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다리기는 우리의 전통 민속놀이다. 그중 영산줄다리기는 국가 무형 문화재로 현재는 3·1 문화제 행사의 하나로 하고 있다. 마을을 동·서로 갈라 두 패로 편을 짜서 노는 편싸움 형태인데 동서 양편은 각각 남성과 여성으로 상징되며, 생산의 의미에서 여성을 상징하는 서편이 이겨야 풍년이 든다고 전한다.
세계적으로 히트를 기록한 넷플릭스의 오징어게임에서 줄다리기는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생존 게임으로 등장하였다. 줄다리기에 숨겨진 기술은 초반에 힘을 빼 버티다 상대방이 모든 힘을 소진했을 때 순간 끌어당기는 것이다. 운이 좋아 상대방이 중심을 잃고 넘어지기라도 한다면 승리의 여신을 미소를 쉽게 볼 수 있다.
경제의 순환 주기는 상대방이 있는 줄다리기와 비슷하다. 한쪽이 승리하면 반대편은 진다. 완전한 제로섬(zerosum) 게임은 아니지만 작동 원리는 동일하다.
금리와 물가 역시 서로 줄다리기를 하는 사이다. 국제적인 줄다리기 시장에서 심판은 미국의 연방준비은행(FED)이고 관객은 시장의 큰손 투자자들이다.
경기 침체의 위험에도 불구하고 연준 의장이 금리 인상을 계속 강조하는 이유는 승부조작(?)을 위해서다. 감독인 연준이 보기에는 그동안의 빅스텝 금리 인상에도 불구하고 시중에 풀린 유동성(돈)이 아직도 너무 넘쳐난다. 몇 년 안에 목표 물가 2% 수준으로 낮추기 위해서는 금리 인상과 양적 긴축만으로는 역부족일 수도 있다.
주식과 부동산 같은 자산 가격이 폭락하고 기업의 고용이 붕괴된다면 물가는 금세 잡힐 것이다. 실업자가 많아지면 소비 심리가 얼어붙어 심리적 공황이 온다. 하지만 일자리의 상실은 수많은 서민들의 고통을 요구한다.
상당기간 높은 물가가 잡히지 않는다면 연준은 어떤 선택을 할 것인지 생각해 본다. 즉 물가가 금리보다 우세한 한판 줄다리기가 이어진다면 심판은 한쪽 편을 들 것이라고 허세를 떨 수밖에 없다. 매파적 발언을 쏟아 내지만 행동은 하지 않기에 양치기 소년이 될 수밖에 없는 운명이다.
줄다리기 싸움을 관전하는 시장의 관객들은 심판이 조만간 금리 인상이 성공했음을 선언하고 경기를 종료하기를 기대하고 있다. 시장은 미리 김칫국을 마시고 있고 연준이 피의 제단에 주식 시장과 고용을 제물로 바치기에는 정치적 부담이 크다. 물가 안정과 경기 연착륙은 생각보다 긴 줄다리기 싸움이 될 것이다.
시장을 역사적으로 살펴보면 몇 년 동안 금리를 올려도 물가는 잡히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블랙스완(black swan)급의 금융 위기가 터져 기업과 가계가 파산해야 물가가 안정되었다. 2~3년 내에 경제에 강력한 충격이 다시 발생할 때까지는 높은 금리가 지속될 것이다.
물가를 목표치로 단기간에 낮추는 것은 매우 어려워 보인다. 심판도 관객도 아닌 공연장 주변에서 서성이는 들러리에 불과한 사람은 무엇을 해야 할까. 관람 좌석 가격이 너무 비싸 감당할 수 없다는 좋은 핑계가 있으니 박수나 치며 구경이나 해야지 별 수 없다.