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끔찍한 일이 될 거야 Darling 어른이 된다는 상상만으로도 내겐 숨이 막혀버릴 것 같은 고통일 거야.' 90년대 중반 가요인 아스피린에 나온 노래 가사다. 어른이 된다는 건 당시 대학생이던 나에겐 고통보다는 설렘과 두려움이 반쯤 섞인 감정이었던 것 같다. 사회생활을 경험해 보지 못한 학생이 어른이 되는 과정은 결코 순탄치 않다. 인간관계에서 누군가에게 상처 받고 세상 일이 내 마음대로 흘러가지 않는다는 것을 수많은 좌절 끝에 어렴풋이 알게 될 쯤에는 이미 풋풋하던 청년은 사라지고 배 튀어나온 중년의 아저씨가 거울 속에서 자신을 물끄러미 들여다보고 있다.
그러나 어른이 된다는 것은 희망과 절망이 교차되는 인생에서 단순히 나이만 먹어 가며 죽음을 향해 가는 여정을 허무하게 방황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인생은 삶을 살아가면서 자녀로, 학생으로, 남편으로, 부모로 그리고 가면을 바꿔가며 다른 많은 역할을 떠맡아야 하는 연극과 같다. 연극의 배우는 무대에서 충실히 주어진 역할을 수행할 때 관객의 박수를 받고 무대를 떠나게 된다. 설령 손뼉 치는 관객이 없으면 어떤가. 무대의 조명이 꺼진 순간 자신이 만족하면 그걸로 충분하다. 각자의 무대에서 모두가 주연배우인 삶이라는 무대에서 지금 나는 어떤 감정과 방식으로 삶을 살아가고 있는가?
어른이 되기 전에는 자신을 비추는 조명만을 신경 썼다면 어른이 되면 나의 주변이 더 환하게 밝아졌으면 하고 바라게 된다. 퇴근하여 집에 들어가 보니 중학생인 아들이 잠깐 할 애기가 있다고 한다. 선생님에게서 학생회장 출마를 권유받으며 추천서를 받았다고 어찌하면 좋을지 넌지시 조언을 구한다. '음.. 그렇군.....' 전교 회장은커녕 학급 반장도 해 본 적 없는 내가 무슨 조언을 할지 당황스럽다. 어른이 되어 가는 과정 속에서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도전해 보는 것은 좋은 경험이다. 마주치는 기회 속에서 선택할까 말까 망설일 때 그냥 도전해 보는 것 또한 정답이 없는 인생에서 후회를 방지하는 방법이라며 아들의 등을 토닥여 준다. '고슴도치도 자기 자식은 예뻐 보인다'는 속담이 있기는 하지만 공부 잘하는 모범생에 합기도 3단, 기타 연주도 수준급인 데다 키 180cm인 훈훈한 외모를 가진 자녀가 예뻐 보이는 것은 고통스러운 삶의 투쟁을 이어가는 어른이 된 부모가 가질 수 있는 삶의 작은 기쁨이다. 어떤 자료에서 자녀 일인당 양육에 지출해야 하는 비용을 금액으로 환산하면 약 3억 원가량이 된다고 한다. 그러나 자녀를 키우면서 경험했던 소중한 추억을 돈으로 환산하면 부모는 이미 몇 배로 비용을 돌려받은 셈이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존재의 가치를 찾아가는 과정이다. 니체는 자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서 신은 죽었다며 허무와 초극 주의를 설파했지만 어쩌면 그의 실체적 삶은 어린아이와 같이 의지할 존재를 찾아 헤매는 여정이었을지도 모른다. '헛되고 헛되며 모든 것이 헛되다'는 잠언의 문구처럼 세상 아래 모든 것은 무의미한 반복이며 살아 있어도 아무런 보람도 없다는 절망이 때 때로 우리의 삶을 짓누를 때 나는 생각한다. 나만을 비추는 조명은 나이가 들면서 희미해지는 것이 당연하고 다만 그 찬란한 빛줄기가 내 주변의 사람들을 비추는 것을 한 순간이라도 느낄 수 있을 때 나의 인생은 허무를 극복한 행복함이 있었던 삶이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