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디지털전사 May 13. 2022

교육의 비밀: 과도한 관심과 무관심의 중간 그 어디쯤에

요즘 초등학교 수업 시간마다 마음을 졸이는 선생님들이 늘어나고 있다고 한다. 최근 급격히 증가하고 있는 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ADHA) 증상이 있는 아이들의 돌발 행동 때문이다. 정신과 치료나 약물 복용이 부담스럽다면 사회적 인지 능력이 발달하는 청소년기 이후에는 조금씩 완화되거나 개선될 수 있다고 하니 시간이 가장 큰 약이다. 하지만 반대로 생각해 보면 유년시절에는 주위 환경에 신경 쓰지 않고 감정을 발산해 스트레스가 없었을 텐데 어른이 되면 그동안 억눌렸던 감정이 내면의 우울증으로 숨겨져 있다 발현되지 않을까 걱정된다. ADHA성향을 가지고 있다면 감정을 긍정적으로 발산할 놀이나 자연환경이 청소년 이후 어른들에게도 필요한 이유이다. 


초등학교를 지나 중학생이 되면 감정을 억제하면서 이성이 성장하지만 아직은 감정의 절제가 힘든 질풍노도의 시기가 닥쳐온다. 부모의 생각보다 일찍 진로와 목표를 고민하기 시작하는 아이들에게는 어른이 된다는 의미가 어렴풋이 기대 반 두려움 반으로 다가오는 시기가 아닐까. 감정을 통제하며 타인을 존중하는 방법을 배우며 아이는 어른이 되어간다.


중학교 3학년인 작은 아들이 과학고에 진학하고 싶다고 한다. 초등학교 시절 공개 수업시간에 소심하게 손톱을 물어뜯고 있던 귀여운 녀석이 어느새 180의 키와 전교 부회장이라는 리더십을 지닌 멋진 사나이가 되었다. 과학고는 수학과 과학을 잘하는 아이들이 가는 곳이라 경쟁이 치열할 텐데 견디어 낼 수 있을까 걱정도 되지만 본인의 의지가 확고하니 응원을 한다. 마음속 응원은 정신적 위로일 뿐 현실은 전문 입시 학원을 등록하고 뒷바라지해야 하니 안 그래도 굽은 허리가 더 휘겠지만 어쩌랴 부모의 마음은 이 또한 기쁨이다... 하지만 가쁜 한숨이 나오는 것은 어쩔 수 없구나. 


고등학교 성적은 중학교와 달리 경쟁이 매우 치열하고 잘하는 아이만 살아남는 승자독식의 구조라는 것을 부인하기는 어렵다. 약 40%까지의 아이들이 중학교 과목에서 성적 등급 A를 받지만 고등학교에서 1등급은 오직 4%에만 해당이 된다(예체능 과목은 대락 80~90%가 A인 경우도 있다). 최상위 성적 등급이 무려 1/10로 줄어드는 셈이니 경쟁은 과열된다. 


신기하게도 세상은 단순한 숫자로 묘사가 된다. 고등학교 학생들이 선호하는 상위권 대학교의 입학 정원은 대략 10%, 대학 졸업자가 선호하는 대기업 및 공무원(기업)도 대략 10%다. 나머지 90%는 아무리 노력해도 원하는 결과를 얻을 수 없다. 설상가상으로 특목고나 자사고 출신 학생이 서울 소재 대학 입학생의 대략 50%를 차지한다고 하니 나머지 50%를 두고 일반고 졸업생(재수생 포함)이 경쟁할 수밖에 없어 파이는 더 줄어든다. 대략 난감한 상황이다. (주: 2021년 기준 전체 대학 입학자(336,625명)중 자사고 출신은 14,332명(14.3%)을 차지하는 가운데, 자사고 합격자의 절반 이상(52.5%)이 서울 소재 대학 합격자(7,530명)이다. -출처: 대학알리미)


부모도 사람인지라 자녀에게도 무의식적으로 보상을 기대하는 마음이 생길 수 있다. 자녀에게 무언가 재능이 있는 것처럼 보일 때 기대감은 관심으로 변한다. 하지만 과도한 관심은 평상시 아이에게 감시의 째찍이 되고 결과가 만족스럽지 못할 때는 큰 실망감으로 상처를 입힌다. 자녀가 몸이 아픈데도 학원 수업에 빠질까를 더 걱정하는 부모의 마음은 성적에 대한 과한 관심이 일으키는 부작용이다. 본질을 잊고 당장의 성취에 급급하면 결국 돌아오는 것은 가족 관계 악화가 될지도 모른다. 자녀를 독립적인 한 인격체로 대하지 않는다면 설령 당장의 목표는 이룰지라도 끊임없는 기대감에 부응하지 못해 닥쳐올 실망은 필연적이다. 

 

 과도한 관심과 무관심의 그 어딘가에서 중용을 찾는 것은 각자의 몫이다. 다만 확실한 것은 자녀는 존재 자체만으로 또 성장 과정 자체만으로 부모에게는 이미 충분한 보상을 지불했다. 어린아이에게 부모는 신과 같은 존재였던 것처럼 결과에 상관없이 자녀를 사랑하고 포용해 주는 약간은 무관심한 아빠가 되고 싶다.






매거진의 이전글 평행 세계에서의 나는 신사일까? 상대적이며 절대적인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