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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디지털전사 Mar 19. 2021

미얀마 민주주의: 배후에 숨은 독수리와 팬더곰의 암투

근래 자주 등장하는 뉴스가 미얀마의 민주화 항쟁입니다. 마치 1980년 광주 민주화 운동의 데자뷔를 보는 듯한 느낌이라 큰 안타까움이 듭니다. 군부의 쿠데타로 빼앗긴 민주주의를 지키려는 시민들의 자발적 열망을 폭력으로 짓밟는 경찰과 군인의 행동 패턴까지 모든 것이 판박이입니다. 


그런데 단편적인 현상 외에 그 뒤에 숨겨진 배후도 생각해 볼 필요가 있지 않나 싶습니다. 왜 우리는 아프리카 말리에서 지난 8월에 발생했던 군부 쿠데타 소식은 거의 알지 못하는 반면 미얀마의 쿠데타 소식은 뉴스에 자주 등장하는 것일까요? 단순히 아프리카와 아시아의 차이일 뿐 일지 궁금합니다. 


여기에는 미국과 중국의 세력 다툼이 존재합니다. '투기디데스의 함정'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고대 그리스의 역사가 투키디데스가 펠로폰네소스 전쟁사에서 역설한 것으로, 신흥 강국이 부상하면 기존의 강대국이 견제하는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분쟁이 발생한다는 것입니다. 수천 년 전 그리스의 아테네와 스파르타가 맞붙었던 역사는 현재도 곳곳에서 그대로 재현되고 있습니다. 


미국과 중국도 이 함정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냥 직접 싸우면 될 텐데 모두 핵무기를 보유한 강대국이다 보니 만만한 약소국가들을 대리로 내세워 서로 힘겨루기를 하고 있습니다. 그저 힘이 없어 당하는 국가의 국민들만 불쌍할 따름입니다.  피상적으로만 보면 미얀마 군부 세력을 암묵적으로 지지하고 있는 중국과 이전 아웅산 수치 정권을 아주 조금 더 지지하는 미국은 보이지 않는 대리전을 치르고 있습니다. 선악의 구별도 없이 자국의 이해 득실만 따지는 강대국의 셈법은 헛된 말잔치와 효과 없는 경제 제재로 수많은 민중이 죽어가는 지옥 같은 상황을 그저 방관만 하게 만듭니다. 군부 세력이 로비스트를 고용해 자신들은 중국의 허수아비가 되어가는 전정권이 싫어 쿠데타를 일으켰다는 언론 플레이를 하는 것은 미국에서 인정받기 위한 몸부림이며 미국의 암묵적 승인을 얻어 내는 순간 미얀마 관련 뉴스는 소리 소문 없이 어느새 사라져 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고래 싸움에서 새우등 터진다는 우리 속담처럼 독수리와 팬더곰의 싸움은 주변에 큰 민폐를 끼치고 있습니다. 이 와중에 인종 혐오가 넘쳐나는 것이 가장 큰 부작용의 하나입니다. 코로나 발생으로 인한 중국인 혐오라고 하지만 실상은 패권국으로 부상하는 중국에 대한 두려움의 반영입니다. 코로나 19라는 방아쇠가 촉발시켰을 뿐 고의성을 감춘 정권의 부추김과 지식인들의 방관 아래 아시아에 대한 미국 및 유럽 시민들의 인류애라는 감정은 점점 메말라 갈 것입니다. 


개인적으로 김치와 한복을 자기 것이라 주장하는 무도한 중국의 태도는 필자에게 큰 공분을 자아냅니다. 말도 안 되는 억지를 부리며 자신만의 이익을 관철하기 위해 외교적 결례마저 서슴지 않는 중국 정부만 보면 화가 치밀어 오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른 강대국의 이익을 위해 우리의 이익을 희생하고 대신 피 흘리는 선택을 한다면 매우 어리석을 것입니다.


국가와 민족으로 나뉘어 싸우던 유럽인들도 유럽연합이라는 이름으로 뭉친 이유는 세계 질서의 큰 재편 속에 과거와 같은 방식으로 거대한 슈퍼 파워를 가진 미국에 맞설 수 없음을 체감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한국과 중국 그리고 일본은 역사적으로 상호 원한이 많습니다. 그러나 서로 뭉치고 협력하면서 역내 긴장을 낮추고 장기적으로는 3개국이 함께 미국의 달러 패권을 대체할 수 있을만한 아세안의 기축 통화를 구축하는 방법을 찾는 길도 좋겠지요.


미얀마 국민의 눈물이 흩뿌려지고 군인의 총부리에 무고한 시민들이 희생당하는 현실... 배후에 숨은 그 누군가의 음흉한 거래로 그들의 눈물이 헛되이 사라지지 않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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