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디지털전사 Aug 31. 2021

인류는 진화한다. 일본인과 중국인 그리고 한국인

오랜만에 사우디아라비아의 바이어에게서 제품 문의가 왔습니다. 몇 년간 연락이 없다가 뜬금없이 메신저를 통해 현지에서 잘 팔리는 다양한 브랜드 제품 사진들만 잔뜩 올리고는 견적을 달라고 합니다. 국내 생산 제품도 아니지만 고생해서 공급가를 알려주면 역시나 아무 회신도 없습니다. 여러 거래처를 비교해서 가장 경쟁력 있는 공급처를 찾는 것은 당연하지만 필요할 때만 연락하여 정보만 받고 회신도 하지 않을 때 섭섭한 마음이 드는 것도 사실입니다.


인류는 진화하고 있습니다. 아프리카에서 발원한 오스트랄로피테쿠스에서 도구를 만들어 쓴 인간인 호모 하빌리스를 거쳐 직립 인간인 호모 에렉투스 그리고 지혜를 가진 현생 인류인 호모 사피엔스로 진화해 왔다고 합니다. 호모 사피엔스로 하나로 뭉친 인류는 단일 종이면서도 전 세계 국가별로 다른 민족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필자가 경험해 본 사례로 간단히 하나씩 소개해 보고자 합니다.(지극히 주관적이며 단편적 경험에 의거한 판단입니다.)


일단 우리의 영원한 가깝고도 먼 이웃 일본을 살펴봅니다. 일본의 국민성을 한마디로 정의하면 야마토
(大和) 사상이 아닐까 합니다. 즉 집단주의 혹은 전체주의를 뜻합니다. 와(和)는 화목하다는 한자의 일본식 버전입니다. 폐쇄적인 일본의 와사상은 메이지유신을 거치면서 노동이 곧 정신 수양이며 자기완성이라는 철학과 결합하며 일본인은 정직하고 성실하다는 이미지를 세계에 심어 주었습니다. 이를 바탕으로 1980년대 미국에 이은 2위 경제 대국이 되었습니다.


집단주의 사상은 군사적으로는 거함 거포의 상징인 야마토 전함으로 대표됩니다. 야마토는 일본을 상징하는 전함으로 당시 세계 최대 전함이었고 아직도 일본인의 가슴에 군국주의 우상으로 남아 있습니다. 그러나 야마토는 덩치에 걸맞은 활약도 못하다 결국 최후의 자살 임무도 완수하지 못하고 항해 중 침몰하는 최후를 맞으며 일본 제국의 몰락과 함께 했으니 웃으면 안 되겠지만 웃음이 나네요. 야마토 전함과 일본의 대동아 사상 관련해서는 나중에 따로 글을 써 보겠습니다...


일본인은 혼네(속마음)와 다테마에(겉 표현)가 다른 민족으로 앞에서는 웃지만 뒤에서는 다른 말을 하기 때문에 비즈니스가 쉽지 않습니다. 지옥이란 타인의 시선이라고 한 샤르트르의 희곡에 국가명을 표기한다면 일본을 넣어도 괜찮지 않을까 싶게 일본인은 타인의 시선에 절대적으로 순응하며 사회의 기대에 부합하지 못한 사람들에게는 가혹합니다. 어려서부터 남에게 폐를 끼지치 않도록 교육받으며 민폐를 끼지는 사람들은 왕따를 통해 배척하는 문화가 자연스럽습니다. 집단의 결속을 해치는 내부 배신을 꺼려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타민족과 문화에는 매우 배타적인 방식으로 반대로 적용되어 침략과 배척을 반복하는 모습을 보이고는 합니다. 경쟁에서 압도적 우위를 차지하던 경제가 한국에 서서히 밀리면서 일본의 혐한도 함께 증가하는 것이 그 사례입니다. 올 하반기에는 도쿄 올림픽 실패로 인한 분노가 책임져야 할 자국의 극우 정치인들에 향하지 않고 엉뚱하게도 우리에게 향하는 사례가 생기지 않길 바라봅니다. 


일본과 비슷하면서도 대척점에 서 있는 국가는 중국입니다. 중국인의 중심 사상은 중화입니다. 즉 자국 중심주의입니다. 일본의 야마토 사상이 단결을 강조한다면 중국의 중화사상(中華思想, Sinocentrism)은 단결을 강조하면서도 핵심에는 한족 이기주의가 자리 잡고 있습니다. 남에게 민폐를 끼치더라도 자기와 가족의 안전을 보장받을 수 있다면 타인에게 뻔뻔해질 수 있습니다. 중화사상 아래서 단결을 위해서는 중앙 정부가 강력한 공권력으로 민중을 억누르지 않으면 도처에서 분출하는 불만을 잠재우며 정책을 시행하는 것이 쉽지 않을 것입니다. 


이런 맥락에서 바라보면 중국의 정책들을 이해 가능합니다. 홍콩 민주화 운동에 대한 탄압도 그렇고 남중국해 영해 주장 및 최근의 인도와의 영토 분쟁도 모두 같은 배경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를 비롯한 다른 국가에는 손해를 용납하지 못하는 분노조절 장애를 가진 것 같이 보일지라도 중국의 정책은 흔들림 없는 큰 흐름입니다. 대국 굴기로 가는 와중에 현실화되고 있는 경제와 외교 정책 사이에서 우리는 신중하게 그들의 내면을 이해하고 접근해야 할 것입니다.

 

예를 들면 현재 탈레반이 재집권한 아프가니스탄을 바라보는 미국과 유럽의 시각 대비 중국은 유화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습니다. 혹자는 신장 위구르 지방의 독립운동을 탈레반이 지원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이라고 하는데 맞는 의견이기도 하지만 더 크게 보면 일부분일 뿐입니다. 당나라 초기 고구려 유민 출신인 고선지 장군이 와칸 회랑을 넘어 토번 국을 정벌한 이후 지금의 파키스탄에 이르는 서역까지 복종시킨 바 있습니다. 고대 기록을 근거로 남중국해까지 자국 영해라고 주장하는 현 중국의 정치인들에게 아프가니스탄 위기는 단순히 테러리스트 차단이 아닌 영향력을 회복할 수 있는 기회로 보고 있지 않을까 생각이 드네요. 


세상은 복잡하지만 최대한 단순하게 바라보면 결국 국민들의 숨어있는 내면의 욕구에 따라 큰 방향이 정해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단군의 건국 신화를 통해 홍익인간이라는 이타주의를 표방한 민족입니다. 비록 이웃인 중국과 일본이 작은 마음으로 서로 아웅다웅하더라도 그들을 포용하며 다 함께 잘 살아갈 수 있는 비전을 제시하는 선진국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