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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디지털전사 May 06. 2022

평행 세계에서의 나는 신사일까? 상대적이며 절대적인

완전 막장이지만 큰 인기를 끌었던 '신사와 아가씨' 드라마가 있었다. 나는 이런 드라마를 볼 때 내용도 답답하고 등장인물들의 행동에 화도 나는데 와이프는 그저 재미있다고 한다. 드라마 속에서 이상적인 남자 주인공은 대부분 재벌 3세 혹은 못해도 중견 기업의 후계인이다. 훤칠한 외모에 쿨한 성격, 타인에게는 까칠하지만 사랑하는 사람에게만은 무척 자상한 신사다. 신사는 원래 명나라의 관료 계층을 뜻하는 한자지만 유럽을 극렬히 짝사랑했던 메이지 시대 일본이 영국의 중산층 계급이었던 젠틀맨(gentleman)을 번역하면서 우리에게도 알려진 단어다. 실상 영국의 젠틀맨은 허영심 가득한 졸부가 많았지만 타인의 시선을 의식한 에티켓(ettique)이 필수였기에 예의 바르고 정의감 넘치는 이미지로 의미가 강화되었다. 


중년의 사람들에게 막장 드라마가 인기가 있다면 MZ세대가 좋아하는 웹툰과 소설은 주로 판타지 세계로의 회귀를 다룬다. 현실에서 은둔형 외톨이였던 주인공이 사고로 이 세계로 전이되고 타고날 때부터의 천재적 재능으로 넘사벽급의 통쾌함을 선사한다. 초기에는 주로 기억만을 간직하고 있어 능력치를 천천히 키워가는 내용이 주류였다면 요즘에는 아예 처음부터 회귀자 신급 능력을 보여주어 현실의 무능력자는 무적이 된다. 소파에 누워 통통한 배를 긁적이고 있는 나(^^)도 대리 만족으로 통쾌함을 느끼며 이런 웹툰에는 유료 결제를 누르고는 한다.  


현실적인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신사와 이방인의 지위는 부자를 의미한다고 생각해도 무리가 없을 듯하다.


질문 하나. 당신의 주변에는 100억 원 이상의 재산을 가진 지인이 있는가? 100억은커녕 10억을 가진 사람도 없는 경우가 많을 것 같다. 지난 25일 정부공직자윤리위원회가 공개한 고위 공직자(행정부 장차관과 1급 공무원, 국립대학 총장, 공직 유관단체장, 광역·기초 지방자치단체장, 광역의회 의원, 시·도 교육감 등)의 평균 재산은 14억 1297만 원이라고 한다. 우리 사회에서 최고로 잘 나가는 인재들의 재산 평균이 15억이니 현실적으로 10억의 가치는 매우 크다고 할 수 있다. 지난 수년간 세계적인 유동성 증가와 부동산 정책 실패로 인해 서울의 아파트 중위 가격이 10억에 육박했지만 이런 부동산 가격은 미국발 금리 인상으로 언제 거품이 붕괴해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임을 고려하면 현재의 10억은 장부 속 숫자로만 남을지도 모른다. 실제 대부분의 서민들은 태어나 죽을 때까지 10억이란 돈을 만져 보기조차 힘들다. 그러니 모두가 부동산 급등 시기에 부자가 된 듯 호도하며 투기를 부추기던 언론에 속아 자신의 무능력함을 탓하며 실망하지 말자.


질문 둘. 통계가 제시하는 부자의 기준은 무엇인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의한 중산층의 개념은 한 나라의 가구를 소득순으로 세운 다음에 중위소득의 75~200% 까지의 소득을 가진 집단을 의미한다. 대한민국의 상황에 대입해 본다면 2021년 가계금융복지조사에서 가구 순자산 중간값이 약 2억 2500만 원이니 대략 1억 7천만 원(상위 58%)에서 4억 5천만 원(상위 29%) 정도가 중산층에 해당할 것이다. 총재산이 5억 원 이상이면 통계적으로는 상류층이겠으나 체감상 현실은 서울에서 반값 아파트도 사기 어려운 매우 빠듯한 서민이다. 그렇다. 드라마에 나오는 신사는 상위 1% 수준의 자산을 가진 초 상류층이어야 가능할 듯싶다. 고로 우리가 사는 현실에서 신사는 아무나 되는 것이 아니다.


만약 평행 우주(Parallel Universe)가 존재하며 또 다른 내가 존재한다면 신사가 될 수 있을까? 다소 철학적 질문이지만 현대 이론 물리학에서 시뮬레이션 우주론이 상당한 관심을 받고 있기에 생각해 봄직한 주제다. 또 다른 나는 무엇이 달라야 할까. 완벽히 동일해 보이는 조건에서도 완전히 다른 결과를 만들어 내는 프랙털 세게에서 우리는 무엇을 중시해야 할까.

 

상대적이며 절대적인 세상에서 절대적이며 상대적인 가치관이 필요하다. 나라는 중심으로 이루어진 세계에서 벗어나 상대를 객관화시켜 바라보는 마음의 눈이 어쩌면 대항해시대의 원피스가 될지도 모르겠다. 편협한 마음에서 벗어나 현실을 직시하자.


나를 둘러싼 세상은 끊임없이 변화한다. 신사와 환영받는 이방인은 어느 곳에 있던지 주인공이 되는 사람이다. 지금의 현실이 절망적이더라도 자신이 있는 곳에서 나의 어려움을 먼저 보기보다 주위를 살피다 보면 살아날 길이 보이지 않을까. 무한한 평행 세계에서 주인공은 바로 우리 자신이다. 또 다른 우주에서 신사가 되어 있을 또 다른 자신을 응원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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