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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디지털전사 Aug 04. 2022

정상에서 미끄러지는 길에 느린 자를 위한 자리는 없다

2021년 유엔 무역 개발회의(UNCTAD) 공인 선진국에 진입한 대한민국은 나의 자녀 세대에도 선진국 지위를 유지할 수 있을까. 최근 3개월 연속 발생한 무역 적자는 전쟁으로 인한 유가와 식량 불안 등의 문제도 있지만 훨씬 큰 우려는 중국에 대한 수출입에서 발생하고 있는 무려 32년 만의 적자 상황이다. 미국과 중국이 치르는 경제 전쟁에서 절묘한 줄타기를 하지 못하면 우리가 겪는 세대 간 갈등도 취업난도 그리고 노후 빈곤 문제도 지금보다 더 큰 경제적 고통이 된다. 고부가가치 제품의 점유율로 진입 장벽을 쌓아 두는 것이 최선이지만 이마저도 기초 기술이 탄탄하지 않아 쉽지 않아 보인다. 우리의 최대 수출 효자 품목인 반도체에서 경쟁 업체들은 이미 7 나노 공정을 앞서 가거나 중국의 후발 주자들조차 무서운 속도로 추격해 오고 있다. 자원의 부족은 어쩔 수 없지만 지난 수십 년간 소홀히 했던 기초 과학 기술의 빈곤은 이렇게 무서운 것이다. 


기술력 부족으로 복제품을 만들어 불량 제품을 유통하던 중국이 현재는 가성비 우수한 상품을 공급하기 시작하면서 이미 디스플레이와 화학 제품들은 경쟁력에서 밀리고 있다. 거인의 어깨에 올라선 인간은 시간이 지나면서 마치 자신이 거인인 것처럼 착각을 한다. 그러다 미끄러지는 순간 추락의 충격은 아픔을 걱정하는 것조차 사치가 된다. 어쩌면 충격으로 사망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우리 아이들이 선진국 시민으로 자부심을 가지고 살 수 있는 세상을 소망한다. 교과서에서 배웠던 '보릿고개'라는 단어가 경험하지 못했던 나에게는 머리로만 이해되었듯이 미래 세대에게 '중진국'이라는 뜻이 생소하게 다가오기를 기대한다. 


무역으로 OEM 상품을 생산하여 공급하고 있는 나에게 필리핀은 특별한 국가이다. 가장 중요한 거래처가 있고 코로나 이전에는 분기당 한 번씩은 방문하여 상담을 하고는 했다. 심지어 노후를 위해 마닐라에 콘도미니엄을 구입하기까지 했으니 개인적으로는 큰 애착이 가는 국가이다. 지금은 최악의 빈곤에 더해 치안이 불안한 국가로도 인식되는 필리핀은  1960년대 전반적으로 평균 일인당 GDP 기준 $200달러 내외였을 때 한국은 평균 $150불 내외였다는 사실은 낯설지도 모른다. 현재의 대한민국의 경제를 필리핀과 비교한다는 자체가 말도 안 되는 현실이기 때문이다. 


필리핀이 실패한 국가가 된 데에는 토지 개혁 실패로 인한 거대 지주 계급이 아직까지 경제와 정치를 막론한 모든 영역에서 국가를 재배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많다. 중산층이 늘어날 수 있는 제조업 육성, 인프라 건설 같은 공업화 정책과 복지 확립은 자신들의 기득권을 위협하는 것으로 생각하여 소극적이며 이런 사상이 교육에까지 이어져 인재 양성에도 의지가 없다. 농업이나 광산업, 유통업, 관광업처럼 쉽게 자본 통제 가능한 산업만을 육성하면 못 배우고 가난한 빈민들은 그저 그들에게 삶이 종속될 수밖에 없는 사회 구조가 최선이다. 불평등하고 후진적인 경제 구조는 그들의 가장 큰 보호막이며 동시에 무기가 된다. 이는 대다수 후진국가에서 발견되는 현상이다.

혁신과 발전을 위해서는 속도가 필요하다. 머뭇대다가는 열심히 노력하는 상대에게 뒤처지고 만다. 운동선수가 잘 뛰기 위해 체력이 필수적인데 그 기초가 되는 것은 잘 먹는 것이다. 즉 음식을 살 돈이 필요하다. 싱가포르와 같은 일부 국가에서 비민주적인 정치 구조에도 불구하고 경제 발전을 이룰 수 있었던 배경에는 노력과 운이 따라갔지만 그 바탕에는 중계 무역으로 벌어드린 막대한 돈이 있었다. 결국 국가의 재원은 세금일 수밖에 없는데 이를 재 투자하여 경제의 크기를 키우면 국민 전체의 소득 향상이 가능하다. 투자 없이 발전을 기대하는 것은 로또를 바라는 것과 마찬가지다. 이런 점에서 현재의 부자 감세는 미국과 중국의 경제 전쟁 와중에서 '고래 싸움에 새우등 터지기' 일보 직전인 우리에게 매우 위험한 선택일지도 모른다. 위기 상황에 돈이 없다면 죽음뿐이다.

 

프랭클린 루스벨트 미국 대통령은 이런 메시지를 남겼다. '세금은 우리가 문명사회를 유지하기 위해 지불하는 비용이다.' 희생 없이 문명사회를 유지하려 하다가는 불 평등한 사회가 고착화되고 그 짐은 미래 세대가 짊어지게 된다. 


성경에는 등을 들고 신랑을 맞이하러 간 열 신부들의 일화가 소개된다. 신랑의 도착이 늦어져 준비한 등이 꺼지자 여분의 기름을 준비하지 못한 다섯은 결국 혼인 잔치에 참석하지 못하고 만다. 국가나 가정 혹은 개인도 모두 최악의 상황에 대비한 준비를 하고 있어야 한다. 세상일이 뜻대로 되지 않으니 결코 쉽지 않다는 점이 큰 함정이지만 그럼에도 우리는 항상 깨어있어야 한다. 


자전거의 페달을 멈추는 순간 자전거는 넘어지고 만다. 냉혹한 경쟁 구조에서 현재의 경제 강국 자리를 유지하기 위해서 쉬지 말고 달려야 한다. 개인에게는 힘든 일이고 바람직하지도 않지만 국가라는 거대 시스템에서는 조금씩의 노력을 모아 효율적으로 달리게 할 수 있다. 그러라고 우리는 세금을 낸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 페달을 멈추는 세력을 눈을 부릅뜨고 지켜보아야 한다. 현재의 작은 노력이 미래 세대를 위한 작은 등불이 될 수 있기를 고민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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