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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디지털전사 May 31. 2021

입시 지옥을 여는 문에서 세상의 진실까지-수학이 궁금해

인간을 포함한 동물에게 가장 중요한 본능은 생존 욕구입니다. 인문학이라 일컬어지는 인간의 심리와 행동, 욕구를 대상으로 하는 심리학, 경영학, 교육학 등의 목표는 인간 행동을 이해하고 본질을 찾고자 하는 과정일 것입니다. 하지만 죽음이라는 숙명을 피할 수 없는 우리는 자손을 통해 개체의 유전자를 보존하고 나아가 자녀의 성공을 자신의 성공에 동일시하기도 합니다. 굳이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Selfish gene)를 읽지 않더라도 우리는 자신의 유전자를 지닌 생명체에게 인종과 국적을 떠나 DNA에 각인된 명령에 따라 단순하게 '내리사랑'을 실천하는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자녀의 성공을 측정하는 지표 중 하나는 공부를 얼마나 잘하느냐입니다. 그저 하나의 지표에 불과하지만 많은 이들이 공부가 곧 성공이며 이것이 자녀의 행복과도 연계되지 않을까 하는 착각을 하고는 합니다. 인과 관계가 분명하다고는 할 수 없지만 어쨌든 경험상으로 보면 공부를 잘하는 아이들이 사회에서 고생을 덜 하며 살 확률이 높아지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가 행복하지 않다면 아무리 공부를 잘해 성적이 상위권이라도 자녀에게는 완전히 무의미한 행위의 반복일 뿐입니다. 공부의 끝에는 행복의 파랑새가 있다고 믿고 싶겠지만 중년의 초입에 들어선 필자의 개인적 관점에서 보면 끝에는 아무것도 없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운이 좋다면 좋은 직장, 좋은 경력을 쌓는데 도움이 되겠지만 그저 그뿐입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공부를 해야 합니다. 어떤 일이 특정 인물의 주도로 뜻밖에 잘 해결이 될 때 사람들은 '역시 배운 사람'이라고 농담 삼아 말하고는 합니다. 배웠다는 것은 사물의 이치를 깨달아 복잡한 가지를 쳐내고 문제의 근본 원인을 빨리 찾아 내 바라볼 수 있다는 의미이기도 할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 많은 지식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분명 큰 도움이 됩니다. 특히 수학은 가장 어려운 과목이기도 하지만 문제 해결에 가장 핵심적인 기여를 하는 과목입니다. 


필자는 개인적으로 우리 인간은 수학적인 사고 체계를 하기에 적합하지 않은 뇌 구조를 가지고 있다는 생각을 합니다. 이것은 마치 왜 동물은 다리로 뜀뛰기를 하는가와 동일한 사고입니다. 사실 달리기를 하는 데 있어 가장 효율적인 방식은 수레바퀴입니다. 자동차에 바퀴가 아닌 다리가 달려 있다면 그만큼 빠른 속도를 내기에는 무리가 있을 것입니다. 생물학적으로 또는 기계적으로 동물의 복잡한 신경 구조에 대한 학설이 있겠지만 수학적으로만 단순화시켜 보면 세상은 훨씬 간단해집니다. 컴퓨터도 마찬가지로 수학적 계산의 속도에서 인간은 경쟁이 불가능합니다. 복잡하게만 보이는 질서를 이해 가능하게 만들어 주는 수학이라는 언어는 세상을 이해하는 데 있어 어쩌면 가장 필요한 과목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물리학자들은 세상을 수학으로 설명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가장 작은 원자의 세계에서 가장 큰 우주의 경계면까지 세상은 힘의 원리로 설명됩니다. 그 힘의 원리를 찾아가는 과정에서 원자 모델이 필요한 부분에서 원자 궤도가 나오고 핵이 필요한 부분에서는 핵이 발견됩니다. 더 작은 세계 혹은 더 큰 세계를 보기 위해 더 많은 에너지가 필요하고 이론 물리학자들이 수학적으로 예측했던 모형이 더 많은 관측을 가능하게 하는 기초 과학이 발달함에 따라 지속적으로 확인되어 가는 과정입니다. 어쩌면 신의 손길이라 일컬어지는 세상의 근원은 이미 가상의 수학적 이론 속에 숨어 있을지도 모릅니다. 


함께 공부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 자녀 옆에서 끙끙 거리며 수학 문제를 풀다가 최근 들어 수학에 대해 뜻박의 관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학창 시절 그렇게 수학을 싫어했고 문제집만 보면 몇 분 만안에 잠이 들고는 했기에 신기하기도 합니다.(결과적으로 수학을 정말 못했습니다ㅠ) 중년 갱년기의 증상 중 하나가 드라마를 보다 자신도 모르게 눈물을 흘리는 모습을 발견할 때라고 하는데 이런 뜬금없는 변화는 호르몬의 변화 때문일까요..


그러나 세상의 가장 작은 공간을 탐구하는 양자 역학 속에서 보여주는 시간과 공간도 절대적인 형태가 아닌 그저 하나의 관측 현상에 불과할 뿐이라는 진실은 우리가 사는 거대한 우주를 설명하는 원리이기도 합니다. 이는 사물의 본질을 알고자 하는 수많은 종교와 철학의 근원과도 연계되는 문제입니다. 


예를 들어 불교에서는 사물의 본질을 묘사할 때 '색즉시공 공즉시색(色卽是空空卽是色)'이라고 표현합니다. 이는 '반야심경'에서 물질과 공 또는 공과 물질의 관계를 표현한 불교교리입니다. 인도의 산스크리트어를 중국어로 번역할 때 의역한 것이라고 하지만 현대 과학이 설명하는 표준 양자 모델의 원리와 비슷한 면이 있습니다. 


'이 세상에 있어 물질적 현상에는 실체가 없는 것이며, 실체가 없기 때문에 바로 물질적 현상이 있게 되는 것이다. 실체가 없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물질적 현상을 떠나 있지는 않다. 또, 물질적 현상은 실체가 없는 것으로부터 떠나서 물질적 현상인 것이 아니다. 이리하여 물질적 현상이란 실체가 없는 것이다. 대개 실체가 없다는 것은 물질적 현상인 것이다.' [출처: 한국민족문화 대백과사전]


얼마나 멋진 말인지요. 티베트 불교의 '사자의 서'에 보면 죽음 후의 세상에서 망자가 경험하게 되는 모든 것이 결국은 그저 허상에 불과하며 이를 깨닫는 자는 바로 열반에 이른다고 하는데 몇몇 과학자들은 바로 열반에 이를지도 모르겠습니다. 천국이니 열반이니 하는 논쟁하는 것은 수학의 세계에서는 무의미합니다. 어떤 종교를 믿고 있는지의 신념과는 관계없이 진실을 탐구하는 자세 그 자체로 인간은 신의 영역에 들어갈 수 있을 것이라고 필자는 생각합니다. 


수학의 연결 고리를 보다 보면 기하학에서 대수학 그리고 위상 수학에 이르기까지 일관되게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이 단순히 3차원의 세상이 아닐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의심을 불러일으킵니다. 또한 원에서 시작된 삼각 함수가 확장되어 열역학 및 파동 방정식에 이르기까지 단순화된 형태로 응용되는 과정도 흥미롭습니다. 추후 시간이 나는 대로 순수 아마추어의 관점에서 필자가 개인적으로 관심을 가지게 된 수학적 원리들 위주로 주관적인(객관적 내용 아닙니다^^) 해석을 정리해 보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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