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장지 과다 사용은 변기 막힘의 원인이 된다. 삶에 지혜를 주는 명언도 아니지만 화장실 문 앞에 한 자리 차지하고 있어 눈치껏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럼에도 2022년 학생 회장 출마를 선언한 아들의 공약 중에 "화장실 휴지 상시 비치"가 있는 것을 보면 학교에서는 아직도 화장지를 마음껏 사용할 수 있는 여유가 없나 보다 싶어 마음이 아프다.
요즘은 어딜 가도 두루마리 화장지가 비치되어 있어 사라진 듯 하지만 예전에는 화장지를 통째로 훔쳐 가던 사례들을 실제로 종종 목격하고는 했었다. 사회적으로 비난의 대상인 범죄이지만 가난한 저소득층 학생에게는 화장지 한 롤에 양심을 파는 것이 편의점에서 삼각 김밥 한 개를 사 먹을 비용을 아낄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니 무작정 비난만 할 수도 없다. 가난은 임금님도 구제하지 못한다는 합리화로 우리는 얼마나 많은 이들의 고통을 무시하고 살아가는가.
화장지의 과도한 사용은 단순히 배출구를 막히게 할 뿐이지만 삶에서 과도한 감정의 배출은 삶 자체를 좀 먹게 된다. 특히 사랑이란 감정의 돌파구가 막히게 될 때 집착이 생기고 우울증과 질투를 넘어 스토킹으로 발전하여 상대방을 해치게 되는 사례를 최근 뉴스에서 계속 접하고 있다. 학자들이 분류한 에로스니 플라토닉이니 하는 사랑의 결과일 뿐 결국은 자신의 만족을 위한 나르시시즘에서 출발하는 것이 아닐까.
자신의 사랑이 배신당했다고 생각된다면 지독한 개인의 이기적인 욕심으로 파국에 이르게 된다. 로미오와 줄리엣이 첫눈에 반해 로미오가 줄리엣 집 담벼락을 넘어 창문 아래 사랑의 세레나데를 부르고(타인 주거 침입) 죽음에 이르기까지(기만과 명예훼손죄 성립) 단 며칠 만에 엄격하고 보수적인 사회적 도덕관념을 깨부수고 이룬 사랑은 아름답다. 하지만 고전에서 보는 사랑은 그저 사랑이 성숙하는 과정에서 가장 아름다운 순간들일뿐 마무리로 '그들은 행복하게 살았습니다'로 끝내기에는 찬란했던 사랑의 불꽃이 타 오르고 재가 된 이후의 삶이 순탄치 만은 아닌 것을 세파에 찌든 어른들은 알고 있다.
감정의 과도한 배출은 자제해야 한다. 화려하게 타오른 목재는 그만큼 빨리 재가 되어 불꽃이 사그라들기 쉽다. 삶에서 찬란했던 순간들이 순식간에 사라지기 전에 그 소중한 순간을 음미하기 위해 천천히 온기를 나누어줄 참숯을 만들어 본다. 기억, 사진 혹은 동영상으로 보관된 추억이라는 숯은 삶에서 마주하는 냉혹한 추위를 누그러뜨리고 의미를 되새김질하게 하는 힘이 있다. 아... 저번 주 실수로 포맷해버린 하드 디스크에 보관된 사진들을 빨리 복구해야겠다.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