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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디지털전사 Aug 25. 2022

어른이면서 아이가 된 당신: 두려움에 갇혀있는가?

모멸감이란 무엇인가. 회사를 다닐 때 가장 힘든 감정이 존중받지 못한다는 감정이었다. 업무와 무관한 개인감정을 화풀이하듯 분출하던 상사의 횡포는 직장생활의 가장 큰 스트레스다. '네가 착해서, 호구라서 당한 거다'라거나 '너는 왜 당당하게 맞서지 않느냐'는 조언은 도움이 되지 않고 결국 매번 억울한 상황에도 그냥 넘어가게 된다.


눈을 마주치지 못하고 땅만 보고 걷게 되는 자신감 상실로 힘들었던 시기도 있었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 보니 약자에게 무의미한 감정을 배설하던 그들의 심리적 서글픔을 이해하게 된다.

 

다중 지능 이론에 따르면 자기 성찰이 되지 않으면 자신의 기분과 정서상태를 구별해내지 못해 자신과 관련된 문제를 잘 파악하지 못한다고 한다. 결과적으로 지속적으로 자기반성하며 살아야 할 삶에서 구체적인 목표를 추구하지 못하는 것이다. 즉 심리적 감옥 안에서 두려움에 갇힌 죄수가 되는 것이 아닐까. 나를 힘들게 했던 그들도 모두 우울하고 칙칙한 감옥을 탈옥하지 못한 죄수였을 뿐이다.


김춘수 시인의 '꽃'의 시작 문구인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에서 탈옥에 대한 힌트가 있다. 생텍쥐베리의 소설 속 어린 왕자에 나오는 사막 여우의 가르침 '가장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아'라는 말처럼 소중한 존재의 특별함은 의식의 자각을 통해 깨닫는다. 


두려움의 감옥에서 탈출하기 위한 방법은 자신보다 그저 누군가를 어떤 존재를 더 사랑하며 특별히 여기는 것이 해결책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버드 의대의 실험에 의하면 생각만으로 뇌의 해부학적 구조를 바꿀 수 있다고 한다. 우리가 무언가를 더 생각하고 좋아한다면 뇌 속의 신경 세포 연결인 시냅스가 강화되며 기억에 대한 감정들, 두려움과 애착 등에 대한 새로운 변화가 생긴다. 


무관심했던 사람의 모습은 쉽게 잊어버리고 첫사랑의 얼굴은 잘 지워지지 않는 것처럼 감정은 선택적이다. 윤리 시간에 배웠던 불교의 깨달음을 얻기 위한 수행 과정인 팔정도(의  바른 생각과 행동이 결국은 뇌를 변화시켜 두려움의 감옥에서 탈출하기 위한 방법일 수도 있겠구나. 성경에서도 사랑은 진정한 신앙의 궁극적인 해답이다.


유전자에 각인된 절대명령은 나의 생존이다. 존재의 유지야 말로 모든 생명의 고귀한 사명이다. 그럼에도 삶을 살아가면서 인생의 의미가 고작 이것뿐인가 하는 허무의 늪에서 헤매기도 한다. 자신을 버리는 것이 무아이다. 나의 실체가 없는 무아지경의 경지를 명상을 통해 체험할 수 있다고 한다(하지만 왜 나는 명상을 하면 졸음만 오는 것일까..) 


뇌 속에 존재하는 작은 기관인 '송과체'는 주로 멜라토닌 분비를 담당한다. 멜라토닌은 동물이 밤낮을 구분하며 살 수 있도록 생체 시계의 역할을 담당하기에 불면증 치료제로도 쓰인다. 대만 대학교의 실험 논문에 의하면 명상 수행 중에 송과체가 활성화가 이루어지는 것을 자기 공명 영상을 통해 관찰했다고 하니 실제로 생각의 변화가 뇌의 기능 변화, 나아가 삶의 방향을 변화시켜 줄 수도 있겠다.


양자역학에서 하이덴 베르크의 고양이는 살아있지도 죽어있지도 않은 상태인 것처럼 의식의 자각은 존재하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특정되지 않은 상태이다. 최신 물리학에서 설명하는 것처럼 물질적인 세상이 미시적 세계에서는 확률적 분포로만 존재한다면 사랑 또한 대상에 따라 확신이 예측 불가할 것이다. 의식은 그렇게 자신만이 결정하고 알 수 있는 영역이 된다. 각자의 평행 우주에서 우리는 독립적인 어른이 되기 위해 끊임없이 성장을 고민하는 어린 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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