 했다. 모든 것을 달성하기 어렵다면 포기의 순위를 물으니 첫째가 국방이요 둘째가 식량이라고 했다. 그러나 어떤 경우에든 정치인은 신뢰만은 잃어서는 안 된다고 하였다.


신뢰를 잃고 독주하는 정치는 함께 살아가야 할 공동체의 암이 된다. 다름은 틀림이 아닐 텐데 자신만이 옳다고 고집하며 독주를 일삼는 꾀쇠아비와 뻉덕어멈의 이야기가 적어도 현대의 대한민국 정치에서는 말도 안 되는 웃음거리로 여겨지는 날이 오기를.. 정부를 비판하면 잡혀가지는 않을까 걱정하던 서민들의 이야기가 그저 아련한 추억의 페이지에서만 머물기를... 자녀들이 살아갈 세상에는 이런 모든 걱정이 농담에 그치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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